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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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간장 달이는 냄새를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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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05월 10일 04시 29분 54초 1569 2
간장 달이는 냄새를 맡는다.
낡은 대문을 조용히 닫고
그 여자 집에서 나왔을 때, 골목
검은 흙길 담장 아래에 좁쌀같은 이끼꽃이 피어있고
나는 곧장 큰길 쪽으로 가지 못하고
번번이 그러던 것 같이 다른 골목으로 들어가는 때,
누구네 집 옥상에서인가
솥에 나무불을 때 간장 달이는 냄새 맡아졌었다.
짠내 쓴내, 소금과 곰팡이 냄새를
시간의 냄새라고 불러본다.
언제 그 냄새 한번씩 맡아질 때마다 나는
간장을 달이던 일과
집 고치고 남은 모래에서 산 바닷게를 데리고 놀던 일
늘 빨래를 물어뜯더니 지 목줄에 목을 감고 죽은
흰 개가 살던
어렸을 때 우리집 옥상도 생각하곤 하는 것인데
달여진 간장은
조금만 써도 음식맛이 나는 조선간장이 된다.
나에게
기억만으로도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그 여자가
얼굴 가까이 누워 말하던 것이 생각나 울컥했다.
봄 이맘때라고
아직 간장 달이는 집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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