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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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6만년만의 화성, 삼생의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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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08월 14일 16시 55분 22초 1283 6 33
뉘우우스 게시판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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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에, 그러니까 백이십년전의 나는 늙은 느티나무 아래에 앉아있었다.
얼마 동안이나 그 자리에 나와 앉아있었던가.
그러나 내 사랑은 오지않고 바람과 구름만 오갔다.
문득 아득한 어두운 벌판 끝에서 한 사람이 삿갓을 쓰고 나타났다.
그 사람은 발을 절뚝거리며 백 년은 걸릴 듯 천천히 힘겹게 내가 있는 곳으로 오고 있었다.
내 가슴속에서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그의 모습이 분명했다.
바로 그였다! 나는 두팔을 벌리고 끝없는 들판으로 뛰어나갔다.
그도 나를 알아보고는 삿갓을 벗어던지고 달려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죽을 둥 살 둥 모르고 달리고 또 달렸다.
우리 사이의 거리는 십 리에서 오 리로, 오 리에서 일 리로 줄어들었다.
드디어, 마침내, 어쨌거나, 하여튼 우리는 서로를 얼싸안았다.


"보고 싶었어."

"왜 편지를 안 한 거야. 삼 년 내내 매일 여기 나와서 기다렸단 말야."

"거기에는 우체부가 들어오지 않았어. 내 사랑을 전해줄 봉화대도 없었고.
난 삼 년 동안 걸어서 너에게 온 거야. 내가 편지이며 우체부이며 봉화야.
그리고 너의 나이기도 해."

"사랑해. 이젠 정말 헤어지지 않을거야."

"그래. 죽을 때까지."

그래서 우리 두 사람은 끌어안은 채 굶어죽었다.





성석제 <쏘가리>에 실린 '삼생의 연애' 가운데서.

늦잠을 자다가, 어젯밤 달 옆에서 빛나던 밝은 별이 어떤 별인지 혹시 아느냐는
ryoranki군의 뜬금없는 전화 때문에 깼습니다.;; (멋진 친구죠? 여성회원님들께 소개 가능합니다.)
때놓친 점심으로 고춧가루 조금 뿌려 짜장면 한그릇 먹으면서
여기저기 찾아보던 중에 떠오른 것이 이 대목이네요.
육만년의 우주적 거리. 아득한 그 사이.
애니메이션<별의 목소리>도 생각나고요.
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odessa
2003.08.14 17:43
지난번 자리를 떠난 ryoranki 군은 별을 쫓아간거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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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dsong
2003.08.14 19:06
몸집이 아주 커다란 그가, 디지털사진기 불량화소 검사하느라 새까맣게 찍어보았던 사진을 밤마다 하늘에 펼칩니다. 불량화성발견.
게다가 요며칠, 하늘색이 하늘색입니다.
버둥대는 당신앞에.... 우주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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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DI
2003.08.14 19:08
아주 오랫만에 외출을 하면 꼭 비가오거나 날씨가 우중충...
집안에 틀어박혀 뭔가 해야할일이 있을때는 그 하늘색 하늘.
나는 저주받은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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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lsomina
2003.08.14 21:15
어제 먼 좋은일이 있었을까마는 ... 그래도 술 한잔 하자고 모인 사람들
모임을 끝내고 사무실로 돌아온 밤, 아니 새벽1시 3분 경...

옥수동 언덕길에 서 있었는데, 추석 전 보름이 며칠 지나 그런지 달이 아주 환했죠.
달이 환해봤자 ...
늘 그렇듯 별 하나 없는 까만 밤 한 가운데 떠 있는 조금 찌그러진 달만 달랑 하나.. 그 달을 보고 있었는데 ,,
달 밑 7시 방향에 떠 있는 작은 별.
어~ 처음보는 별이네 ?
생전 처음 보는 (당연하지 5만년만 이라니) 별을 보다가 쟨 못보던 별인데 무슨 별일까 ? UFO인가 ? .. 그랬었는데 나두

달 하나, 별 하나만 떠 있던 서울의 까만밤 ..
그게 너 화성이었구나 ,,.. 왜 이제 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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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dsong
2003.08.15 02:07
제다이님, 그 아름다운 저주를 제게도 좀 나눠 주세요.
silbob
2003.08.15 03:49
요즘 달은 동화속 그것처럼 너무 커서,

저게 점점 커져서 토끼가 걸어나오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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