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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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식당에 갔다

ty6646
2008년 12월 17일 08시 08분 17초 1810 2
식당에 갔다. 종업원을 불렀다. 안온다. 종업원이 바쁜 모양이다.
한참후에 종업윈이 오길래 해장국을 주문하고는 기다렸다.




잠시후 노가다가 들어왔다. 종업원을 부르지도 않고 대놓고 소리친다.

"여기, 해장국하나 가져와"




종업원이 가져온 해장국하나....
그는 그것을 노가다 앞에 내려놓고는 쏜살같이 다시 주방으로 달려갔다.
순간, 살의가 내 온몸을 쭈뼛하고 치고 올라온다.


해장국을 먹는 노가다의 대가리를 잡고서 그대로 해장국속에 쳐바르고 싶었고,
주방으로 달려가버린 종업원의 대가리를 재떨이로 반쯤 뭉게버리고 싶었다.





그까짓 해장국,
내가 몇분 늦게 먹는다고 지구가 박살 나는 것도 아니고
노가다가 나보더 더 절실하게 해장국을 먹어야만 할 상황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나는 그러한 사소한 일로 잠시나마 내 머릿속에서 사람둘을 작살내야만 한 것일까
내 인격이 부족하고 내 수양이 많이 미흡한 모양이다.
그래, 다 내 탓이다. 내 탓이야....





사람이 양보해주고 기다려주면 바보로 안다.

군대에서도 그렇다. 감싸주고 다정다감하게 해준 고참은
세월이 흐른후에는 이름도 기억이 안나는데
내무반에서 이단옆차기로 때리고 차고 지랄하던 고참은 버릇까지도 기억한다.
그런데 더 웃기는건 길가다가 지랄하던 고참을 만나기리도 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이런 인간들이 싫타.


난 후임병들에게 잘 해주었다. 때리지도 않고 힘든 일도 안시켰고
내 개인적인 일은 당연히 내가 했다. 때가되면 밥도 사주고 과자도 사주었다.
그러나 그들 후임병들은 발로 차고 때리고 툭하면 개인 심부름까지 시키던 내 동기에게
설설 기면서 충성을 다하고, 내겐..... 날 제법, 많이 무시하는 눈까리를 하던 것을 기억한다.
허무하고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가하는 자책도 해보고, 믿음이 기울어지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한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내가 열받아하던 그 모든 것들이 사실은 사소한 것들이란 사실이다.
바람부는 가을날 아침조깅을 하던 중에 내 눈에 티끌하나가 들어가서 잠깐 눈이 따끔했던
그런 사소한 것들에 불과하다라는 사실이다.









엄마 조직검사 결과에 일주일을 초토화된 심정으로 기다렸다. 결과는 양성이란다.



엄마의 조직검사 결과 양성...
이 한마디로 세상은 지옥에서 천국으로 변신했고
노가다와 종업원과 함께하는 세상이 살만한 것 같고
후임병들과의 즐거운 추억들이 끊임없이 떠 오른다.



이 약효가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특히 내가 건망증이 심해서 내일이면 다 잊어버리고
다시 씩씩거리고 재떨이를 찾아다닐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화내고 열받고 상처받는 일의 99.9999999%는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이라는 것이다.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Profile
kinoson
2008.12.17 15:24
그렇죠 사람이 양보해주고 기다려주면 바보로 압니다

적당히 지랄하고 적당히 소리지르고...

그래야 최소한 "너 거기 있었구나" 정도 되더라구요
Profile
sandman
2008.12.19 14:19
ㅋㅋㅋ
kinoson님 리플보니
이제 해탈의 경지에 선듯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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