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1,369 개

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박수 작작 쳐대라

sadsong sadsong
2005년 11월 15일 02시 07분 40초 2106 5 3
자, 시작할게.

아니, 공연장에서 음악 감상하면서 뭘 그렇게 박자 맞추겠다고 박수들을 쳐대는거야?
'지금 들려오는 저 음악에 맞춰 쉬지 않고 박수를 쳐야만 하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거야?

뭘 그렇게 박수를 못 쳐서 안달이 나셨습니까.
앞에서 누구 노래할 때 박수 제대로 안 쳤다고 어려서 매 맞은 적 있으세요?


박수칠래 : 야! 음악 들으면서 기분 좋아서 박수 치는데, 그게 잘못됐냐? 왜 또 시비야?


아, 미안. 내가 흥분해서.. 설명도 없이 몰아 부쳤네.

그러니까, 신나고 흥겨운데 박수 치지 말란 얘기는 당연히 아니지 않겠니?
내 얘긴 그 얘기가 아니고....

이거야 원,
이별을 노래하든 죽음을 노래하든 그딴 건 너희에게 관계없다 이거지.
함께 흥겨워 마땅한 곡인지, 가만히 듣고 느껴야하는 곡인지는 너희들에게 아무 관계없다 이거야.
박자가 '조금만' 빠르다 싶으면, 아니 왠만큼 느리지만 않다 싶으면,
그렇게 너희 입맞(손맛이 맞겠다)에 맞는다 싶으면,
객석의 너희들은 여지없이 두 손 들어 지랄들을 하더란 말이다.

그래, 박자 빠르기가 꼭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지. 느린 곡에도 박수 칠 수 있어.
리듬 타면서 칠 수 있는 그런 곡들도 있지.

근데, 너흰 그게 아니야!
너흰 곡 감정에 관계없이 습관적으로 손을 놀리는 박수기계에 지나지 않아.

무대에 선 가수들이, 연주자들이,
딴에는 분위기 잡고 눈물이라도 똑 떨어질 듯, 숨소리 하나에까지 신경 써가면서 노래하고 연주하는데,
(그러니까, 그런 분위기의 곡일때 얘기다.)
바로 앞, 객석의 너희들이 박자 맞춘답시고 '밝은 얼굴로' 손뼉을 치고 있으면 말이야,
그분들께서 감정도 흐트러지고 당황하시게 되잖아요.


박수칠래 : 그럼, 슬픈 곡 듣는다고 '어두운 얼굴'로 차렷하고 있어야 된단 얘기냐?


너무해. 내가 지금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잖아.

웃긴건,
그러다 변박이라도 되면 박수치던 너희들도 당황하면서, 치던 박수가 흐지부지 되더라.

또 웃긴건,
다시 제 박자로 돌아오면 '옳지! 다시 왔어!' 하면서 또 치기 시작하더라.

안 웃기면 말고.


언젠가는, 느린 빠르기의 슬픈 곡에 철없는 너희들이 막무가내로 박수 치는 것을,
도저히 안되겠던지 노래 하던 가수가 직접 손을 들어 제지하는 웃지 못할 광경을 나는 보기도 하였다.

그리고 말이다,
그런 박자 맞추는 박수 말고, 노래나 연주 다 끝나갈 때도 말이야.
롹이나 땐쓰나 힢핲이나 아무튼 심박수를 올려주는 음악이 아닌 다음에야
좀 차분히 끝나기를 기다리면 안되냐?
뭘 그렇게 박수 치는 게 급해?
곡이 완전히 끝나기 전에 왠만하면 박수를 치지 말란 말이다.

너희가 무슨 출발선에 선 육상선수야?
'끝나기만 해봐라 내가 제일 먼저 박수 칠거야.' 이렇게 마음먹고 있는 사람들 같다. 내가 보기엔.
아니, 그렇게 마음 먹었으면 완전히 끝난 다음에나 박수를 치던가.
끝나기 전에 박수치면 그건 부정출발이야, 썅.

마지막 몇초간의 훌륭한 연주들을
왜 늘 너희들의 짝짝짝 박수 소리와 함께 들어야 되냐는 말이지.

박수 일등으로 치면 누가 상 준다더냐?
그렇게 한 발 먼저 앞 서 나가면 멋있어 보일 거 같은 거야?
너, 횡단보도 불 바뀔때도 제일 먼저 튀어 나가지? 멋있어 보이려고?
(그래 솔직히 나도 열 몇 살 때엔 그러기도 했다.)


게다가, 이런 곡 있잖아.
곡의 마무리에 잠깐의 쉼이 있고 그 다음에 감정 모두 모아 결정타 한방 짧게 쏟아내는.
특히 그런 곡들에서, 성급히 끼어드는 너희들의 박수는 정말 최악인 거야.
그 잠깐의 쉼에서, 조급증 환자들인 너희들이 그새를 못 참고 박수를 쳐 버리니까
마지막으로 쏟아내야 하는 감정이 다 깨지는 거 아니야.

알기 쉽게 유재하님의 <사랑하기 때문에> 를 불러보겠니?
(이런 쓰레기들 일깨우는 일에 이런 아름다운 곡을 예로 들기가 참 거북하지만.)
곡의 끝에, '나 오직 그대만을 사랑하기 때문에'라고 노래한 다음에 3,4초쯤 쉬거든?
그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한번 더 반복하잖아. '사랑하기 때문에' 라고.

'나 오직 그대만을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재하형님께 여쭤본 적은 없지만, 아마도 그 반복은 감정의 극대화, 응집 뭐 그런거 아닐까 하거든?

그런데 너희들은 언제나, 항상, 꼭, 예외 없이,
기다리지 못하고 그 3,4초 사이에 박수를 쳐 버린단 말이다.
참, 너희들의 습성이 뭔지 알아? 한 놈이 치면 꼭 망설이던 다른 놈들까지 따라 친다는 거야.

어쨌든, 그럼 어떻게 되겠니.
전곡을 아우르는 그 감정의 결정체,
숨죽이고 들어 마땅한 그 마지막 두마디 '사랑하기 때문에'는
매번 너희들의 박수에 묻혀 잘 들리지 않게 된단 말이다.

그럼, 온전한 감상 기회를 침해당한 나는
나오려던 눈물이 쏙 들어가버리는데다 기분까지 몹시 상한단 말이다.

....

또 길어진다. 그만하자.
내가 좀 흥분하기도 하고 바쁘기도 하고 해서 휙휙 날려 썼는데...
요지는 알아 듣겠지? 조심해줘. 어?


박수칠래 : 할 말 다 끝난거야?


네.


박수칠래 : 공연장이라도 갔다 왔어?


아니요. 티비 잠깐 봤는데요.


박수칠래 : 하도 나불대길래 뭐라고 떠드는지 한 번 지켜봤는데... 아주 지랄을 하는구만.
이런 씨*, 그렇게 할 일 없냐? 괜한 생트집 잡지 말고 너나 똑바로 살어, 어?


네.


박수칠래 : 알았으면 저리 꺼져.


네.

근데요.. 저.. 정말 마지막으로 다시한번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자꾸 그렇게 음악 감상 방해하는 박수지랄 하시면요....

확 손목을 잘라 드릴테니까요....

제발 조심해 주세요. 네?

제발.


sadsong / 4444 / ㅈㅎㄷㅈ
===========================
그렇게 울고 웃었던 기억들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져
지워지는 게 난 싫어

<제발 - 이소라>
===========================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Profile
image220
2005.11.15 02:15
무섭습니다. 중국에서.
mojolidada
2005.11.15 13:04
이번엔 '박수칠래' 구만... 냠냠.

image220 형 - 중국에서 언제 오는거야? 그냥 거시서 살라구? 빨리 와~~! 술 먹고싶어.
Profile
sadsong
글쓴이
2005.11.16 15:01
무섭습니다. 중국발 조류인플루엔자 소식도.
Profile
sadsong
글쓴이
2005.11.20 03:23
아, 그 방송을 보진 못했습니다.
유재하님은 그냥 떠올렸던 건데, 우연이네요.
젤리그미님 어머니께 '여유있는' 박수 보냅니다.
(더불어, 장모님께 사랑 받는 젤리그유님 되시길.)
Profile
image220
2005.11.28 12:05
조류독감은 거대한 음모요. 공포심 조장.
식당 메뉴에서는 닭고기가 사라졌지만,
동네에는 목숨 보전한 닭들이 잘 돌아다닙니다.
엊그제는 투계판에도 끼어봤다는. 권투랑 똑같애.
-베트남 호이안
이전
22 / 69
다음
게시판 설정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