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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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오늘은 그렇게....

sadsong sadsong
2003년 11월 01일 05시 50분 10초 1170 2
"....해마다 신입생들 들어오면 선배들이 군기한번 잡고 술 사주고 그러는 자리가 있었어요.
그때 5차까지 술을 마셨는데 최후의 생존자 3명중에 나와 재하가 있었죠.
둘이 얘기해보니 음악에 대한 생각이 너무 순수하더라구요. 그때 마음이 맞아 심할 정도로 친하게 지냈어요.
일주일에 6일은 둘이서 함께 술을 먹고,
3일은 재하네 집에서 자고 3일은 우리집에서 잤을 정도로 늘 같이 붙어다녔으니까요."

학창시절 두 사람은 방배동 라이브 카페를 자주 찾았다.
둘이 술먹다가 3차쯤 되면 라이프 카페를 찾아 주인한테 사정해 피아노 치고 노래 부르고 술을 얻어먹었다.
얼마나 서로 마음이 잘 맞았던지 여학생들과 술 마셨던 기억이 한번도 없을 정도로 둘이서만 어울렸었다.

"사고 전까지 거의 5년동안 거의 붙어다니다시피 했지요. 내가 학교 가면 여학생들이 조르르 달려와서
'재하오빠 저기 있어요.'라고 웃고 가고 그랬을 정도였으니까.
맨날 둘이서만 술 먹으니까 그 자리에 한번 끼어서 같이 술먹고 싶어하는 여학생들도 많았었죠."

"어렵게 구한 녹음실에서 작업을 하는데, 혼자서 피아노도 치고 기타도 치고 모든걸 다하니 녹음실 엔지니어가
신인가수가 건방지다며 핀잔을 주는거예요. 참 힘들었죠. 그때 그러더라구요.
'광민이 형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요.
피아노 치는 선후배로 만나 둘이서 형 동생 하며 지냈던가 봐요.
그때만 해도 유학가 있던 김관민씨를 나는 몰랐어요. 재하가 죽고 난 후에야 김광민씨를 만날 수 있었으니까."

"자신있게 얘기하는 건데 재하가 살아 있었다면 가수 못 됐을 사람들 많았을 거예요."

< 수요예술무대 한봉근님. - 여기까지, 방정리하다 나온, 먼지쌓인 잡지에서 건져낸.>



짝사랑하던 오직 한 여인을 그리며 만든 노래들.
앨범속 플루트 소리는 모두 그 여인의 연주였다는데요.

용인천주교공원묘지.
그의 앞에 앉아,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날 그녀를 그려봐야겠어요.


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1


"형! 나는 듣기좋은노래, 밝은노래를 하고싶은데 노래를 만들면 왜 이렇게 슬픈 노래만 나오지?"


"1년도 채 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때부터 왠지 그를 보기가 싫어졌다.
심지어 밤늦게 찾아온 그를 그냥 대문 밖에서 돌려보내기도 했다.
얼마나 나를 원망했을까.
나 역시 괴로움에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다.
며칠동안 서로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늦은밤, 골목 저 끝에서 낯익은 하모니카 소리가 들린다.
현식이가 온것이다.
조금은 멋적은 표정으로 들어오는 그의 손에는 영락없이 돼지고기가 들려있다...."

<신촌블루스 엄인호님.>


“그 친구는 술을 먹고 나면 시비를 많이 걸었지요.
여러 번을 참다가 한번 실컷 두들겨 패줬어요.
그런데 그 다음날 아무렇지도 않게 제게 다가와 툭 치면서
‘야, 술 한잔하자’며 웃더군요. 꾸밈이 없고 돈 욕심도 없던 친구였습니다.
배에 복수가 찰 정도로 몸 상태가 악화됐는데도 본능적으로 노래를 불렀던...."

<두루두루 음악하는 송홍섭님.>


"가만히 숨죽이며 앉아있는 나를 보더니 어깨를 툭 치곤 "네가 유영석이냐?" 고 심드렁하게 말을 걸었다.
나는 얼른 "네"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김현식 선배는 회사 여직원에게 1천원을 주고는 소주, 오징어, 담배를 사다줄 것을 부탁했다.
내 머리속에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소주, 오징어, 담배가 1천원으로 들것 같지 않았는데
여직원은 선뜻 나가서 그것들을 구해왔다.
소주를 간단히 딴 김현식 선배는 맥주잔에 소주를 가득 부었다.
그러더니 불쑥 내 앞으로 내밀곤 "마셔"라고 전했다."

<푸른하늘일때가 그리운 유영석님.>


"후암동 집앞까지 형이 차를 태워다줘요.
차에서 내리면 불러세워 천원짜리 오징어 두마리를 사서는
어머니께 드리라고 하면서 건네주곤 했어요...."

<연주만 신경써봤지 노래는 신경안써봤다는 김종진님.>


어려운 친구들과 후배들에게 주머니를 탈탈 털어주기를 망설이지 않았던 그는 이런말도 했다죠,
"왜 사람들은 주머니에 만원이 있으면서 5천원만 있다고 하는거지?
있으면 있는대로 왜 못내주는거야?"


“술을 주지 않으면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고 해서 달래도 보고 화도 내봤지만
결국은 같이 술잔을 들곤 했어요....."

<동아기획 관계자님.>


“처음 김현식을 본 사람은 광기있고 건방지다고 생각할지도 몰라요.
사실 우리 기획사 출신 가수들은 현식이에게 한번쯤은 다 맞아봤을 겁니다.
그래도 김현식만큼 계산적이지 않고 음악에 대한 열정을 가진 뮤지션은 아마 없을 겁니다.”

<동아기획 김영님. - 여기까지, 인터넷 여기저기에서.>
김영님에겐 죽기 직전 '우리 완제를 잘 부탁한다.'는 말도 남겼다죠....



고등학교 뺀드부 1학년.
선배 트럼펫 몰래 불다가 시비가 붙어 한판. 중퇴.
잘생기고 외로웠던 싸움꾼. 술꾼. 노래꾼. 정꾼.

남서울공원묘지.
그의 앞에 앉아, 탁한 목소리로 넋두리 한번 해봐야겠어요.



sadsong / 4444 / ㅈㅎㄷ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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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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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panicted
2003.11.01 14:41
저 두분이 살아 계실때 노래 하시는걸 저는 못봤어요 어땠나요...
얼마나 숨죽이게 했나요 얼마나 노래꾼 이었나요
저분들의 노래를 들을때마다 괜시리 늦게 태어 났다는게 후회가 됩니다
73lang
2003.11.02 00:25
<또 다른 가인>

콘서트에서 노래를 부르지 않고 말을 하더라도

언어가 아닌 노래를 내 뱉었던 그의 음성이 저는 기억이 납니다.

라이브 소극장에선가 윤도현이 방위이던 시절 짧은 머리로 게스트로 처음 출연하던 시절

그 당시 저는 무대연출 보 시다바리럴 허던 시절이였고만요

그때 그는 마치 존 포커티 같은 웃음을 터뜨리며

자신의 첫 아이를 손으로 직접 받았던 경험을 이야기 하며

산후의 아내를 위해서 꽃 한송이를 사러 밤거리를 헤매이며 떠돌면스롱

길거리에서 마주쳤던 사람덜이 전부다 예사롭지 않게 보였었다넌 말을 험서...삶과 죽음에 대한 얘길 하더군요...

그리곤 이어졌던 '그녀가 처음 울던 날'을 부르던 그의 모습...

그모습이 무대뒤에서 망치들구 서 있었던 제가 본 생전의 마지막 모습이였습니다

떠나간 가인들을 추억하며....이슬한잔...우겔겔...


......................................영화럴 꿈꾸며 뇨(女)자럴 꿈꾸넌 당랑타법 1분에 14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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