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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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그랑부르>를 보니 옛생각이 난다.

pearljam75 pearljam75
2004년 04월 03일 04시 36분 47초 1299 2 2
1. <그랑부르>와의 조우

대한민국 역사상 1년에 공식적으로 두번의 대입 수능시험을 치른적이 있는데

그게 93년이었다.

주로 큰 시험들은 겨울철에 치뤄졌던것 같은데 원래 무슨 중요한 시험만 친다하면 하늘이 어떻게 알았는지 날씨는 그 전날밤부터 기가 막히게 추워졌었으나

93년에 대학만이 인생의 목표라고 생각하던 고3이었던 아해들은 한 여름, 무더위속에서 반바지에 슬리퍼를 질질 끌고 수능 고사장으로 가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대학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걸 일찍 깨달은 아해들은 그때 더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겠지만)

나도 일년에 수능을 두번 치룬 아해들 중 한명이었고, 수능 시험이 끝나고 나는 잽싸게 신촌 신영극장(현재 아트레온 자리)으로 달려와서

스필버그의 <주라기공원Jurassic Park>을 보았고, 추운 11월에 2차 수능을 보고 또 신영극장에 와서 <얼라이브Alive>를 보았었다.

영화표를 끊으면서도 수능점수는 별로 신경도 안썼다.

사실, 난 성적표받아보고 52명중에 48등을 했을때도 어? 심하네 했을뿐, 괴롭거나 슬펐던 학생이 아니었으니까.

하향 성적표 받고 그자리에서 쓰러지거나 울거나 하는 걸 오바한다고, 주접이라고 생각했었으니까.

살다보면 이깟 48등은 인생의 쓴 맛 측에도 끼지 못한다는 것을 이미 감지해서 그랬을까? .....그건 모르겠고.

200점 만점의 수능시험, 1차건 2차건 점수는 .... 뭐, 잘 나올 까닭이 어디있어야 말이지... 흠,흠.


고3땐 부모님이 1박 2일 이상 출타하신 친구네 집에 몰려가 밤새 비디오를 3개 이상 보던 취미들이 있었는데

말 안듣는 자녀를, 당신 화를 참지 못하시면 가죽벨트를 그자리에서 풀러 때리시던 중소기업 규모의 가죽사업 하시던 친구아버님과

아들 딸 과외비 버시느라 공장다니시는 그 친구 어머니가 여행을 떠나셨을때,

장 자끄 아노의 <연인>과 뤽 베송의 <그랑부르>와.....또.....뭐 하나를 밤새 본 기억이 난다.

또 하나가 뭘까?.....음.....<와일드 오키드-레드 슈즈 다이어리?>나 <투문정션>같은거였을거다. 아마.....



하여간 최고는 <그랑부르>......



2. 순수한 남자

사실, 건강한 몸에, 긴 속눈썹, 귀여운 얼굴, 소년같은 순수함을 간직한데다가 돌고래와 의사소통을 하는

이 막강한 자연친화력까지 겸비한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남자인 쟈크에게 여자들이 헌신적으루다가 마음을 주게 되는것은 당연지사,

영화에선 조안나 한명뿐이지만 사실상으로 보자면 여자들이 우글우글댔을것이다.

<그랑부르>를 보고 나도 며칠동안 쟝 마끄 바를 떠올리며 미소를 짓고 했으니까...

부드럽게 그리고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연출된 철창 엘리베이터 키스신, 그리고 그에 이은 귀여운 베드신까지,
어찌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쟈크를 깊이 사랑한 조안나, ......

이런 멋진 놈이 알고보니 같은 포유류이긴 하지만, 사람이 아니라, 돌고래라니..... 환장을 한다.

내 사랑하는 이가 돌고래라니, 바다로 보내주지 않으면 곧 죽을 것 같으니.... 결국 사랑한단 한마디 하고

그 인연의 끈, 육지의 끈을 놓아버리는 조안나,



..... 몇달 후 , 조안나, 애를 낳는데 ......이런, 이런, 돌고래를 낳아버렸구먼,

해외토픽에도 나오고, '세상에 이런일이' PD도 만나다.

아이고 이런 박복한 년, 내가 임신했다고 어렵게 고백까지 했구만 쟈크는 바다속으로 떠나버렸고.

쟈크 닮은 아들하나 낳아 평생 수절하며 살아볼까 했구먼, 이게 웬 돌고래여.....

............이종개체간엔 뭐가 안되겠지만. 그냥 한번 상상해봤다.


사랑하는 남자가 생기면 그의 아기를 낳고 싶어하는게 여자들의 마음인가?

청년 뤽 베송은 그렇게 생각했었나보다. .... 과연 그러한가?



절대순수.....여자들의 대부분은 자신만의 기사가 되어 줄 튼튼하고 멋진 남자를 좋아하겠지?

.....세상에 어느 여자가 연봉, 보험, 노후대책, 육아와 교육, 기타 먹고사는 문제는 생각도 안하고

바다만 바라보고 돌고래랑 대화만 하는 절대순수결정체와 서류상 어떻게 해보려고 맘이나 먹을까?


너무 맑은 물에선 물고기가 살지 않듯, 너무 순수한 남자는 여자를 피곤하게 한다.

남자가 여자를 떠나던가, 여자가 남자를 먼저 떠나던가, 둘 중 한가지 결과를 맞이할 수 밖에 없다.

사람은 적당히 세속적이어야한다. 그게 귀여운 맛도 있고, 데리고 살만한거다...... 안그러면 절로 들어가야지.



3. 바다가 사람을 부른다.

작년 6월, 강릉여행갔을때 배타고 바다로 나가 바다낚시를 한 적이 있다.

낚시대를 늘어놓고 깊은 바다 속을 보고 있으니, 그 푸르름에 자꾸만 몸이 쏠리는 것을 느꼈다.

당연히 <그랑부르>의 쟈크 생각이 났다. 나도 막 뛰어들고 싶었다. 저 어두운 심연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물이 사람을 부르는건 왜일까? 난 쟈크처럼 돌고래도 아니구먼.
물속에 귀신이 있어서 그런가? 그래서 한강 근처 아파트 주민들의 자살율이 높은가부다....

강릉, 넓은 바다, 작은 배 하나에 의지해 앉아있던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을만큼 강렬하게 느껴졌지만,

뭍으로 가면 민박집 할머니가 그 자리에서 낚시로 바로 잡은 생선을 회쳐서리 소주와 함께 한 상 차려주시는

생각이 바다로 뛰어들고 싶은 맘을 잡아버렸다.

상추에 초고추장찍은 신선한 회, 마늘 한쪽, 소주 한잔, .....아, 기절.

회와 소주가 날 살렸다.

결국 여행 스케줄로는 그날 서울에 올라가기로 했지만 난 또 민박집을 잡아 1박을 하게 되었다.


4. 강원도 여행은 언제나 즐겁다. 그게 내가 진짜로 느끼는 강원도의 힘이다.

-끝-

Don't look back in Anger.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aesthesia
2004.04.03 08:53
뤽베송.....제가 정말 좋아하는 감독 중의 한명입니다
'니키타'의 아류작 '암호명 니나'를 전 중학교 시절에 보았습니다
그때 부터 주인공 여자 '브리짓 폰다'를 좋아하게 됐고 그녀가 연기하는 음울한 스파이 역은
보는 저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그 후, '레옹' 이라는 영화에서도 '나탈리 포트만'을 통해 그 음울한 분위기가 풍기는데,

뤽베송은 역시 보는 사람의 마음 한켠의 감정선을 건드리는 능력이 있는듯 싶습니다,,
^_^
java1004
2004.04.03 11:33
그랑부르.... 저도 너무 좋아하는 영화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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