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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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젠틀하게

ty6646
2011년 05월 25일 20시 06분 37초 3021

2011. 5. 25. 수. 저녁 8시 06

 

 








석간배달 시작할때부터 신호가 오기 시작한다.
도중에 공원 화장실이 있으니 거기서 일을 봐야겠지...
꼭 그 때문만은 아니지만 오늘은 웬지 달린다.


태풍을 하루 앞둔 날이어서 그런가
바람을 가르며 달릴때 얼굴에서
부서져 떨어지는 바람조각이 참으로 상쾌하다
오래되어 낡은 탓인지 덜덜 거리는 자전거지만 오늘은
걸림없이 산뜻하게 미끄러지는 이 감촉이 좋다


이런저런 탓으로 본의아니게 서둘러 공원에 도착,
자전거를 세워두고 걸어서 공원화장실로 간다.
그때 맞은 편에서 택시에서 내린 기사분이
내가 목표로 삼은 화장실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반대쪽으로 세발 걷고나서 승부하는 서부극도 아니고
서로의 머리에 총구를 겨눈 영웅본색도 아니고, 이건 그냥
1인실 화장실 하나를 놓고 두사람이 양쪽 방향에서 동시에 걸어오는 상황인데도
묘하게 실감나게 긴장된다. 최소한 지금 이 순간은 영화보다 더......-.-


공중화장실, 특히 공원에 있는 공중화장실은 약간 덜 깨끗한 면이 있다
볼일 보고 물 안내린 경우, 담배꽁초나 가래등이 바닥에 들러붙어 있는 경우,
금연임에도 불구하고 담배연기 자욱하게 쌓여있는 경우,
특히 가장 힘든 것은 타인이 볼일 본 바로 다음에 들어가는 경우,
따끈따끈한 타인의 냄새가 생생하게 코안으로 쏘아들어올때,
이건 참 견디기 쉽지않다


바로 지금 막 가장 견디기 힘든 상황이 벌어질 참이다.
조금 긴장되면서 0.001초간의 갈등이 무척 오래인양 느리게 느껴진다
서둘러야 하는데, 허둥대는 모습을 들키고는 싶지않고,


순간적인 눈가림으로 잰 거리로 봐서는 분명 내가 한두발 더 앞서있으니
이 속도로만 가면 내가 우선이지 싶은데


만약 저 쪽에서 반칙으로 걸음폭이 커지거나
두 발이 살짝이라도 동시에 공중에 떠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나는 어떤 대책을 세워 맞서야 하는걸까


내가 조금 젊은데 양보해?
아냐아냐 절대 안돼, 요즘 택시기사들, 안에서 못피우니까 밖에서 피운다고
특히 볼일볼땐 거의 인정사정 없이 피워대쟎아.
타인의 냄새에 덧붙여 담배냄새까지 난 도저히 견딜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석간시작부터 참아온 이 놈도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을 듯 하고...


이런 저런 생각과 갈등과 고민을 곁들여 지지고 볶던 중,
어느새 내가 먼저 화장실 앞에 도착,
침착하고 태연하게, 그리고 가급적 젠틀하게 문을 두드린다
서너발 앞에 선 택시기사의 눈동자가 무척이나 크고 날카롭게 내게 꽂혀온다


걱정마시라
난 담배도 안피우고, 큰 것도 아니고
물도 잘 내릴 것이니.....


살았다. 참았던 볼일 본 것도 좋았지만,
누군가가 볼일 본 직후의 그 따근따근한 연기로 가득찬
화장실안에 내 몸을 내 던지지 않게되어서 정말 다행이다^0^



이 시대는 정말 한시라도 여유를 주지 않는 것 같다
늘 서두르게 만드는 소녀시대, 아니 지금시대, 21세기다.
화장실 가는 것 조차 서두르지 않으면
은근 심각한 피해를 보게되는 그런 시대임을 오늘의 깨달음에 추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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