정신이 멍한 어떤날.

weirdo
2004년 02월 11일 22시 49분 44초 2593 8 1
주인공이 사는 집을, 주인공을 살게 하고 싶은 집을 찾아내기 위해
연출부 윤 형님과 함께 기자촌을 찾았습니다.
그 전에도 몇번 방문을 했었던 곳이죠.

높은 곳이었습니다.
조용한 곳이었습니다. (우리를 맞아주던 집집마다의 개소리를 제외하면.)
따듯한 곳이었는데
조금은 슬플 수도 있는곳이었어요.

적당해 보이는 집을 두곳 정도 발견했고,
과감한 벨누름과 대문 두들김이 이어졌습니다.

한집은 비어있어 문틈과 담너머로 사진을 찍는것에 만족해야 했고,
다른 한곳은 인터콤 속 아주머니가 정중히 거절을 하시네요.
"네? 영화요? .... 에이.. 아니예요... 죄송합니다...." 수줍게 웃으시면서.
몇번 더 부탁해 보았는데, 여전히 정중하면서도 수줍으면서도 단호한 거절.
목소리만 들어본 그 아주머니는 분명히 멋진 분일거라고 생각되었죠.


현우. 최민식씨가 빠져들어야 할 주인공 이름입니다.
현우에 대한 느낌을 더하기 위해,
양천구청에서 클라리넷 강의를 하고 있는 어떤 음악선생님을 만나러 갔습니다.

양천, 목동쪽은 4,5차선으로 넓으면서도 일방통행인 길이 많아
목적지 찾아 가기가 꽤 불편하더군요. 익숙해지면 어떨지 모르지만.

그간의 연주 활동을 묻는 제게,
수십년 연주생활 하시는 동안, "서커스와 약장사 빼고는 다 해봤다."고 답하시던
거의 예순은 되었을 법한 그 선생님은,
'젊은' 우리들을 반갑게, 호의적으로 맞아주셨지만,
그다지 '꽃봄'에 도움될만한 큰 '꺼리'는 얻어내지 못했지요.
다음 기회에 또 도움을 받기로 하고.


운전대만 잡고 정신은 놓았던 저로 인해.
양천구에서 옥수동 사무실까지 오는데 한강을 세번이나 건너기도 했습니다.
목동 일대의 혼란한 길찾기 탓에 기운을 빼앗겼기 때문일까요.


사무실, 밤.
어제 강원도 도계로 확정헌팅을 떠났다가 돌아온
감독님, 조감독님, 촬영기사님, 조명기사님, 미술감독님, 제작부님들... 등과
큰 동요없는, 눈물도 없는 상봉을 한 뒤,
아직 남아있는 캐스팅 문제로 뜨거운 토론이 시작되면서 사무실은 어느새 활활 불타오르고 맙니다.
그 뜨거운 불꽃과 자욱한 연기를 저는 보았습니다.

회의는 끝나고.
가볍게 맥주 한잔씩 하고.
차 한대에 여섯명이 끼어타고 새벽 거리를 달리기 시작합니다.(물론 운전하기로 했던 저는 금주)
여기저기 세명까지 내려주고 나머지 두명이 남았죠.

그렇게 용산쪽으로 가던 길에,
앞서가다 차선에 삐딱하게 걸친 채로 갑자기 서버린(어쩌면 이미 서 있었던)
택시를 살짝 받아주었습니다.

뒷자리에서 눈감고 졸거나 생각에 잠겨있던 조감독님은 크게 놀라셨겠죠.
제 옆자리, 조수석에 앉아있던 제작부 박양과 무슨짓을 하다가 그랬다면 억울하지도 않았겠어요.

'분명히' 브레이크를 끝까지 밟았는데 차는 서지 않았고,
'분명히' 핸들을 완벽하게 꺽었는데 차는 전혀 방향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도저히 설명되어질 수 없는
무언가에 홀린 기분 딱 그겁니다.
무사고 운전 칠년(?)만의 첫경험은 그렇게 몽롱했던 것으로 기억되어지겠죠.

다행히 다친사람 없고,
다행히 앞차 손상되지 않았고,
다행히 우리차 범퍼만 약간 깨졌습니다.


집에 와서 4시쯤 잠든 전 몇가지 내용이 이어지는 꿈을 꾸었죠.
차를 몰고 가는데, 길을 잃고 도저히 목적지를 찾을 수 없어 쩔쩔매던 꿈.
차 사고가 나는 꿈.(어쩌면 사고가 난것 같은 공포만 느껴졌던 꿈.)
어떤 '음악' 선생님이 저를 죽이려고 큼직한 쇳덩이 들고 쫒아오던 꿈. 학교 운동장에서.
그 선생님은 처음엔 웃는 얼굴이었다가 몇마디 대화를 나눈 뒤 살의 가득한 눈빛으로 저를 쫒아왔어요.
끔찍했습니다.

그런 지저분한 꿈에서 겨우 벗어나 눈을 떴는데,
벌떡 몸이 일으켜지지 않아
사무실 지각으로 하루를 열었군요.

연출부 윤 형님이 사고 이야기를 듣고 한마디 하시네요.
"너 어제 낮에 운전할 때부터 정신상태가 이상했잖아?"

그런데 오늘, 저뿐 아니라 연출부 모든 사람들마저 컨디션 엉망에 정신이 멍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한몸인 것이냐?
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uni592
2004.02.11 23:56
양천구라. 88타고 서부간선타고 오다가 양천구청쪽으로 빠지면 되는데.
bluenote
2004.02.12 02:37
섹소폰나라라는 홈페이지를 방문하시어 호스트 최명x씨를 만나보십시요.
http://www.saxophonenara.net/
개인적으로 최민식씨에게 관심이 있어 드리는 조언입니다.
행운을!
mojolidada
2004.02.14 06:18
그런 야리꾸리한 꿈을 꾸시다니 분명 대박날 조짐입니다.
weirdo
글쓴이
2004.02.16 23:21
캐스팅은 거의 완료 단계에 있습니다.
누구신지 알 수 없지만, 보내주신 자료는 잘 검토되었을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구요.
fimfim
2004.02.17 21:10
사건 당일, 옆자리에 앉아있던 박모양입니다.
아무짓도 하지 않아서 사고가 난게 아닌가...하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uni592
2004.02.18 15:38
박모양의 의견에 절대공감! 흠흠
vincent
2004.02.18 21:22
안전을 위해서라도.. 다음부턴 꼭 아무짓(?)을 하십시오.
hose0403
2004.02.19 23:53
박모양은 혹!! 미모씨를 애기하시는 건가? ( 제 아뒤보심 누군지 아시겠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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