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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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기행문) 학동역 7번 출구....

sandman sandman
2001년 10월 17일 16시 10분 19초 2145 2 3
안세병원 4거리에 가려면
압구정역에서 내려야 함은
누가 물어 봐도 정상적인 대답이다.

그러나 그럴 경우 나는 학동역 7번 출구를
권하고 싶다.

압구정역에서 나와 어느 장소까지 갈 때
오는 차, 가는 사람
가는 차, 오는 사람...
그리고 자동차 경적소리,
가끔 보이는 오렌지족의 지붕을 없앤(토프리스 카)
일반 아파트 한채값의 승용차를 몰고
으시대듯 지나가는 한쌍의 젊은이들...

(그럴 때 전 항상 저 친구 제작분가
연출분가... 협찬 차 받아 가네 그려...
그러곤 하지요. ㅋㅋ)

차 피하랴 사람 피하랴
여하간 이런 모습들에 지친 체로 약속장소에 가면
기분이 왕창 바닥을 기고 있지요.
그 기분을 회복하리란....

만약 그런 기분을 한번이라도 느끼신 분이 있으면
학동역 7번 출구로 나오세요.
약간 걸어가는 거리는 멀긴 하지만...
압구정 역에서 인도를 가득 메운
염치 없는 차량으로 기분 상하지는 않지요.

우선 출구를 나오면
파란 하늘이 당신을 맞이 합니다.
왜 다른 역보다 이 출구는
하늘이 먼저 보일까?
왜 하늘이 더 푸르게 보일까? 하는 느낌이지만
더 이상 쓸데 없는 생각은 할 이유가 없지요.

그래서 압구정 쪽으로 걸어 가면
마치 미술관 전시장에 온 느낌의
이쁜 건물들이 당신을 맞이 합니다.

건물을 볼 때 하나의 작품으로 친다면
먼저 '창의 위치를 보라.'라는 말이 있지요.
건축가가 가장 고민하는 것이 바로 창의 위치이죠.
그 창의 위치에 의해
전체 건축물의 구조까지 바뀔수도 있으니까요.

물론 중간중간 간판들이 덕지 덕지 붙은
예전에 우리 건물들이 없지는 않지만...

우선 우측으로 유럽형 오피스텔 느낌의 건물이 보이지요.
그리고 다시 무슨 한방 병원이 나오고
그 다음엔 무슨 가구 인테리어 점이 나옵니다.
여기서부터
각각의 건물들을 하나씩 살펴보면
다양한 느낌의 다양한 건축구조들을 고루 갖추고 있습니다.
한적한 사람들 사이로
건물들의 구조나 외형,
마감재..

어떤 건물은 통으로 유리로 끼워놓아서 아름답고
어떤 건물은 완전히 막아서 아름답고...
그 막힌 공간의 창들을 보면서...

이런 것들을 감상하다 보면
어느새 내리막으로 들어 섭니다.

이 때 부터 감흥은 약간 약해지기 시작하는 데
오호랏...
아크릴로 건물의 외경을 띠 두르듯 둘른
조흥은행 24시 창구 옆 건물을 보면
다시 새로운 감흥에 듭니다.

21세기나 22세기의 화두로 대두될
마감재 아크릴 이지요.
안쪽에 색깔을 지닌 형광등이나
조명의 밝기 조절로도 일년 4계절의
느낌을 완전히 달리 갈수 있지요.
그 간판을 한 참 쳐다보면
어느새 우측으로 웨딩 홀들이 보입니다.

그럼 그 앞 '모노'라는 인테리어 샵에서
이 한가한 미술 감상 기행은  출구를 향해 달리고 있지요.

'모노'의 입구 측의 마루 바닥으로 계단을 해놓은
나무의 느낌을 보면
참으로 이 샾은 느낌을 안다 ...
느낌을 받지요.
그리고 입구에 계단을 해 놓은 것은
일반 사람과 경계를 둔...
이 가게는 아무나 오는 곳이 아니다 라는
샾 사장의 거만한 자존심까지 보입니다.
(실제로 이 가게는 무지 비싸지요.
한국의 바로크 가구와 가장 잘 매치 시킨다는...
커텐 묶는 밧줄하나에 백단위를 넘으니까요..)

자 그럼 이제 짜증 나는 압구정 거리로 들어 서야 합니다.

우선 주유소의 시끄러운 음악이
저의 한가로운 감상의 느낌을 깨게 만들고
그 옆 설렁탕집...
그리고 예전에 맛있었던 생고기 집이
퓨전 음식점으로 변한 모습을 보며
이젠 짜증 나는 압구정 거리로 들어설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럼 신호를 기다리며
자연히 담배가 입에 물어 집니다.
담배가 입에 물리면
어느새 신호등은 바뀌어 있죠.
(꼬옥 여기서 목격하는 것이
수입차안에서 담배를 입으로 가져다가는
직업이 의심스러운 여성을 보게 됩니다 ^^;)

참,,,
또 하나 보게 되는 것이
동호대교를 넘어온 우리의 택배 아저씨들이
신호가 바뀌기 무섭게
거대한 굉음을 내고
빠른 속도로 출발 합니다.
이건 정말로
어쩔때는 코끝이 찡할 정도의 감동을 줍니다.
맞아 ...
저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진정한 첨병이야.

그리곤 이제 마감을 하게 됩니다.
마치 이런 느낌의 아쉬움을
위로하듯 마지막으로
버버리 매장의 대리석 느낌이
나의 이러한 감성의 느낌을 위로해주며
학동역 7번 출구로서
마침표를 찍지요.

신호등을 건너면
인도를 가득 메운 염치없는 차량들을 피해 다녀야 하고
오는 차 가는 차
가는 사람 오는 사람
피해 갑니다.

학동역 7번 출구의 기행은
하루를 시작하는, 차를 안몰고 다녀도 행복하다는
가벼운 사색의 시간입니다...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scully007
2001.10.22 22:56
저번주 까지만 해도 매일 다녔던 저으 출근길이군요^^!
혹시 한번쯤 마주쳤을지도...
Profile
sandman
글쓴이
2001.10.23 17:37
흠.. 미리 알았더라면 퇴근길에 소주잔을 기울였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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