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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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서럽게 살다 간....

sadsong sadsong
2004년 10월 17일 04시 04분 41초 1199 1
일년 전 가을.

이미 어둑어둑해진 어느 공원묘지 그의 묘비 앞엔
몇개의 소주병과 몇개의 꽃다발과 몇개비의 담배꽁초와 그의 음악들이,
그를 향한 추억들과 함께 보기 좋게 어우러져 있다.

쉬어갈 작은 벤취까지 가지고 있는 그는 지금 행복하거나 행복하지 않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본다.
걸음을 옮겨 주위를 돌아본다.

내가 찾은건지 나를 부른건지 쉽게 알 수 없는 저 뒷쪽 어느 무덤.

다가간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그 비문은..
큼직한 무엇으로 내 가슴을 힘껏 내려친다.

<서럽게 살다간 O선화의 묘>
<선화 우리 착한 선화 너는 갔어도....>

여고 2년생. 아니 1학년이라고 적혀 있었는지도.


서럽게 살다간.. 서럽게 살다간....

사랑하는 딸 마지막 보내는 길에까지
그런 비문을 토해낼 수 밖에 없었던 부모의 찢긴 가슴은 어떤 것이었을까.
<사랑하는 OOO>쯤으로는 깊은슬픔 묻을 수 없었던, 그 피눈물은 얼마나 짙은 것이었을까.

어떤 슬픔이었기에.. 어떤 사랑이었기에....

그 후로 한동안은 '서럽게 살다간' 그녀와,
한맺힘으로 그녀를 보냈을 이들로부터 쉽게 빠져나올 수 없었다.


언젠가의 나는, 어떤 크기의 서러움 안고 떠나게 될지.
예측할 수 있는 이별이라면, 조금은 덜 서러울 수도 있겠지....
내가 사랑했던 그들의 슬픔을 조금은 덜어줄 수도 있겠지....


한 해 전 그녀를 만났던 날이 어느새 다시 다가와
서럽게 살다간 그녀가 살며시 떠오르는 요즘.


sadsong / 4444 / ㅈㅎㄷ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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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그곳에서 여유있게 술한잔 기울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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