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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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이런 일이 내게도 올거란 생각을 하지 않았지.

sadsong sadsong
2002년 09월 28일 02시 38분 56초 5224 9 1
sandman님 컴퓨터가 사망 직전까지 갔다던 글에 응원의 한마디 달면서
언제 올지 모를 대재앙을 운운했던 것이 얼마나 되었을까....


며칠 전부터 컴퓨터를 켜면,
하드디스크에서 뚝뚝(또는 '띡띡') 소리가 나면서 부팅이 되질 않았었다.

정말 신기한건, 그 소리라는게
박자까지 맞춰가며 정확히 이렇게 난다.

'뚝뚝뚝뚝, 뚝뚝뚝뚝, 뚝뚝뚝뚝, 뚝뚝뚝뚝'

더도 덜도 아닌, 4번씩 4회.
다름아닌 '4444'


그리고 며칠이 지난 오늘,
수리불가, 하드디스크를 포기해야 한다는 사망선고를 A/S 기사로부터 받았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컴퓨터가 죽어가면서 마지막으로 내뱉는 '말'이
주인(정확히 말하면 내 형이 주인이지만.)의 4.4.4.4. 그것.

이렇게,
내가 늘 하던 '짓거리'를 흉내내면서, 그놈은 지난 몇 년의 내 삶의 기록들을 지워버렸다.


-될지 안될지 모를- 데이터 복구서비스를 '시도'해주는 곳도 있다긴 하지만,
비용도 비용이고, 글쎄....


우선 먼저 할 일은,
지난 몇 년간 어떤 자료들을 담아두었었는지를 찬찬히 돌아보고 떠올리는 것이다.


날 울리던 쌔드쏭들은 아쉽지도 않아.

특히 많았던 수백개의 한글파일....
소중한 정보, 자료, 끄적거린 글들, 나의 역사, 극비 문건, 추억.
서버에선 삭제해버린, 보내고 받은 수백통의 E-mail.
다 시 찍을 수 없을 그녀와의 사진. 그와의 사진. 그곳의 사진. 내 사진.

또 뭐가 있나....

지금 막 떠오르는 한두가지 한글 문서만으로도 눈앞이 캄캄한데....
앞으로 몇번이나 더 가슴을 쓸어내려야 할지.

그냥 생각해내지 말고 잊을까.
하나하나 생각해내면서 아플까.


게다가,
정작 컴퓨터 임자인 우리형의 날아간 자료들이 무엇인지는 아직 들어보지도 않았다.



sadsong / 4444 / ㅈㅎㄷ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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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뚝뚝뚝, 뚝뚝뚝뚝, 뚝뚝뚝뚝, 뚝뚝뚝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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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marlowe71
2002.09.28 07:03
:| ......뭐라고 위로를 해야할지 모르겠군요 님과 님의 형님께...
silbob
2002.09.28 13:00
(@)쯔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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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eva
2002.09.28 13:05
음....출장간사이에...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을 느꼈겠네...음.....나두 그런일 있기전에....시디라이터를 사야겠다..^^;;
오빠 ............찾으라..그럼....길이 있을지어다...ㅡㅡ;
정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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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DI
2002.09.28 20:53
아....어쩐댜....
절대 포기하지 말기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않은 백업의 중요성...
uni592
2002.09.29 21:58
얼마나 살았다고 그리 자료가 많다고 징징대는건지... 그럼 그놈 뭍을때 연락주세요. 같이 쇠주나 뿌려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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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dsong
글쓴이
2002.09.30 01:01
징징.... 가슴에 묻을 작정인데, 가슴에 술 뿌리면 그거 너무 에로틱하지 않을까요?
<광고> 우울한 세상, 적절한 위로를 원하십니까? 뭐라고 위로해야할지 모를땐 "말로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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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dsong
글쓴이
2002.09.30 01:15
'뚝뚝뚝뚝 -> 4444'에 이은 또하나의 X-file. 오늘 큰형이 결혼을 해버렸는데, 계산하려고 밥그릇 수를 다 세고 보니, 그 수가 딱! 592명인 것이 아닙니까. 592. 음.... 아무튼, 열렬히 '아끼던' 형이었는데.... 이래저래 징징스러운 날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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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dman
2002.10.01 15:45
이그... 그 당새.. 고런 끔찍한 일들이...
저는 그 4444가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을 떠 올리는 군요.
그렇게 님의 컴에도 운명의 서곡이 울렸나 봅니다. 컴은 어찌 잘 수리 하셨는 지...
uni592
2002.10.02 14:39
쩝... 날 안불러서 그래요. 그럼 593이 되서 아무 상관없는 숫자가 됐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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