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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옥란, 그 이름을 기억해야

kinoeye21 kinoeye21
2002년 03월 30일 16시 00분 56초 1002 1 15
최옥란, 그 이름을 기억해야



가난과 장애, 여성이라는 3중고를 짊어지고 살았던 한 생활보호대상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보통 장애인이 아니었다.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세상을 향해 온몸으로 호소하고 저항한 투사였다. 그러나
세상은 그에게 무관심했고 그는 끝내 죽음을 택했다. 그의 이름은 최옥란이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거동을 할 수 있는 1급장애인이었다. 서른여섯의 이혼녀이며
아들이 있으나 양육과 접견이 금지되었다. 정부에서 생계비를 수급받는 극빈자다.
아이를 기르고 싶었지만 극빈자이기 때문에 양육이 불가능해지자 노점상을 했다.
노점상 수입이 조금 생기자 소득이 있으므로 생계비 수급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위협을
받았다. 노점상도 그만두었다. 정부는 극빈장애인의 처지를 외면하고 일률적으로만
생계비를 지원했다. 최소한도 60만원이 있어야 장애인이 살 수 있다며, 그는
불합리하게 책정된 생계비에 대해 위헌신청을 내고, 지난 겨울 명동성당에서
일주일동안 홀로 천막농성을 했다.

“26만원으론 못삽니다. 자살하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추운 겨울 천막농성을
하면서 걱정되는 것은 이 투쟁이 저혼자만의 투쟁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사회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달라는 그의 호소문의 일부이다. 한달에 60만원만
있었으면 그는 가끔 아들을 만나며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차가운 관료주의나
행정편의주의 대신 전국의 15만 극빈장애인 하나하나의 각기 다른 사정을 보살펴주는
손길만 있었다면 그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최옥란이란 이름을 기억하여야 할
것이다. 1970년, 청계천에서 다른 모든 노동자들이 창백한 얼굴로 쓰러져가고 있을 때
`노동기본권을 지키라'고 외치며 분신자살하였던 전태일을 기억하듯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슬프고, 외롭고, 소외된 존재였지만 살아보려고 홀로 몸부림쳤던 한 장애여성이
죽음으로 호소한 `제발 관심을 가져달라'는 그 절절한 외침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한다.

-한겨레-

한겨레 신문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날씨도 꿀꿀하고 마음마저 우울하게 하는 하루입니다.
도대체 언제쯤 우리나라의 그 잘난 행정관료주의/편의주의가
청산 될까요?
세상에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을까요?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Profile
JEDI
2002.03.31 14:03
사람들이 술먹어 없애는돈만 좀 아껴도 우리나라에는 굶는 아이들도 없고 생존의 위협을 받는 가족들도 없어질수있을꺼라는 생각이 듬. 너무나 흔한게 들어서 이제는 무감각한 얘기지만, 누구에게는 하루밤 술값이 누구에게는 한달치 생활비가 되는 세상이라는게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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