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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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Twist and Shout

pearljam75 pearljam75
2005년 11월 22일 00시 24분 22초 2099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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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3때부터 안경을 쓰기 시작한 나는 라식수술도 하지 않았고 렌즈를 착용한 적도 별로 없다.
안경에 별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뭐, 불편하다면 라면을 먹을때나 한겨울에 추운 곳에 있다가 따뜻한 곳에 갑자기 들어가게 될 때
안경알에 하얗게 김이 서려 앞이 보이지 않고 우스꽝스러운 만화 캐릭터로 변신하게 되는 것 정도랄까?

하여간 내게 안경이 가장 불편했던 순간은... 헤드뱅을 하다가 안경이 날아가 버릴 때였다.
(술 마시고 지랄하다 안경이 날아가 버린 적은 없다. 자랑스럽게도!)

40일만 지나면 올해가 다 간다. 12월 31일...
지난 주말 홍대앞 , 술 마시다 새벽공기 마시며 상쾌한 마음으로 집으로 걸어 돌아오는 길에
산울림 콘서트 포스터를 발견했다. 12월 30일, 31일, 올림픽 역도경기장.
가슴이 두근두근, ‘이거, 이거 또 안경 날아가게 생겼군.’

10년 전 5월, 그 역도 경기장에는 본조비가 왔었다.
(작년 역도 경기장에는 상하이 서커스단이 와서 공연을 했다. 난 두 공연을 다 보았다.)

나에게 외국밴드 콘서트는 처음이었다.
나는 당시 대학 2학년이었고, 한 달 아르바이트 월급으로 30만원 정도를 받았었는데
그 중에서 5만원을 떼어 벌벌 떨며 티켓을 샀다.

티켓을 사놓고 공연 며칠 전부터 잠도 제대로 못자고 마음이 무척이나 설레였는데
콘서트에 갔다 와서는 며칠간 목디스크 환자가 되가지고 다리까지 절며 돌아다녔다.
공연이 끝나고 차가 중간에 끊겨서 명동에서 집까지 그 새벽에 걸어오게 되었기 때문이다.
택시비도 없고... 그땐 그랬다.

그리고 몇 년 후, 메탈리카가 왔을 때는...
더 오래 목디스크 환자가 되어서 돌아다녔는데 그 나마 Reload앨범 발표 후라
공연했던 곡들이 다소 어쿠스틱했기 때문에 그 정도였던 것 같다.

내가 세계의 5대 꽃미남으로 꼽는 게빈 로스데일이 보컬로 있는
영국밴드 부시 콘서트에 가서 나는 병맥주 큰 걸 하나씩 들고 들어온 G.I.들에게 항의를 받았다.
스탠딩 콘서트였는데 내무 너무 소리를 지르고 지랄발광을 해서 그들은 결국 나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바로 무대앞에서 웃짱을 깐 게빈의 갑바를 만져보지 못한 게 아직도 천추의 한이다.
그 전후 주에 줄줄이 British Invasion이라나,
에릭 클랩튼과 블러가 정동체육관에서 공연을 했었다.


오늘 들뜬 내 마음에 불을 지를 생각으로 집에 돌아오는 길에
비틀즈의 미국 첫 방문(설리반 쇼에서 3회나 공연했다)을 담은 DVD와
메탈리카 블랙앨범 발매 즈음을 담은 DVD를 하나씩 샀다.

오자마자 앉아 비틀즈 DVD를 틀었는데... 사운드는 조악하고 화면엔 비가 줄줄.
어려서도 많이 보던 흑백 클립이지만 여전히 재밌었다.
왕뿔테 안경에 치아교정기를 낀 여자애들이 환장하는 모습을 보고는
저러다가 이대강당에서 공연한 클리프 리챠드 때처럼 빤쓰라도 벗어 던지는 건 아닐까
걱정도 되었지만 아쉽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늘에서야 깨달았는데 비틀즈는 늘 연애중인 사람의 마음을 노래했던 것 같다.
청승맞게 이별 후 니가 그립네 어쩌네 하는 곡은 거의 없지 않았나?

게다가 그들이 무지막지한 골초라는 사실도 오늘 처음 알았다.
쉴새없이 담배를 피우고 촌스러운 앞머리를 유지했던 아직 청년이었던 그들.
세월은 가도 아름다운 그들의 음악이 남아 아직도 수많은 젊은이들의 가슴에 불을 지르는구나,
노인네같은 생각을 해보았다.

조지 해리슨에게 ‘링고 스타에요? 사인 좀 해줘요?’하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사인을 해주는 장면을 보고 박장대소를 했다.

비틀즈 멤버 중에서는 조지 해리슨을 제일 좋아했는데 오늘 DVD를 보고 나는
늘 양복에 넥타이까지 철저하게 매고 열심히 드럼을 치는 링고 스타를 보고 다시 반했다.
뜯어보니 제일 귀엽게 생긴 것도 같고... 흐흐흐흐.

콘서트에 갈 때는 반드시 반팔 티셔츠를 입어야 한다. (목욕도 꼭 하고 가야한다.)
겨울이라도 모피코트 같은 거 입고 가면 더워 디진다.
옷을 접어 넣어둘 가방도 필요하다. 겉옷을 분실하면 집에 갈 때 얼어 디진다.

무엇보다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밴드의 곡을 다 외우고 가서 신나게 따라 불러야한다.
이러다가 신곡만 부르면 어떡하지?

어떤 무지무지 고마우신 분이 보내주신 <산울림>앨범 전집을 달달 외워서 가야겠다.
1번 트랙 ‘아니, 벌써’부터 207번 트랙 ‘외계인 E.T'까지. 음하하하하.

나는 이런 콘서트에 늘 혼자 다닌다.

(난 사실... 왕따라 친구가 별로 없다. 가족들도 날 버렸다.
내가 동생의 차를 잘 타지 않는 이유는 운전할 때 주구장창 CCM만 틀어대기 때문이고
내가 방에서 오지 오스본이나 마를린 맨슨의 앨범 자켓이라도 뒤적이고 있으면
‘사탄아, 물러가라’를 외친다. 난 집에서건 밖에서건 왕따다.)

어째꺼나 콘서트를 완벽하게 즐기기 위해서는 밴드와 나, 1:1이어야 하기 때문에 나는 혼자 간다.
간혹 따라붙은 녀석들이 공연 끝나고는 날 아는 척 하지 않는 이유도 있지만. 음하하하.

아, 올 연말은 무척이나 보람찰 것 같다.

Don't look back in Anger.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Profile
kinoson
2005.11.22 02:09
음하하하....-_-
Profile
bohemes
2005.11.22 17:19
똥그란 안경을 쓴 존 레논이 제일 섹시하다는데...그러지 않아요?
왜 아무도 인정안하는지... 난 그래서 안경낀 사람이 좋아요~ ㅎㅎㅎ
aesthesia
2005.11.22 20:14
비틀즈........정말 멋지죠...신화같은..음악을 시작하게된 계기나 음악활동이나 모든게 소설같습니다.
mojolidada
2005.11.24 22:02
산울림 콘서트... 재밌게 즐기고 오세요. 목에게 미안하지 않을정도만...
나는 언제쯤 '콘서트'라는걸 가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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