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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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얼마전에 이모부님이 돌아가셨다

ty6646
2008년 01월 21일 00시 41분 33초 1657 1
얼마전에 이모부님께서 돌아가셨다.
어제 소식을 들었다. 늦게 알려주는 동생이 잠깐 미웠다.
하긴, 동생이 보기에도 나라는 인간이 사회구조적으로
사람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긴 보이나보다.

이모부님은 전날 공원을 산책하셨고,
커피를 한잔하시고 일찍 주무셨다한다.
다음날 아침 이모님은 출근하고, 저녁때 퇴근해서 보니
이모부님은 자는 그대로 돌아가신 상태라고 했다.

처음 이모부님의 소식을 듣고서는 마음이 철렁했지만
이내 마음이 편안해졌다. 내 아버지보다 20년은 더 사셨고,
사시는 동안 건강하셨고, 내 아버지는 극형보다 더한 위암으로
세상 모든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 삭이시다가 힘들게 힘들게 이승의 끈을 놓으셨는데
이모부님은 공원산책하고 그날 저녁 주무시다가 돌아가셨으니
이 무슨 복이란 말인가....

가난하게 살면서도 열심히 노력하시며
아내와 자식들위해 땡뼡에서 갖은 고생을 다하셨다
시를 즐겨 읊으시고, 그림을 좋아하셨으며,
한의를 조금 알아 동네의 작은 의사역할까지 하신 아버지셨다
180이 넘는 훤칠한 키에 늘 배우 박근형과 닮았다고 생각했으며
조금만 운이 좋았다면 박근형과 비슷한, 아니 그보다 더 멋진 삶을
살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숙부님은 대학을 졸업하셨고, 백부님은 재산을 모두 받아가셨다
공부도 아버지가 훨씬 더 잘했지만 중학졸업으로 취업일선에 나가야했고
백부로부터 냄비하나 얻지 못한채 어머니와 신혼살림을 차리셨다.
남에게 피해준적 없고, 세상 사람 모두가 법없이도 살사람이라고 했다.
단지 많이 웃으셨고, 고된 일 뒤에 한잔의 술을 사랑했으며,
거짓없이 어머니와 자식들을 사랑하신 분이셨거늘...

왜 내 아버지가 그렇게 빨리,
그렇게 고통스럽게 삶의 끈을 놓아야만 했는가



백부님 가족은 빌딩을 지어 호화롭게 살고
숙부님은 지금도 건강하여 젊은이 못지 않은 체력을 자랑하시고
아버지의 피땀으로 번 재산을 빌려간뒤 야밤도주한 외삼촌일가족들은
지금도 어디에서 호호하하 웃으며 잘 살고 있다고한다


모든 걸 포기하고 양보하고
모든 욕심을 억누르며 희생하고 피와 땀으로 살아온 내 아버지가
조금만이라도 덜 아프게 돌아가셨더라면
마음이라도 편하겠건만....


이모부님이 돌아가셨다라고한다
공원산책을 하시고난 다음 커피하잔 하시고 주무시다가 그대로 돌아가셨다라고 한다.
돌아가시던 그날 이모부님이 이모부의 형님 꿈에 나타났다라고한다

형님 저 이만 갑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마치 어디 놀러왔다가 돌아갈때 하는 인사마냥 그렇게 환하게 웃으며 가셨다고한다.
이모부님은 이승에 놀러왔고 즐겁게 한바탕 잘 지내다가 그렇게 다음 세상으로 가신 듯 하다.




비록 힘들고 아픈 삶이었지만
내 아버지도 나들이가듯 그렇게 다음 세상으로 가셨기를 바란다.
다음세상에선 즐겁고 신나게 사시길
그리고 희생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양보하지 말고 사시길....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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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dman
2008.01.23 14:47
근조..

가슴 아픈 이야기네요..

자기 몫을 잘 챙기지 않으면
이제 누구라도 코를 베어 갈 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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