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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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엄마와 랄프로렌

pearljam75 pearljam75
2004년 04월 21일 02시 08분 45초 1331 2 13
홍콩의 면세점에서 동생은 랄프 로렌 가방을 몹시 탐내했었다.

명품(혹은 고가품)측에 넣을 수도 없는 랄프 로렌이지만 가격도 만만하고 디자인도 무난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생은 랄프로렌가방을 샀다.

"엄마 선물이야." 라는 명목아래서 말이다.



어제 엄마에게 랄프 로렌 가방을 전달했을때, 엄마는 디자인이 너무 아줌마랑 맞지 않는 젊은 스타일에

지퍼가 없으니 쓰리꾼들의 표적이 될수있을것 같다 염려하셨고

오늘은 급기야 수선집에다가 만오천원을 주고 새 가방에 지퍼를 달으셨다.

지퍼만 달았다면 다행이지만 지퍼 대신 달렸던 훅 역할을 하던 멋진 천 쪼가리도 깨끗이 잘려나갔으므로

그 가방을 본 동생은 거의 기절 직전까지 갔다.


엄마 핑계를 대면서 살때부터 여차하면 자기가 매고 다닐 궁리를 펼쳤기 때문이다.


즐거운 맘으로 술마시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에게 동생은 문자를 보냈다.

"야, 엄마가 랄프로렌에 뭔짓을 했는지 와서 봐라"


집에 와서 보니 랄프로렌가방은 볼품없는 아줌마 가방으로 변신해 있었고 나도 다소 실망했다.

오로지 쓰리꾼을 걱정하여 튼튼하게 지퍼를 달 생각뿐이셨던 엄마.

하지만 젊은 딸들은 생활력 강한 엄마의 센스없음에 땅을 치고 통곡한다.


엄마보다는 만만한 핸드백이 먼저라 이건가???


노희경작가의 말처럼, 사슴의 가냘픈 모가지에 빨대를 꽂고 피를 빠는 잔인한 한국인들처럼

아무리 뼈빠지게 고생해서 자식새끼들 키워봤자 죽을때까지 감사하다, 말도 못듣고 고생하는건 한국의

부모님들인것 같다.


효도한다 생각마라, 그 빚 갚는것조차 불가능하다...

아, 나는 대학 등록금도 아직 못 갚고 있구만...



건방지게 한마디 하자면 제발, 당신들만을 위해서 사셨으면, 왜 어리석게 되돌려 받지도 못할 은혜를 베푸시나.

당신들을 위해서 사는 스타일이 진정으로 당신들과 더불어 자식의 독립체를 위한 일일텐데....


"정情"이라는 비이성적인 정서때문에 좋은 꼴 못보고 사는 사람이 여럿이라고, 싸가지 없이 툭 던져 말해본다.


나는 그럴수있을까?

내 배 아퍼서 낳은 자식들보다 나먼저 챙기는 습관 기르는 거 말이다.

자식새끼꺼라면 또아리 틀어서 싸놓은 똥모양도 이뻐 보인다는데 말이다.

히휴.......


이성적으로는 당해 낼 수가 없다.



* 앗, 무슨 바람이 나셨나, 안방에서 안주무시고 거실에 요를 깔고 주무시는 엄마, 아빠.

케이블이 나오는 거실 TV로 <섹스 앤 더 시티>를 즐겨보던 나는 또 엄마, 아빠를 미워한다.

에잇! 노인네들, 왜 안방 침실에서 안주무셔!!

집나가서 살테야!!

(내 나이 서른에 엄마는 쉬흔 셋, 아빠는 쉬흔 일곱이시구만, 노인네는 무슨....역시 난 의외로 싸가지다.)

Don't look back in Anger.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aesthesia
2004.04.23 08:20
짱이예요 ㅋㅋ
hkchohk
2004.04.27 03:05
제가 개새끼를 키우는데요.
그중에서도 우리 막내 꼬맹이 똥들이 을마나 이쁜지 몰라요.
꼬맹이 똥을 볼때마다 기분이 좋아지구요. 뿌듯해요.
그리고 똥이 왜케 작은지 저눔이 덩치도 작은것이 너무 적게 먹고 적게 싸는것이 아닌가 안타까워요.
내가 집어준 사료 낼름 받아먹을때 기분 좋구요.
자식 새끼 키우는것도 비슷할거예요.

그리고 나가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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