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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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스마일

ty6646
2008년 06월 14일 13시 08분 51초 1694 1
내가 학생생활 교육원을 찾은 것은 내 고민을 털어놓기 위해서였다.
작은 떨림을 안고 노크했을 때 제일 먼저 반갑게 맞아준 사람은 바로 스마일 누나였다.
그녀는 대학원생이었고, 학생생활 교육원의 보조 담당자로 있었다.
거기서는 나이, 성별, 그리고 학생이든 아니든 관계없이
그저 인간관계에 있어서 고민이나 힘든 일이 있는 사람들이 만나서
서로 터놓고 이야기하는 그런 만남의 장소를 제공해 주고 있었다.


나도 그 무렵 인간관계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고 혼자 힘들어하고 있다가
그런 모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어 내 발로 찾아간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만난 사람들은 서로 터놓고 이야기할 때 자기 이름보다는
가슴에 별명을 써 붙이고는 서로 그 별명으로 불러주고 그랬다.
그때 그 선배누나는 스마일이라는 닉네임을 가슴에 달고 나왔었다.


그녀는 닉네임 그대로였다. 마치 원래부터 얼굴이 그런 얼굴인 것처럼,
스마일이 아닌 다른 얼굴은 상상이 안될 정도였다. 양쪽 볼에 깊게 주름이 질 만큼
항상 스마일을 달고 다닌 그녀였다. 그래서 더욱 더 자연스럽게 스마일이라는 별명이
가슴 깊이 각인되어 지금도 잊혀지지 않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따스했으며 누구나 알아듣기 쉬운 말로
천천히 또박또박 말해 주었다. 따라서 그녀 앞에 서면 내가 마치 유치원아이가 된 마냥
투정도 부리고 재롱도 부리며, 순수하고 푸르렀던 소년시절의 내 모습으로 되돌아 갈 수 있었다.
잘 웃고, 잘 어울려 주었고, 그리고 내 얘기를 찬찬히 들어주었던 그녀. 그녀에게서
탈출구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고, 내 마음이 쉴 수 있었고 안심이 되었다.


그녀의 스마일로부터 힘든 일, 무거운 일을 전부 내 어깨에서 벗어내릴 수가 있었다.
그때 내 나이가 조금만 더 많았더라면, 조금만 더 빨리 태어났더라면 하고
바랬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리고 주위의 형들이나 선배들이 너무나 이상했고 바보 같았다.
왜 스마일 같은 선배누나를 몰라보는지, 나라면 당장에라도 달려가 나꿔채고 말텐데.....(^^)
... 하는 바보 같은 생각을 남몰래 폴폴 피워올리기도 했다. 난 너무 순진했던건지, 바보였던건지,
내가 넘볼 상대가 아니라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을 떠났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수년만에 고향에 들렀을 때이다. 다니던 학교가 그리워 학교가는 버스를 탔는데
어느 정류장에서 아이를 업은 여자하나가 버스에 올랐다. 그녀는 아직 젊은 여자였지만
일상의 찌든 짐에 힘들고 지친 탓인지 무척 피곤해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날의 햇살때문인지 아이를 업고 선 그녀는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뒷자석에 앉은 나는 버스 뒷문앞의 손잡이를 잡고 서서
하염없이 차창밖으로 시선을 던지고 있던 그녀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오래전에 내가 마음속으로 이상형이라고 선을 그어놓았던 바로 그녀, 스마일이었다.
너무 놀랐다. 그녀라면 최고의 남자와 결혼했을 줄 알았고, 버스가 아닌 고급승용차에
운전수가 있는 차를 타고 다닐 줄 알았다. 저렇게 평범한 아줌마가 되어, 어울리지 않는 시간속에서
늙어가는 곳에 나의 스마일, 그녀가 서 있을 줄은 정말이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아는 척을 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날 못알아 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내 마음속의 스마일의 따스한 기억을 뒤엎어버리고 싶지가 않았다.
그녀를 따라 차창으로 시선을 넘겼다. 그녀가 내려서 갔지만 난 더 이상 그녀를 쫒지않았다.
내 시선밖에서 그녀는 멀리 멀리 사라져갔다.


가끔 난 그날의 그녀를 꿈처럼 생각한다. 내가 바라는 대로
너무나 행복한 결혼생활을 보내던 그녀는 성안의 왕비처럼 성안에만 있는 것이 답답하여
그날 외출을 한번 시도해 본 것이고, 하필 그때 내가 그녀를 보고 만 것이다.
성밖으로 나온 왕비는 시중과 군졸과 마차를 거늘지 않았고, 어쩌면 보통사람보다
더 초라하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오랜만에 세상구경을 하던 중 그날 그렇게
내 앞에 나타난 것이고, 해지기전에 다시 궁궐로 되돌아 간 것이라고 난 그렇게 내멋대로 꿈을 이어간다.


내 마음속의 스마일은 결코 변하지 않아야한다.
그 시절의 내게 하늘보다 큰 포근함과 따스함을 이불처럼 덮어주었던 내 이상형이기에
그렇게 간단히 무너져서는 안된다. 내 그녀는 내가 포기한 이상
다른 누구보다 행복하게 해 줄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안된다.



어쩌면 정말로 그날 내가 본 것은 스마일, 그녀가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Profile
sandman
2008.06.19 00:21
오늘은 피곤해서인지
글자들이 눈에 들어 오질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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