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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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밥은 먹자....제발.....

junsway
2004년 08월 25일 01시 44분 02초 1371 4 3
선배 시나리오 작가 형의 말 '난 돈 안주면 머리가 안돌아가.'

마치 코인을 집어넣어야 움직이는 자판기처럼 선배는

언제나 돈을 먹어야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글을 뽑아내는 기계같다고 자신을 말했다.

정말 동감한다. 몇일전에 갔었던 영화사에서 일하는 조감독 형이 이런 말을 했다.

한국영화계는 두가지 시나리오만 통용된다.

스폰서 입장에서 '돈이 될 것같은 시나리오'와 배우의 입장에서 '캐스팅이 될 것 같은 시나리오.'

결국 배우가 잡히면 돈이 들어오고 돈이 되려면 배우의 마음을 훔쳐야 한다는 사실. 문제는.....



이러한 꿀꿀한 현실을 만든 상업주의의 화신인 인간들이 정말로 작가들에게 투자를 안한다는 사실.....

사기를 치려해도 밑돈이 필요하고, 여자를 꼬시려해도 자금이 필요한데.....

몇십억짜리 프로젝트를 하면서 작가에게 주는 돈은 정말 거지같다.

40억짜리 영화만들면 작가에게 얼마줄까? 4천만원...오호 큰 돈처럼 보인다.

그래봐야 전체 예산에 1%다. 그나마 그 돈도 절대로 보장할 수 없다.

신인의 경우 2천만원도 못받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2천만원이면 0.5%다.

또 그러한 글을 쓸 기회도 그닥 많지 않다. 정말 시나리오 작가 먹고 살기 넘 힘들다.


그래도 쓰자. 작가가 다른 것에 손을 대는 순간, 이미 승부는 끝난다.

예전에 그래도 잘 나간다는 한 선배작가형이 한 말이 생각난다. '

작가는 직업이 아니라 숙명이다.' 머리를 깎고 구도의 길을 걸어가는 스님이 되라는 이야긴데.....

요샌 스님들 잘먹고 좋은 질감의 승복을 입는다.

구도란 게 반드시 돈이 없어야 하고 고행에 영혼을 던져야만 나온다 말인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의 미덕을 모르는 작가가 무슨 현대영화를 쓸 수 있겠는가?

명품도 사보고, 좋은 술집가서 술도 마셔보고, 소비에 눈이 먼 여자애들도 좀 만나봐야 하고,

책도 사보고, 컴퓨터도 업그레이드 시키고, DVD도 사봐야 하지 않겠는가?

취재하려면 디카나 녹음기도 있어야 하고, 가끔은 필수적으로 여행도 좀 다녀야 하는데......

현실은...넘 열악하다.



그래도 밥은 먹자....제발...... 아우슈비츠도 밥은 줬고, 조직폭력배들도 일단 배는 채우고 일을 시킨다.

영화하는 친구들 사이에 '뭘 해도 영화하는 것보다 났구만.'이란 말을 들을 때마다 울화가 터진다.

충무로나 강남에 영화인들을 위한 무료급식소와 만남의 장소라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제발 부탁인데 문화관광부나 영화진흥위원회가 나서서 영화인들 밥은 먹여라.

다른 건 부탁하지도 않고, 부탁해서 들어주지도 않겠지만 나라에서 영화인들 한끼 밥은 줘라. 부탁이다.


국제영화제 자꾸 만들지 말고, 국내영화인들 밥주는 기관 하나 만들어라.

밥은 먹자 ....제발......



그러나 점점 힘이 떨어진다. 가능한 일일까? 한국인들 인사가 '식사하셨어요?'인데

그 말에 고개를 끄떡일만한 그런 인간이 되보자.

다시 한번 외쳐본다. '반찬은 김치 하나면 된다. 밥을 다오, 돈많고 영화정책 시행하는 선배 영화인들이여.'

아님 술이라도 사주던지......





취생몽사.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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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rljam75
2004.08.25 02:26
아님 술이라도 사주던지...... "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술마시고 삘 받아 하루밤만에 써제껴보는 상상. (길바닥에서 신문지 덥고 자는게 아니라...)

순수개런티 1억짜리 작가가 나와야 한국영화는 발전할거라던 N영화사 대표의 말,
1억짜리 작가로 가오를 잡을 수 있으려면 .....
술 그만 쳐마시고 열심히 열심히 쓰겠습니다. 내일까지만 마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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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oson
2004.08.25 02:34
밥...어느 순간 영화사 사무실은 밥먹으로 나오는곳....이 되어 버렸지요...

그래도 어쩌겠습니까..망할 한국에서 태어났고...망할 한국에서 영화하고 있는데...

아 님의 글을 보니 갑자기 술기운이 확 올라옵니다...

그나마도 아까 회사에서 지정해놓고 먹는 밥집에서 반찬 안주삼아

소주 한잔 홀짝 거린게 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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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rljam75
2004.08.25 02:53
필커의 서버가 화재사고로 사망한 후 부활한 후 요 며칠 에세이 게시판에 백화만발한 글들은
'부활'과는 상관없이 '돈'과 '밥'에 관한 현실적 고뇌에서 떨어지는 진물들로 얼룩져있네요. 슬,퍼,요.

우리끼리니까, 없는 살림 뻔히 다 아니까 이렇게 다 보여줘도 되는건지,
없어도 있는척, 고매한 작가인척, 감각있는 영화인인척 가오를 잡는게 더 좋은건지....
잘 모르겠네요.

없어도 자존심은 지키고 싶은데.....
내게 기대를 걸었던 부모님께, 잘나가는 대학동창들에게, 시집가서 남편월급으로 명품관 쇼핑 다니는 기집애들에게,

자존심은 지키고 싶은데....

그래서 그들에게 요며칠 쓰여진 필커 에세이 게시판은 절대 보여주고싶지 않군요.


어서 고쳐나갑시다.

그,러,나.......'구조적' 또는 '총체적' 문제라는 어휘는 내가 당장 해결할 수 없다는 무력감만 줄 뿐,
나를 절이나 성당으로 향하게만 하더이다.

기도라도 하리다... with all my 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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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oson
2004.08.25 05:48
이런 넋두리....아는 사람들과의 술자리에선 오히려 말 못하죠...

그 놈의 자존심 때문에...^^;;

이제 슬슬 자야겠습니다...잠을 자야...꿈을 꾸죠..

그럼 모두모두 굿나잇....음...굿모닝인가? 여튼....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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