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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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더위에 지쳐 생각난 시 1.

mee4004
2001년 07월 13일 20시 02분 26초 1090 2
새 벽 별
                                                   - 도종환 -

새벽하늘에 돌아가지 못한 별 하나 떠 있읍니다.
우리들의 마음이 가장 고요해지는 때를 기다려
우리들 가장 가까운 곳까지 내려온 별인지도 모르지요.
오손도손 사랑하고 가슴아파도 하는 얘기에 귀기울이다
모두들 소리도 발자국도 없이 돌아갈 때에
너무도 가까이 내려와 오래오래 혼자 눈물짓다가
돌아가는 시간이 길어진 별인지도 모르지요.
남들보다 늦게까지 한 사람을 사랑하던 마음인지도 모르지요.



사랑도 아프터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면
                                                        - 이 복 희 -

우리들의 사랑도 아프터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면
구입 후 일정 기간 동안 고장이 생기면
무료로 수리해 주는 편리한 제도를
우리들의 관계에도 도입시킨다면
비록 헤어진 뒤라도 한 일 년쯤은 서로에게 책임을 가지고
하는 일이 잘되기를 바란다거나 건강하기를 바란다거나
미비점을 보완해 준다면
그것은 미련이 있다거나 구태의연한 애정의 연장으로서가 아니라
철저한 사후 서비스 정신에 의해서만 가능하기에
아프터 서비스 기간이 끝나면
그 후로 찾아오는 크고 작은 고장은 혼자 고치기로,
누구에게도 쉽사리 고장났다 말하지 않기로
수리하다 안 되면 전문 고장 수리 센터에 맡기거나
아예 중고품 매매 센터에 팔아 버리더라도



길 위에서의 생각
                                                   - 류시화 -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나 집을 떠나 길 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없고 얻은 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녘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갔다
어떤 자는 울면서 웃을 날을 그리워하고
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두려워한다
나 길가에 피어난 풀에게 묻는다
나는 삶에서 무엇을 위해 살았으며
또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살아 있는 자는 죽을 것을 염려하고
죽어가는 자는 더 살지 못함을 아쉬워한다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에서 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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