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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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아버지...그리고 어머니

kinoson kinoson
2007년 01월 09일 20시 27분 27초 1416
준비하던 영화의 상황이 안좋아진다...
한두번 겪는일도 아니고..이젠 별 감흥도 없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길래 집에 전화 한통 넣었다.
아버지가 전화를 받는다.

- 저에요..잘 지내시죠?

언제나 본인보다는 타지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자식 걱정이 먼저다.
괜찮다고 하는데도 기어이 내 통장으로 10만원을 보내신다.

- 추운데 주머니까지 비어있으면 기분 더 안좋아진다.

이 돈으로 뭘 해야되나...
부산행 KTX 열차표를 사버렸다...
힘들게 살고있는놈이 아주 고급이다... -_-

고3때 이사와서 12년째 살고있는 부산에 우리집..
그때처럼 집은 정말 따뜻하다..

- 언제 올라갈꺼니?
- 한 일주일정도 쉬다 가려구요...

물론....지금 이글을 부산집에서 쓰고있다 -_-;
한번 집에서 딩굴거리니 못올라가겠다...

어제 모처럼 아버지 어머니와 술 한잔 하러갔다.
집앞에 있는 "속에천불 청송 얼음막걸리"

언제나처럼 메뉴판을 뒤적이는데 문득

- 아버지는 무슨 안주 좋아해요? 엄마는....?

자식새끼 다 필요없다...
난 지금까지 우리 아버지가 좋아하는 건 영양갱 뿐인줄 알았다.
부모님이 무슨 음식을....술 드실때 무슨 안주를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살았다
30년이 넘도록....

- 가오리무침 , 너 엄마는 순대전골

가오리무침...순대전골...이거 말고도 좋아하시는 음식 참 많겠지...
술한잔 마시고 두잔 마시고 세잔...네잔...
오랜만에 먹었더니 핑 돈다...

- 나 그냥 영화 때려치고 여기서 어디 취직이나 해서 같이 살까?

울 엄마...사랑하는 울 엄마...순대 하나 오물오물 씹으며 말한다

- 지랄하고 자빠졌네...그랄꺼면 첨부터 와 올라갔노?
- 그러게...

어제 가오리무침 하고 순대전골 막판에 매운고추 정구지찌짐....
술 많이 마셨다...나혼자 술취해서 혀 꼬부라지고 "옴마 쌀람메" 하고
난리 부르스를.....-_-;;

아침에 엄마가 믹서기에 야채쥬스 만들어 준다..
자식새끼 다 필요없다 를 또 한번 느낀다...

- 이번에 올라가믄 술 마이 묵지 마라..
- 어..

아버지..그리고 어머니...

그분들에게 큰소리 땅땅 치며 서울로..영화판으로 뛰어들었었다.
6년전에....

아버지..그리고 어머니...

정확히 6년만큼 더 늙으셨다...

이제는 나도 정말 어른이 되어야 하나보다.
[불비불명(不蜚不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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