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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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너의 결혼.

silbob
2002년 03월 05일 07시 13분 25초 1065 3
우리가 열일곱 소녀였을 때,
우린 차마 우리의 넘치는 감성을 드러내지 못했지.
그땐 그게 죄인줄 알았다.
하나의 항아리 안에 갖혀 똑같은 틀로 탄생해야 하는
그런 존재들..

그 시절 우리는 만났고
서로를 동경하며
기대 앉아 있던 적도 많았었는데...

세월이 흘러,
이제 우리는 어른의 눈으로
현실 속,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다.

나 결혼해.라고
니가 말했을 때

난,
이제 니가
나보다 더 빨리
인생을 앞질러 간다는 걸 알았다.

난 아직은 어른이 되길 거부했고
넌 기꺼이 어른이 되길 허락했던 날..
그 날 생각했지.
우리의 운명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점차
벌어지고 있는게 아닐까?

더 세월이 흘러
니가 나에게
더 큰 인생을 알려줄까 겁이 나기도 하지만,

너에게 지금 하고픈 말은

너만은 행복하게 살길 바란다고..
이제 너는 나랑은 다른 삶을 살길 바란다고..
감히 그렇게 말하고 싶다.
우린 서로 등을 떼고 멀어지지만
그래서 슬프지만

니가 그걸로 행복해지면 됐어...

어리숙하지 않게.
씩씩하게.
언제나 웃으며.
그렇게..
너의 어른으로의 삶이 지속되었음 해.

너의 결혼을
오늘,
이렇게 술을 한 잔한,오늘에서야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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