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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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우체통

73lang
2005년 02월 10일 14시 49분 59초 1797 4 3
#1 기억이란 인간의 이성을 담당하는 대뇌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담당하는 뇌의 시상하부 변연계에 있다.

그래서 인간은 추억에 잠길때마다 감상적으로 되는가 보다.



#2 초고를 완성했다.

나는 평온한 기분으로 PC방을 나섰지만 잔디밭 한가운데서 바람을 등지고 서 있게 되었다.

담배 한대를 물었다.

나는 피로에 무척이나 찌든 눈으로 깜빡이는 모니터 화면속의 커서를 쳐다보고만 있는 날이 더 많았다.

무기력한 반복이 목을 죄어와도 나는 끝없이 편지쓰기를 강요했다.



#3 내가 그뇨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집 주소뿐이다.

너무 먼 곳에 있는 그뇨...

지방에 살면스롱 직업의 특성상 자주 해외를 나갔다 들어오는 그뇨...

직접 손으로 편지를 써보긴 오래간 만이었다.

설 같은 명절연휴 기간동안은 무척이나 지루하지만 짧게 느껴진다.



#4 핸드폰 벨소리가 13번이나 울렸다.

알수 없는 발신자 번호

"네.." 받자마자 끊어진다.

사실 내 자신이 제대로 마음먹고 시작하려면 이미 늦은 것이다.

기회와 시간은 개인의 진정한 결정 보다는 항상 빨리 결정되어진다.



#5 나는 수십통의 편지를 그뇨에게 보냈었다.

그 동안 다이어리에 표시해 놓은 것을 보니

365일 동안 DDR 162일, 음주 302일 --;;;

답장을 기다리는 심정에 비하면 1년은 쉽게 지나갔다.

우체국에도 여러번 갔다.

관공서의 어두운 그레이를 배경으로 한 담당 아가씨에게 주소를 확인시키거나 혹시 누락된 우편물이 있는지 항상 따지듯이 물었다.

결국 담당 여직원은 피식 웃고 말았다.

그 웃음은 나를 더욱 슬프게 하고 말았다.



#6 나는 누군가의 의견에 동조하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했다. 그뇨의 의견을 제외하고는.

'이뿐아 니도 내가 느끼는 것을 느끼고 있지? 그렇지? 아니더라도 연락은 줘, 제발..ㅜㅜ'

나는 자기전에 두손을 모으고 똘똘이를 잡았다.

농부가 낟알을 하나 둘 추수하는 심정으로 정성들여 똘똘이를 애무해 줬다.

기도하는 심정으로 양손을 번갈아가며 DDR을 하면스롱 그뇨를 떠올렸다.--;;;




#8 "그래서? 니가 하고 싶은 얘기가 뭔디?"

"이런 짬통에 먹다남은 개밥 찌끄래기 생선 대가리 같은 씹썌이가...
글에 다 써 있잖여~!...작가는 작품으로만 얘기하는 벱이여!!"

"긍께 말하고자 하는 메쎄지가 뭐냐고오~?"


너무나 화가나 고환에서 열불이 난다.;;;;

기껏 힘들게 완성한 시나리오를 보여줬더니만 자꼬 주제나 메쎄지가 뭐냐고 물어본다.

이 개밥 찌그래기 같으니라구....문자 메쎄지나 수십통 보내줄까부다;;;



#9

5년 만에 우크라이나에서 돌아온 선배를 만났다.

나랑 띠동갑.

두 아이의 아빠.

직장이 곧 종교였던 사람.

대기업에서 살아남기 위해 피땀 흘렸던 그 동안의 고생담이나

부장이 되기까지 직장에서 짤리지 않고 전투를 치루듯 살아왔던 인생들에 대한 너스레를

묵묵히 들어주는 역할이 그리 힘들지만은 않다.

2차가 기다리고 있다.

3차까지 가기 위해서는 '아빠 힘내세요~' 같은 노래라도 한곡 불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선배는 2차때 꼭 언니들이 있는 고급 룸이나 단란이를 가는것이 정규 코스라는 것을 난 잘 알고 있었다.

놀래미와 도미 두 접시에 소주 몇병 먹어드만 술값만 20만원에 육박한다.

벌써부터 취하면 안된다. 2차가 기다리고 있다.




#10 "설에 어디 안 내려가?"

"응...고향이 서울이거든..."

왜 이곳 언니들은 대부분 고향이 서울일끄나?

검지 손꾸락을 그뇨의 똥꼬에다 깊숙히 찔러봤다.

"오빠 변태야?" 불쾌하다는 듯이 그뇨가 정색을 한다.


양주 5병

난 잘 버텨냈다.

이미 선배넌 맛탱이가 가부렀다.

팁을 뿌리며 일어나는 선배를 '욘사마'라는 명찰을 단 웨이터와 부축하고 가게를 나섰다.

몸을 휘청거림스롱 지나가는 택시들을 향해 선배가 외친다.

"뷁만원!!!! 우크라이나까지 뷁만원!!! 이 씨발새끼덜아~~~!"




#11 찜질방을 나서며 집까지 걸어왔다.

집근처에 있는 허름하고 빨간 우체통이 눈에 띄었다.

가만있자 오늘은 빨간날 사이에 있는 월요일이구나

우체국이 오늘은 안 쉬나??

편지는 한번도 그뇨에게 간적이 없는 것이 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번도 우체부가 우체통에서 편지를 꺼내는 것을 볼 기회가 없었다.

'그래, 내가 왜 이 우체통을 한번도 의심해보지 않은거지!'

지난 1년간 그뇨에게 보냈던 편지가 먼지가 쌓인 채 우체통 안에 가득 쌓여있을것 같았다.

난 우체통을 감싸 안았다.

우체통에선 그뇨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아카시아 향이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난 아직 날이 밝기 전의 돌무더기에 걸터앉아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럼 그렇취!! 신문 배달이나 환경 미화원들을 볼 수 있었던 건 항상 늦은 밤 이른 아침이여써!!!"

나는 기다렸다.

한번도 졸지 않았다.

그곳에서 담배 한갑을 다 피워대면스롱 기다렸다.

아침에 되어 가족 단위로 한복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여러번 지나칠때까지 나는 꼼짝않고 있었다.

우체통에는 동절기땐 오후 2시에 편지를 수거해 간다고 적혀있었다.

빵과 우유, 담배 한갑을 사들고 계속해서 그곳을 지켰다.

구멍가게 아저씨가 이상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본다.


'그려 편지는 전해지지 않았던 거씨여!!! 그뇨는 내 편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러!

아...이뿐아 보고 싶고마!!!'




오후가 되자 나의 확신은 더욱 강해졌다.

나는 내심 우체부가 오지 않기를 기다렸다.

구멍가게 주인도 아무말 없는 걸 보면 확실해졌다.

모든게 확실해 졌다.

인자 내가 편지쓰기를 중단하고 어둠속에서 고독을 씹음시롱 똘똘이를 못살게 굴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탈탈탈탈...

작은 오토바이가 나를 향해 다가온다.

우체부는 나를 한번 스윽 위 아래로 훑어보고는

열쇠로 우체통문을 열고 편지를 긁어 내었다.

몇 통 되지 않은 편지를 한손에 쥐고 가방에 집어 넣었다.

오토바이를 유턴해서는 몰아갔다.


나는 짐짓 아무말도 할 수 없는 심한 낭패감에 휩싸였다.




뜬금읍씨 트뤼포감독 성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메쎄지를 찾으려면 우체통을 보라구?? 개씨발~지랄허네! '

그란디 왜 자꼬 웃음이 나는 것일끄나?



아마 올해는 예전과 다름 없을지도 모를일이다.

내 똘똘이는 여전히 외로울지도 모를일이다.

아마 그 선배는 택시를 못잡아 우크라이나를 가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뇨는 나의 편지를 뜯어보지도 않고 찢어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마 내 시나리오나 내 글의 메쎄지는 사람들에게 전달되지 못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 모든 것에 불구하고 난 웃을 수 있다.




때는 온다.

아니 오지 않더라도

난 웃을 수 있다.




우겔겔...


















#0

Laugh, and the world laughs with you ;
웃어라, 그럼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Weep, and you weep alone,
울어라, 그럼 너 혼자만 울 것이다.
For the sad old earth must borrow its mirth,
But has trouble enough of its own.
슬프게도 세상은 웃음을 머금고 있지만, 이미 그 스스로의 문제로도 가득하다.
Sing, and the hills will answer
노래하라, 그럼 언덕이 대답할 것이다.
Sigh, it is lost on the air.
한숨쉬어라, 그럼 그것은 허공에 공허하게 울릴 것이다.
The echoes bound to a joyful sound,
But are slow to voice your care.
메아리는 즐거운 목소리로 가득차 있지만, 너의 나쁜 일에는 반응하지 않을 것이다.


Rejoice, and men will seek you ;
환희하라, 그럼 사람들이 널 찾을 것이다.
Grieve, and they turn and go.
비통해하라, 그럼 사람들이 널 떠날 것이다
They want full measure of all your pleasure,
But they do not need your woe.
그들의 너의 기쁨이 가득찬 환희를 즐겨찾지만, 너의 애통함은 찾지 않을 것이다.
Be glad, and your friends are many ;
기뻐하라, 그럼 많은 친구들이 생길 것이다.
Be sad, and you lose them all.
슬퍼하라, 그럼 많은 친구를 잃을 것이다.
There are none to decline your nectared wine,
But alone you must drink life's gall.
너의 축복스런 와인을 거부할 친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생을 한탄할때는 너 홀로 술을 마시게 될 것이다.

Feast, and your halls are crowded ;
축제를 열어라, 그럼 너의 홀은 사람들로 가득찰 것이다.
Fast, and the world goes by.
서둘러라, 그럼 세상도 그렇게 갈 것이다.
Succeed and give, and it helps you live,
성공과 베품은 너를 세상에 있게 한다.
But no man can help you die.
그러나 누구도 네가 죽는 것은 막지 못할 것이다.
There is room in the halls of pleasure
For a large and lordly train,
But one by one we must all file on
Through the narrow aisles of pain.
축복의 기쁨이 가득찬 홀의 한 구석에는 언제나 크고 커다란 순차의 공간이 있다.
그러나 우리 각각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좁은 고통의 통로를 극복하고 지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Ella Wheeler wilcox의 Solitude(고독)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Profile
kinoson
2005.02.11 00:45
메세지....허허...꼭 그걸 중요시하는 인간들이 있죠...허허

메세지는 무슨....엠에쎈 메신저 하시는것도 아니고...허허

그 사람 주소좀 불러줘요...행운의 편지나 보내버리게...

메세지 메세지....잠깐 옛 생각이 나서 흥분해 봅니다...
73lang
글쓴이
2005.02.11 04:11
아그야~! 흥분할꺼 전혀 읍따!

메세지 중요허다. --;;;;
Profile
kinoson
2005.02.11 19:55
으하하...

형....알면서....
truffaut
2005.02.12 03:31
왠 기자가 메세지를 물었을때 그냥 둘러대며 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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