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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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정말...시간에 기대어 볼까?

panicted
2004년 02월 16일 12시 14분 16초 1131 5 4
몇일전.

친구놈 과 버스를 타서 자리에 앉았는데 맞은편 자리 유리창에 누가 손가락으로

쓴것같은 글씨...."경숙"

"야 경숙이가 누구였지?"

"그러게 누구더라"

시간은 거슬러 고등학교 시절...

스타크래프트 라는 게임의 등장 과 함께 나는 말로만 듣던 컴퓨터 라는 것을

내손으로 다루기 시작했고 인터넷 이란것을 온몸으로 체험하게 되었다

피시방 이란것이 온 나라를 뒤덥었으니 이윽고 우리동네에 한개가 생겼다

버스에 같이 탔던 그 친구와 여러 친구들이 스타크래프트 만큼 아니 몇몇은 더 빠져들었던 게 바로

채팅 이었다(한 2놈 쯤은 지금도 빠져있다)

다른애들 은 어땠는지 몰라도 나는 그저 채팅을 해서 꼭 누구를 만난다기 보다 마냥 신기하고

모르는 사람에게 내 얘기를 다 해버릴수 있다는 혹은 남의 얘기를 들을수 있다는게 재밌었다

버스 유리창에 써있던 경숙 은 사실 지금도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그 때 내가 채팅을 해서

삐삐 의 시대가 거의 끝나갈 무렵 내 친구 삐삐로 자주 연락을 주고 받았던 아이였을 것이다

그 아이와는 그저 그런식으로 연락을 주고받고 하다가 그냥 어느날부터 흐지부지

연락이 끊겼었다

착하고 예쁘게 생긴 아이였다 나는 고등학교를 다닐때 가장 힘들었던게 매일 똑같은 하루였다

행동뿐만 아니라 생각까지도 매일 똑같아 지는것 같았다

어느날 아침에 여느때와 다름없이 일어나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는데 문득,갑자기,느닷없이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 어제도 이시간에 여기서 이러고 있지 않았나.....? 맞는데....그러고 보니 그저께도 그랬네... 어라? 그 전날도 그랬잖아? 이번주는 내내 그런건가....?이번달? 언제부터 이런거지?)

내가 나를 불쌍하다고 생각했던게 그 날이 처음이었다 매일 저렇게 산다는것 보다도 저런 생각을 하다가

빨리하고 나오라는 엄마의 소리에 나는 한순간에 단념 해버리고 말았다

("뭐? 그래서 뭐.......나보고 어쩌라고?")

정말 불쌍했다

괜히 그날 그런생각을 하는바람에 그날은 물론 그날부터 학교생활이 못견디게 지겨워졌다

그러다 하루동안 뭔가를 기다리며 살게 해준게 경숙 이였다

솔직히 말하면 그런 단조로움에 뭔가가 끼어들었다는게 반가웠고 내가 꼭 경숙 이란 아이한테 얼만큼

마음이 있었는진 모르겠다

연락이 끊기고 나서는 오래가진 않았지만 한동안 많이 아쉬워 했었다

친구에게 연락안오냐고 묻기도 하고 친척오빠 꺼라고 가르쳐준 핸드폰 번호 로 전화를 해볼까 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그냥 잊어버린지도 모른체 그렇게 살았나보다

버스에서 그 이름을 보고 생각을 해보다가 옛날에 채팅으로 연락을 해었던 아이였다는게 생각이 났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정말 시간이 지나니까 잊혀지는구나......)

다시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도...시간이 지나면 이렇게 잊혀질까.........)





요즘은 내가 그 사람을 잊고 싶은건지 정말로 내 기억에서 잊혀질까봐 무서운건지 알수가 없다

아마도...잊고싶지 않은것 같다

그 사람이 생각이 나면 힘들지만 왠지 또 그 사람 생각하는 걸로 버텨내는 것 같다

그 아이 처럼 나도모르는 사이 잊혀졌다가 버스 유리창 에서든 어디서든 뭘로든 나타나겠지

그 사람이 자주 다니던 곳에 가게되면 혹시 여기를 걸어가고 있진 않을까 해서 두리번 두리번 거리며 다니다가

또 갑자기 그 사람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저쪽에 나타나면 혹시나 들킬까봐 숨을곳을 찾는다

보고싶어 찾으면서도 속으론 진짜 나타나면 어떡하지 라고 한다 언제나 그렇듯 나타나지 않는 그사람이 또

왠지 야속하기도 하다

아주 혼자 길거리 에서 별 쑈 를 다한다

유리창에 써진 경숙 이 라는 이름을 보고 내내 그 사람 생각만 해서 경숙이에게 미안하기도 했던

왠지 그날따라 당구 가 잘 먹어들어 가던

아주 날씨 좋은 오후였다.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vincent
2004.02.16 18:37
세상엔 참으로 많은 경숙이가 있지요. 게다가...
경숙이로 시작했다가 경아 경미(!!!) 경주 미경 은경(!!?) 윤경 숙영 숙진 숙현 영숙이 정숙이 미숙이 등등의
이름으로 확장시켜 꼽다보면....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나고 오게 될지도. --

어디선가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는데
불쑥, 뒷자리 어디쯤에선가 누군가 '경숙이'를 부르면 한 번 뒤돌아 봐주세요.
applebox
2004.02.17 00:40
오늘은 왠지...이름에 같은 글자 들어가는 이름들을 들먹이는(?^^;;) 리플이 많군요
(빈센트님 다른 적당한 단어가 기억이 안나서리...)
panicted
글쓴이
2004.02.17 18:36
아이고....이를 어째....정말정말 죄송합니다 몰랐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불편하시면 삭제 하겠습니다 __;;;;
vincent
2004.02.17 18:51
뭐가 죄송하실까요????? 설마...
저 (위 이름들 중 하나이긴 하지만) "경숙이" 아닌데요. --;;;
(그, 그런 의미가 아니었는데 --;;;)
이름 하나가 주는 추억의 '파장'이랄까 뭐 그런. 제가 아는 '경숙이들'도 잠깐 떠오르고 뭐 그런.
그 '경숙이'한테 미안하다 하시니 뭐 그런. 뭐 그런거였어요.
패닉티드님 반응 때문에 자꾸만 웃음이... 여튼 헷갈리게 해서 죄송합니당.
panicted
글쓴이
2004.02.17 22:29
헉......-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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