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순용 조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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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메이커스가 만난 대한민국 필름메이커스,
3번째 주인공은 [초인지대]의 황순용 조감독님입니다.(필름메이커스 아이디 simpleman)
사진이 충분하지 못한관계로 simpleman님의 참한 모습을 정확히 보여드리지 못해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sosimin님이 인터뷰를 하셨습니다.

simpleman 님과는 8시 약속, 그 이전에 한번도 보지 못한 운영진님들을 만나기 위해 7시에 씨네마 서비스로 갔습니다. JEDI님, 녹음기를 들고 오신 hal9000님, 사진을 찍어 주실 movie1975 님도 함께 와 계셨고 우리는 근처 커피숍에서 simpleman님을 기다렸습니다. 커피숍 이라기 보다는 무슨 읍내에서 잘 나가는 호프집간지가 나는 다방 이였지요.


Q : 영화 이력은?
단편은 써클 활동만 했어요. 외대 영어 연구회 모임이라구 거기에 1년에 한번씩 워크숍을 했어요. 이것저것 했어요. 1학년 때는 조명도 하고 군대 갔다와서는 기획 제작, 16㎜로 단편을 찍어서 영화제에 2번 냈는데 전혀 반응이 없더라구요. 그리고 후배·선배꺼 해주고 그러다가 졸업하고 이스트만 코닥 지원작 <우아하게 걸어라> 스크립이라고 해야하나 세컨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비슷한 거 하고, 99년에는 가슴아픈 일이 있어서 1년동안 푹 쉬었죠.

Q : 남자가 가슴아프다고 하면?
뻔한 일 아니겠습니까. 실연을 당했다던지 그런 뻔한 일 아니겠습니까.. 그 다음 99년 12월에 신유영이라고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계속 시네마에 있다가 PD 준비하는 형이 있는데 그 형 전화 와서 집에서 폐인처럼 지내고 있는데 12월 노랑머리 찍었던 Y2K 시네마에서 <베니싱 트윈>이라고 저 예산 영화 하나 준비하고 있는데 처음 시작은 괜찮은 것 같다. 빨리 끝나고 엎어질 염려도 없고 PD가 연락 왔으니 만나보라고 해서 만나봤죠. 그래서 들어갔는데 그것하고 끝나자마자 바로 <자카르타>라고 <베니싱 트윈> 같이 했던 친구가 조연출로 가고 제가 세컨드로 갔어요. 패키지 식으로 (웃음) 그담 이스트 필름에서 미소라고 박경희 감독님이 준비하시는 게 있었는데 거의 촬영준비 다 되었는데 파이낸싱 문제 등이 있어서 접고...

Q : 미소에서는 포지션이?
조연출. <베니싱 트윈>은 조감독 님이 서열을 두는 조감독이 아니었는데 경력상으로 보면 사실상 막내였죠. 그게 저의 모든 경력이 아닌가 하는데요.

Q : 처음 영화를 업으로 삼아야 되겠다고 결심한 게 언제이며 학교 다닐때부터 졸업 후 영화를 하실려고 했었나요?
영상원에 다니는 후배가 한사람의 일생을 자기의 일생처럼 써 오라는 숙제 때문에 나를 인터뷰 했었는데 그걸 가지고 올걸 그랬네요. 똑같은 얘기를 다시 해야하니..,참! 시골에서 살았어요. 강원도 철원 강원도 철원에 살다가 중3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어요. 서울 사람들에 대해 어떤 생각 이었냐면 말도 곱게 쓰고 착하고 예쁘고 다 그런 줄 알았어요. 근데 와보니 키는 나보다 더 크고 말도 나보다 걸구 아버지 돌아가신 거랑 짬뽕이 되가지고 성격이 내성적으로 변했었어요. 올라오는 버스 안에서 잡지를 샀는데-제가 활자광 이거든요- 그게 스크린이었어요. 맨 뒤에 서울 10대 개봉관 약도가 있었어요. 신문보고 토, 일 찾아가서 영화를 보게 되었어요. 계속 영화를 봐 재미있고 스크린에 스크린 라이버러리가 있어요. 영화의 이해가 조금씩 있으면서- 화장실에 항상 꽂혀 있었어요- 감독이라는 게 참 재미있을 거 같더라구요 그때하고 싶어졌죠. 그담에 고등학교 다니면서 영화보구 대학교 행사 영화제 하면 쫓아다니고 그랬었어요.

Q : 연극 영화과를 왜 안가셨어요?
어린 마음에 어떤 생각이었냐면 집에서 반대는 둘째치고 그 당시 연극영화과는 (89년였거든요) 지금하고는 많이 달랐던 것 같아요, 제가 보기에는. 또 하나는 대학을 졸업하면 어차피 엄마 속을 썩일 것 같은데 대학 들어갈 때는 엄마 말을 들어야 되지 않을까 했어요.
그 당시 영화동아리 출신중에서 연출하는 분이 나오던 때였어요. 박광수 감독님 같은 분들도 있었고. 연극영화과 가면 돌들이 간다는 말도 있었고, 나도 돌이지만은. 지금 판단엔 그쪽으로 가는게 낫지 않았을까 해요. 어떻게 보면. 아니면 서울예전도 괜찮지 않았을까.

Q : 중고등학교때부터 진로를 결정을 하신 거네요.
그때는 막연한 거 였죠. 막연했지만 하고는 싶었고, 그 당시에 80년대 화제작이라고 동국대 연영과대학원에서 한 게 있었거든요 전회 입장권이 있어서 그런 거 보구. 오히려 대학 와서 고민을 더 했죠. 대학교 와서 더 가까워지니까. 고민을 하다보니. 학점과 기타 등등의 여건들이 취직을 하기에는 너무 힘들 것 같아서 차라리 영화 쪽이 더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Q : 졸업한 98년에는 뭘 하는지요?
여름에 우아하게 걸어라 연출부하고 몇 군데에서 연출부하라는 데가 내가 찾아간데도 있고선 배를 통해서 연락이 온 곳도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일이 잘 안됐고 나도 적극성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더 중요한 게 있었기 때문에.

Q : 더 중요한 게 뭐죠?
그건 99년 일과 관련된....(웃음으로 얼버무림)

Q : 99년 쉴 때 영화를 할까 말까 에 대한 고민을 하셨나요?
별로 안 했어요. 미래를 별로 생각을 안 했어요. 그때 생활이 어땠냐면 집에서 어머니랑 부딪히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야 되잖아요 일을 나가시니까 낮에 자고 밤에 나와요, 가방에다 . 주섬주섬 넣어서 걸어서 학교까지 와요. 밤엔 후배들이 없으니까 거기에서 내 노트북 가지고 인터넷도 하고 단편시나리오도 쓰고. 그러면서 밤을 새요. 엄마가 출근하신 다음에 집에 들어가요. 그런 생활을 거의 7월부터 6월 정도.

Q : 만나는 사람이 없었겠네요
거의 없죠. 돈도 없었고. 학교까지 걸어다녔죠. 버스도 안타고.

Q : 내가 왜 영화를 하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조감독 님이 되신 지금은 하시나요?

안 하는 편이에요. 편하게 생각하는 편이에요, 욕심은 있죠. 걸작을 남기겠다 이런 생각은 아닌데 최소한 영화로 먹고살고 싶고 그럴려며는 꾸준히 자기의 영화연출을 해야 되는 그런 데에 대한 욕심은 있는데, 지금 여건상 해야 되겠다 말아야 되겠다 그런 생각은 별로 안 하는 편이에요. 미소를 접고 1달을 쉬었어요. 원래 쉴려고 했었어요. 2년동안 계속 오버랩이 되어서 쉴 기간이 없었어요. 쉬면서 시나리오를 써보자 했는데 오히려 쉬니까 초조해지더라구요. 1달 쉬면 그 동안 내가 잊혀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선배도 일을 계속 하면서 쌓아 가는 게 더 좋지 않겠냐는 말도 하고 해서. 3-4편 얘기가 있었는데. 그 중에 좋은 영화사의 가장 빨리 들어갈 것 같은 영화 그리고 시나리오가 내 맘에 드는 면도 있고.....

Q : 연출부 구성은?
공교롭게도 했던 작품들에서 한 명씩.. <베니싱 트윈>에서 스크립했던 친구, <자카르타> 제작부 했던 친구가 second, <미소> 같이 했던 친구가 third, 대체적으로 나이가 많죠. 여자 둘이 73,75 남자 third 가 69, 저는 70 나이로 밀어붙여 볼려고 시나리오보고 느낀점 문제점을 체킹해오게 하고 감독님 인터뷰잡고 그런 식으로 진행했어요. 스텝으로 부족하다는 형편이다. 영화인력 전문화 떨어지고 입문하는 창구 일원화 이야기 나오고 있는데 지금 방식이 좋은 건 아니지만 나쁘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일원화가 되면 예를 들어 시험을 본다든지 하면 오히려 상상력이 제한이 되지 않을까요. 인맥을 통해서 하는 건 기본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는데. 창구를 일원화하면 다양한 이력을 흡수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지 않나. 물론 제가 연극영화과 출신이 아니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어차피 현장에 오면 처음 하는 건 다 똑같으다고 봐요. 아무리 학교를 나왔다 하더라도 현장에서 그 긴 호흡으로 장편을 하게 되면 다시 처음부터 배워야 하는 게 있고. 그런 측면들이 물론 어려움이 적을 수도 있어요. 정규교육을 받은 경우에 그렇지만 더 낫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Q : 도제 시스템의 문제점
유리나라는 도제시스템이라고 생각이 안 들어요. 도제라는 건 밑에서 일한 만큼 보장을 해줘야 하잖아요. 지금은 해줘도 보장되는 측면은 없는 것 같거든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 밑에서 몇 년동안 갈고 닦은 사람은 데뷔를 할 수 있다 이런 게 도제인데 그런 거 없잖아요. 특히나 연출부 같은 경우에는 더 없어졌고. 연출부를 한다고 해서 연출을 할 수 있는 건 아니고 . 오히려 연출 쪽은 방법들이 다양하잖아요. 딱히 도제 시스템을 찾는 다는 게 무의미한 것 같고 물론 그만큼 능력 있는 사람을 골라서 이사람을 연출자로 키워야 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밑에서 배울 수도 있겠죠. 근데 지금은 그렇게 해줄 사람도 없을뿐더러...

Q : 임금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임금 같은 경우에는 경력에 맞게 기본적으로 거기에 맞는 보상이 있어야 한다고 봐요. 예를 들어 회사가 이 영화는 나갈지도 모르겠는데 니네 한테 이런 돈을 많이 줄 수 있겠느냐는 할 수 도 있는 부분인데 그 영화가 잘됐을 경우에 남는 이익에 관한 부분을 책임을 져주든지 거기에 합당한 다른데서 일하는 만큼의 임금을 주던지 최소한은 개별계약 쪽이 아닌가 싶어요. 개별계약 경우에는 맨 처음하는 경우에 예를 들어 괜찮은 영화사다 하면 하고 싶은 사람이 많이 몰릴 것 아니에요, 그 중에서 능력이 검증되지도 않았는데 이만한 돈을 요구를 했을 때 그것을 검증할 방법이 없고 두 번째는 회사 입장에서 능력 있는 사람을 골라서 그만한 돈을 줄 마인드를 줄 제작사는 별로 없는 거 같아요 제 생각은 잘 되면 잘 되는 만큼 보장을 해주던지 아니면 일반 사업체 식으로 적절한 페이를 지급해 주던지 연출부에서 지금은 일괄계약을 하잖아요. 조연출이 나눠주는 형태인데 마인드의 문제이긴 한데 영화에 들어가기 전에 개런티에 관한 책정은 끝나야 되는 것 같고 그 돈에 맞는 인력을 구해야 되지 않나. 뽑을 때 그걸 고려 해서 연출부를 구성해야 되지 않나 싶어요.

Q : 개별 계약에 대한 생각은
개별 계약을 하면 좋은데. 회사에서 최고의 인력을 가진 사람을 최고의 대우를 주고 뽑아서 쓸 거냐는 문제는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어요. 그런 제작자가 있다면 개별계약을 하는 게 맞다고 보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천차만별이거든요. 이 정도의 경력을 가진 사람이 이 정도의 임금을 받는다라는 표준이 성립되어 있지 않아서 무리가 있지 않을까

Q : 앞으로는 개별계약을 하는 게 정착될까요
사실 우리 나라 영화라는 게 어느 정도 기업의 구조를 띄고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할리우드가 시스템화되었다고 보기는 힘들거든요. 우리 나라 시장이 그리 크지 않은 상황에서 과연 시스템화되는 게 맞는지 모르겠어요. 부딪히면서 자기가 마인드를 바꿔 나가야 하는 부분 인 것 같고 거기에 대해 이야기하기가 힘드네요. 예를 들어 영화를 하고 싶은 사람들이 독립영화를 한다고 해서 우리 영화계가 독립영화쪽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문제가 생길 것 같지는 않거든요. 상업화되는 게 나을지 안 나을지는 모르겠어요

Q : 현장에서는 어떤 모습이신지
우아하게 걸어라 할 때는 사고를 많이 쳤죠. 스크립을 하는데 실수를 해서 재촬영을 한 적이 있어요. 나름대로 배려를 한다고 얘기를 많이 했었어요. 근데 학교 선배인 PD 형이 "너 참 현장에서 일 많이 하더라" 는 뉘앙스의 말을 해서. 현장에서는 쓸데없는 말을 안 하는 쪽으로 바꿨어요. 베니싱. 자카르타 할 땐 준비할 때는 농담도 하고 편하게 했었는데 촬영할 때는 필요한 말 외에는 안 했어요. 자카르타 의상 했던 친구가 그러더라구요.
"어떻게 현장에서 사람이 바뀌냐"고.

Q : 조감독- 연출부로서 가장 힘든 점
영화뿐만 아니라 어디서나 마찬가진 거 같은데 사람과의 관계가 참 힘든 거 같아요. 위치문제가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를 선을 잡는 게 가장 힘들지 않나..예를 들어서 타부서와의 조율문제나 연출부 내에서의 문제들도 있고, 전부 착하다고 해서 조화가 되는 것 같진 않거든요. 관계의 문제는 어쨌거나 생기는 거 같고 그걸 풀어 가는 게 힘든 거 같아요.
단적으로 감독님과 연출부와의 관계, 연출부와 연출부, 연출부와 제작부, 현장에서 촬영부와 제작부, 개개인간, 좋아하는 사이도 생기고 기타 등등. 관계를 설정하는 게 힘들지 않나 싶어요, 육제적인건 사람이 하는 거라 <베니싱 트윈> 할 때 1회차-4회차까지 4일 동안 ,찍기도 했는데 분량이 소화가 안되어서 6일간 촬영을 하는데 6일 동안 10-12 시간 잤나 그래도 다 하더라구요. 육체적인 건 오히려 부차적인 것 같고.

Q : 감독과 의견 충돌이 될 때 어떻게 대처하시는지
그것도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데 결국은 진행하는데 최대한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티는데 그 타이밍을 놓칠 때 기본적으로 감독님께 맞춰드려야 되는 게 아닌가. 근데 그 타이밍을 잡는다는 게 어렵죠. 어느 정도가 적절한 수위냐를 판단하는 건. 매 양화마다 한가지 수위만 가지고 접근을 하면 생기는 문제점이 더 많지 않을까 싶어요.

Q : 앞으로 감독이 되고 싶으신 거죠
감독이란 단어를 그리 좋아하지 않아요. '연출'이 낫지 않나요. 왜냐면 개인적인 느낌인데 '감독'이라면 권위적인 냄새가 나는 거 같아서! 각자 자기가 맡은 일이 있잖아요 서열이 있거나 권위적인 문제가 있는 거 같지는 않거든요. '연출'이라고 하면 범위가 작아지는 것 같기도 하고 연기나 콘티에 대해 집중을 하는 것 같아서. 더 좋아하죠. 결국은 감독이 되기 위해서 하는 거죠.

Q : 어떤 감독, 어떤 연출자가 되고 싶으세요?
여태까지 계속 영화를 찍는, 영화로 먹고 살 수 있는 그리고 나중에 뭐 제가 지금은 좀 미흡한 면이 많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계속 쌓아가서 나중에는 남들이 보기에 참 생각을 깊게 하면서 늙어갔구나. 이런 느낌을 주면 좋을 것 같아요. 근데 지금은 그런 역량이 안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보기에 그래도 재밌다는 느낌을 줄 수 있으면.... 그 재미라는 게 여러 가지잖아요. 그 스토리에서 오는 재미일수도 있고 아니면 그 콘티에서 오는 재미일수도 있고 어쨌든 간에 아니면 예를 들어 그 영화 좋다는 말속에는 재밌다는 말도 포함되어 있는 것 같거든요. 거기에서 어떤 시상이 좋다고 해서 그 영화가 좋다는 말은 안나오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사상이 있다면 그 사상을 어떻게 영화적으로 전달을 했느냐에 따라 '좋다' 라는 말이 나오는 것 같아요. 그런 식으로 어떤 재미를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생각합니다.

Q :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들이나 지망생들을 만나면 주로 어떤 얘기를 해주시나요?
저번에 후배한테 했던 얘긴데 영화보다는 인생이 중요한 것 같아요.
'영화가 인생이다' 라고 말할 순 없는 것 같고 영화는 결국은 수만 가지 직업중의 하나고 판단에 따라 가지고는 인생을 선택해야하는 부분들이 쉽지 않다는 것, 쉽게 얘기하면 그... 결국은 한번밖에 못살잖아요. 그래서 그 선택의 순간에 영화를 최우선의 가치에 두는 것은 좀 무모하지 않을까... 그게 자기의 삶을 얼마나 윤택하게 하고 거기에서 어떤 관계를 형성해서 사회 생활을 해나갈 것인가가 중요하지 "꼭 영화를 해야돼." 모 이런 생각은 그렇게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아요.

Q : 학교 다닐 때는 어땠어요?
언제? 초등학교 때부터 쫙 읊어드려요? 초등학교 때는 좀 잘난 척을 많이 하는...
어떻게 보면 외향적인 편이었어요. 그래서 야구경기, 시합 같은 걸 옆반하고 주선해서 투수하기에는 미안하니까 투수와는 가장 비슷한 포수를 하고..막 이런 식으로 굉장히 외향 적인 편이었는데 노래 부르는 건 엄청 싫어했고, 왜냐하면 노래 때문에 많은 수모를 겪었기 때문에... 워낙 노래를 못해요. 제 생각인데 '솔' 까지 밖에 안 올라가는 것 같아요. '도레미파솔'까지...우리형은 '라'까지 올라가더라구요. 우리누나는 1옥타브 반쯤 올라갈까? 여잔데... 우리 집이 대체적으로 노래를 못해요. 그래서 그것 때문에 항상 콤플렉스... 한번은 웅변대회가 있었는데 6학년 때인지, 5학년 때인지 반에서 대표로 해서 나가잖아요. 나가서 전교생 앞에서 웅변을 하는데 사람이 많고 위에 있잖아요. 위에서 밑을 내려다보니까 교실에 있을 때랑 느낌이 다르더라구요.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거의 읽는데 뒤에서 확성기를 통해서 내 목소리가 내 귀에 들리는데 막 떨려 나오는 거예요. 그 사건 이후로 제가 말을 약간 더듬는 경향이 생겨난 것 같고. 그 전에는 ○○○ 라고 다큐멘터리를 했었는데 그 사건 이후로는 순간적으로 목소리가 그 버벅거리는 수도 있고 거의 뭐 그렇게 살다가 공부는 그쪽으로 안 하는 편이었죠. 중학교때 서울에 와 가지고는 고등학교 때는 거의 영화를 많이 본 것 같아요. 물론 공부는 안 하는 와중에도 탁구 같은 것도 많이 치고.. 그 당시에 유행이었거든요.
엄청난 유행이었어요..탁구가... 그래서 매일같이 탁구장 가서 3시간씩 치고 막 그랬던 것 같아요. 고스톱도 많이 치고. 영화는 그때가 개봉하는 영화가 서울에서 개봉하는 영화가 우리 나라 영화, 외화 합쳐 가지고 아마 200편이 안 넘었을 거예요. 외화 같은 경우에는 1년에 한 120편 했나? 근데 극장에서만 한 100편 정도를 봤어요.. 그 당시에... 한국영화를 별로 안 봤기 때문에 들어오는 모든 외화는 거의 다 봤죠. 그런 거 있잖아요. 홀로 of 사일런스? 그런 영화를 보고 저 나름대로 점수 메기고 감독은 누굴까 런닝타임은 얼마지 얼마에 왔을까 이런 것 기록해 놓고 그렇게 고등학교 생활을 했어요. 그리고 제가 중3때 서울와서 대학교 올라갈 때까지 내 나이 또래 여자 하고는 얘기를 해본 적이 없어요. 서울에 왔는데 맨 처음에는 관계가 형성되기 전이잖아요. 모 예를 들어 혜원 여중하고 미팅 있는데 나갈래? 하는데, 처음에 안 간다고 나는 나름대로 뺀 건데 한번 그렇게 설정이 되고 나니까 구태여 내가 거기에 대해서 가고 싶지 않더라구요. 또, 그때 친구들이 계속 연결이 되다 보니까 '아 쟤는 으레히 그러는 애. 여자엔 관심이 없는 애' 모 이런 식으로 나에 대한 인상이 주어지고 나는 또 거기에 모 특별히 나서서 '나는 그런 애가 아니야' 열변을 토하고 싶지도 않고. 이래저래 하다 보니까 대학교 갈 때까지 내 나이 또래 여자하고 얘기를 해본 적이 없어요.

Q : 영화 보러 가실 땐 주로 혼자 가셨어요?
저는 예를 들어 일요일날 아침에 나가서 대한극장에서 조조보고 그 다음에서 막 뛰어서 서울극장에서 2회보고 막 뛰어서 중앙극장에서 3회보고 1,2,3회 이런 식으로 봤어요. 근데 그때 옆에 다른 사람이 있어봐요. 어떻게 데리고 가요. 그 다음에 뭐 토요일 같은 때 수업 끝나면 대학교에서는 영화제하고 거기에 보면 하루에 세, 네번 틀잖아요. 영화제 하면....

Q : 옛날에 성격이?
웃겼죠. '여자 앞에서는, 여자한테는 무슨 말을 해야 될까?' 이게 엄청나게 궁금했다니깐요. 그리고 내성적으로 변한 건 역시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예요. 그때 환경변화가 많이 일어나다 보니까 영화관에 기대 살았죠. 그 다음엔 아주 소수의 친구들만 있었어요. 친한 애들 몇 명, 그 친구들 맨날....

Q : 친구들이 다 영화 좋아하는 친구였나요?
그렇진 않아요. 영화 보는 건 싫어하진 않는데 특별이 영화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지 않았나, 한 사람 빼놓고, 나하고 한 친구...
대학교를 9번을 떨어졌어요. 따지고 보면...(웃음) 맨 처음에 고대(?) 시험보고 떨어지고 1지망, 2지망, 그리고 재수할 때 1지망, 2지망, 후기 1지망, 2지망 3수할 때 전기 1지망, 2지망 그 다음에 3수 후기 때 1지망을 외대 좀 괜찮은 학과 썼고 2지망은 원래 독일어과로 쓸려고 했어요. 왜냐면 모 독일어과 그냥 하자 그래가지고2지망을 독일어과 써 가지고 원서를 가지고 갔는데 현황판 있잖아요. 현황판 딱 봤는데 독일어과는 경쟁률이 1.6:1 정도 되고 아랍어과가 0.9:1 이더라구요. 그래가지구 재빨리 지우고 아랍어과로 고쳤거든요. 근데 끝나고 나니까 그 다음날 보니까 아랍어과는 3.6:1 인가 그렇고 독일어과는 2.5:1 인가 그렇더라구요. 아 안 고칠걸... 이런 생각이 들고... 그래서 시험 봤는데 1지망을 보니까 이름이 없더라구요. 그래서 뭐 편하게 서울예대나 가지, 서울예대 연극영화과를 가자. 그게 더 낫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2지망을 봤는데 내 이름이 있더라구요. 붙었으니까 다녀야죠. 영화서클 들어갔는데 서클이 좀 그렇잖아요. 고등학교 때는 그런 소문도 있었잖아요. 3수생이상은 잘 안 받는다더라 라든지, 그래가지고 맨 처음에 놀러갔는데 그때 제가 그 전에 재수할 때 외대에서 했던 깐느영화제가 아니라 뭐지, 안티올로지(?) 영화제라고 했었거든요. 그걸 재수할 때 그 정일학원 다니면서 정일학원 원래 수위아저씨가 굉장히 무서워요. 별명이 해글러(?) 였는데 그래서 그 수업시간에 빠져나갈 수가 없어요. 기본적으로. 그래서 방법이 모냐면 그 평상에다 던져요 가방을. 5층에서.... 그 다음에 딱 나가면서 잠깐 밖에 나갔다 오겠다고 얘기를 하고 와서 인제 가방을 메고 가야돼요. 그 당시에 가방 안에 있던 책이 교재 외에 '세계영화사'가 있었거든요. 근데 '세계영화사'는 나중에 한번 제대로 떨어져서 이게 쫙 이렇게 우그러들더라구요. 그래서 이거 펴 가지고 다림질하고. 그러면서 이제 안티올로지(?) 영화제에 갔는데 제가 모 시계태엽오렌지 하고 이지라이더 그 다음에 블루벨벳이니 모 이런 영화를 죽 했었는데 블루벨벳 볼 때 근데 블루벨벳 보고 그 당시에 영화 좋아하던 사람들은 엔드 크레딧을 끝까지 봐야한다 이런 게 있잖아요. 그래서 딱 보고 있는데 그 사람들은 이제 다 나가고 나 혼자 딱 남았어요. 그리고 인제 거기서 선배가 와서 끌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앤드크레딧 끝까지 보면 안됩니까?' 그러니까 가더라구요. 그래서 인제 딱 끝나가지구 나오는데 그 사람 생각에는 '아 쟤는 타학교 영화 서클 아일 거다' 이러고 와서 물어보더라구요. 그러면서 "실례지만, 다른 학교에서 오셨어요?" 그러더라구요. 그래서 아니요 저 재수하는데요 근데 이게 기억에 남은 거야 그래서 내가 가 가지고 옛날에 왔었다 그러니까 알더라구요. 너가 걔냐 그러면서...그래가지구 오디션을 봐요. 저희 동아리는... 강당 그 무대에다가 의자하나 갖다놓고 선배는 객석에 쭉 한 10명이 앉아요. 그 다음에 롱핀을 딱 때려요. 그래서 선배는 이렇게 실루엣만 지구 빛 들어오게 해가지구.. 연기를 시키는 건 아니구 질문을 하죠. 예를 들어 좋아하는 감독은 모냐. 영화서클에 왜 들어오려고 하느냐, 우리서클은 힘든데 버텨나갈 자신 있냐 모 이런 말들 있거든요. 근데 그 당시에 1학년치고는 충격적인 대답을 많이 했었어요. 좋아하는 감독이 누구냐? 안드레이 타르고프스키 좋아합니다. 왜 좋아하냐 아니 좋아하는 영화는 모냐? 희생을 좋아한다. 들어오기 전에 영화에 관련된 책을 읽은 적이 있느냐. 영화의 이해를 5번 읽고 세계영화사 3번을 읽고 그 외 잡지를 꼬박꼬박 보고. 스크린을 다 모았었거든요. 창간호부터. 근데 그걸 다 모았었는데 군에 갈 때 동기한테 잠깐 보관을 시켰어요. 보면서 보관을 해라! 근데 걔가 인제 걔네 집으로 안 가져가고 동아리 룸에 놔둔 거예요. 군에 갔다 왔더니 스크린이 시체가 되어서 사방에서 뒹굴고 있더라구요. 그러면서 조마조마 했지만 저희 때가 4수도 많았지만 3수도 많았어요. 그러니까 선배들끼리 회의를 했대. 받아야 되나 말아야 되나 그래서 모 회장 하는 형이 받자, 회장 하는 형도 3수를 했기 때문에 그래서 모 학교 생활도 잘했죠. 했는데 그 당시에는 저거 많이 이한열(?) 죽고 그랬거든요.. 91년도가... 그래서 저희 동아리에서도 다큐멘터리 찍고 그런 거는 인제 영화서클을 제대로 했다 이런 말을 하게 한 거고 그거와는 별개로 동기가 6명 있었는데 맨 처음에는 술마시면서 밤새고 그 다음에서는 술맛 없어지니까 비디오보고 밤새다가 그 다음에는 고스톱 치면서 밤새고 그 다음에는 당구 치면서 밤새고 그래서 군에 가기 전에 한 6개월 동안 대학 생활을 했는데 100일 인가 밖에 안 들어 갔었어요. 서클룸에서 자고. 아니면 모 친구하고 친구끼리 여관 가서 자고 그렇게 살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나름대로 과 에서는 대학교 가면 그래도 그 막시즘을 공부해야 되지 않겠냐 해서 학회 들어서 학회하고 그 여자랑 말하는 법을 터득해야 되잖아. 그래서 일부러 그 동기 여자 애들한테 말 많이 하고..맨 처음에는 말을 진짜 못하겠더라구요. 어떤 말을 해야 되는지 모르는데, 하다보니까 여자 애들도 이런 말을 해도 받아주는 구나 모 이런 생각도 들고, 지금도 여자한테는 말을 잘 못하잖아요. 지금 말이 제대로 안되고 있다니까...어쨌든 모 그러다가 군에서 비디오 병 좀 하고...비디오 병이라고...전문병(?) 밑에서 일하는 사람인데 행사 같은 거 있으면 촬영도 하고 그 다음에 자체 뉴스 같은 거 만들고 이러거든요. 그거를 약간의 뻥을 쳐서 들어갈 때 특기란 이런 거 쓰는 게 있어요. 거기다가 영화작업 해 가지고 16㎜ 작업, 그 다음에 예식장 아르바이트 그런 거 쫙 썼더니 이렇게 운대가 달아 가지고 일병 때 비디오병을 하게 되었어요. 비디오병 하고, 제대한 다음에, 보통 때 청원 경찰 아르바이트하고 그때가 일이 진짜 좋았는데... 제복이 나름대로 잘 어울렸는지 지나가던 사람들이 사진 찍자구.. 그 쇼핑몰, 롯데월드 쇼핑몰 보면 거기 분수대 있잖아요. 거기 주로 있었거든요. 94년도에 제대한 후에는 청원 경찰 알바해서 번 돈으로 선배 영화 굉장히 나름대로 영화를 많이 아는 형이 있었는데 89학번에.... 그 형이 원래 '히치콕과의 대담' 이라는 책이 있잖아요. 그거를 그 책이 나오기 전에 혼자서 번역을 해서 낼려고 했었어요. 그래서 초고를 다 했는데 딴 데서 나온다더라 그래서 그걸 접었어요. 근데 그 일이 있은 한 5년 후에 나오더라 책이...그 때 그 형이 먼저 낼 수도 있었을 텐데.... 그 형하고 그때 씨앙씨에(?)라고 시네마테크가 있었어요. 거기에 가입을 해서 비디오 테입을 빌려 복사하는 작업을 했었어요. 계속.... 그게 서클에 있죠. 그래서 내가 일단 많이 하고 그 다음에 선배들한테 개인적으로 나 이런 일 하는데 공테입 좀 사라 그래가지구 10개 20개씩 다 뜯어내구 해 가지고 계속 복사작업을 했거든요. 근데 복사해서 보게는 안되더라구요 돌려놓고 자고... 그렇게 테잎을 쭉 모으면서 후배들 챙기고 선배 작업할 때 돕고.

Q : 지금도 학교 가서 후배를 만나고 그러세요?
요즘은 자주는 못가구요. 신입생때 신입생 예비학교라고 한 2주간에 걸쳐 가지고 선배들이 스터디를 해줘요 물론 95학번 선배들인데 가끔씩 졸업한 선배도 시간이 나면 해주고 하는데 그거 해주고 제가 졸업하기 전에는 우리 동기 중의 한 애가 여름에 워크샵할 때 스터디를 했는데 그땐 충무로 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불로 스터디를 했었어요. 예를 들어서 편집 스터디를 반칙왕 기획했던 ○○○씨하고 ○○가 와서 편집 스터디를 하고 유영이 형이라고 지금 PD 준비하는 형한테서 PD스터디를 하고 연출스터디는 이재수의 난 조연출 했던 심재연이라고 재연이 형이 와서 하고....선배예요, 외대. 87학번 제가 1학년 일 때 4학년 이었거든요. 그래서 같이 선배가 스터디한다고 친했었어요. 근데 요즘은 전화를 해도 왠지 껄끄러워 하는 것 같애. 아무래도 지금 데뷔 준비를 하는데 잘 되가는지 모르겠어요. 그 다음에 촬영 스터디는 최영택 기사라고 오, 수정! 하고 화? 찍는 형이 와서 직접 조명 치고 상황을 설정해서 찍어서 러쉬까지 보고, 그런 스터디를 하고 그때 저는 몰 했냐면은 선배들이 오는데 애들이 너무 모르면 안되니까 사전교육 이런 거 하고 지금도 일년에 가끔씩은 가요. 가서 스터디 같은 거야 모 예비학교 때 한번 정도 해주는 거 외에는 없고 가끔씩 가 가지고 얼굴이나 보고 그러죠. 왜냐면 거기를 떠날 수가 없는 게 거기 내가 복사한 테잎이 있기 때문에 나도 봐야 할 거 아녜요.

Q : 그것 때문에?
그럼요. 그게 테잎이 공테잎 하나를 2000원으로 계산할 때 100편이면 얼마지 20만원이잖아요. 그러면은 900편이면 얼마죠? 180만원 인가요?

Q : 거기 갔을 때 스크린이나 모 나뒹굴어서 ?
그걸 어떻게 모았는데.. 그거 초기에 1년 나올 때 는 못 사고 그 다음에 계속 산 거예요. 근데 1년 몇 개월 분은 없잖아 그건 청계천 나가 가지고 거기에서 과월호 헌책방에 나뒹구는 거 다 사 가지고 다 모았거든요. 그래서 그 당시에 장기구독 있는 사람 예를 들어 8년 기념해가지구 하면 거기에 오려 가지고 보내서 좋은 거 되겠지 하면서 보냈는데 좋은 거는 모 오디오 이런 것도 줬었거든요.
근데 된거라고는 모 이규형 책 한권 이런 거 되고 어쨌든 아깝죠. 로드쇼도 다 모았었어요. 로드쇼는 창간호부터. 근데 그것도 다 없어지고. 서클에 놔두면 다 그렇게 되더라구요. 테잎은 지금 안 없어지는 거 보면 신기해, 내가 모으면서 없어지면 안되고 그럴 굉장히 하드 트레이닝으로 했더니 안없어지더라구요.

Q : 조감독의 요건이라든가?
그런 어려운 질문을.... 제가 좋은 조감독이 아니라 그걸 모르겠는데.

Q : 조감독이 될려고 노력을 했잖아요. 어떻게?
가장 좋은 조감독은 작품에 도움을 주는 조감독이 가장 좋은 것 같애요. 그걸 할 수 있는...물론 여러 가지 도움이 있겠는데 가장 중요한 건 내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조연출이 가장 좋지 않나 싶어요, 저는... 근데 그거가 잘 안되지蝡 하고 싶은 맘이 굴뚝 같애도 안 되는 경우가 있지. 그거는 힘든 부분이기도 하고 근데 그 외에는 모 결국은 ○○ 되는 거 없이-
좋은 조감독은 저 같은 조감독이 좋은 조감독이라고 생각합니다. 라고 얘기하면 안되겠죠. 그 다음에 최선은 결국은 ○○가 되는 부분이 없게 가져 가는 게 최선이 아닐까 싶어요. 보면은 비는 부분들이 많잖아요, 물론, 화면이 비는 게 아니라 화면 내적으로, 외적으로 예를 들어서 모 구조체험자? 의 리얼리티나 동선 같은 부분들도 연출자가 체크하기에는 힘든 부분들이고 그 중요한 여기저기서 사소한 문제가 터질 때 그런걸 웬만히 해결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그 다음에는 연출팀을 생각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가령, 이 연출팀에 들어온 사람들이 여기에서 어떠한 것들을 배우고 그 다음에 앞으로 어떻게 방향을 설정해서 나갈 것인 가에 대한 고민도 같이 해줘야 되는 것 같긴 해요. 그 정도 면은 모 좋은 편 아닌가.

Q :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어떤 영화요? 제가 생각하는 시놉은. 시놉들이 있는데 그 시놉들은 장르는 굉장히 다양한 거 같애요. 장르는 굉장히 다양한 것 같은데 스타일은 조금도 내가 생각하는 스타일은 비슷한 것 같은 면도 있거든요. 그건 스타일 적인 문제고 내가 생각하는 스타일은 비슷한 것 같은 면도 있거든요. 그건 스타일 적인 문제고 모 어떤 영화라는 게 스타일도 포함이 되겠지만 은 그 외에 주제나 이런 것들은...

Q : 연출부의 임금을 공개를 하자면 하실 건지?
전 뭐 공개하는 건 별로 어려운 문제인 거 같진 않아요
이 영화 얼마 받았다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영화는 어떤 수준에서 얼마의 시간이 걸렸고 몇회촬영을 나갔고 몇 달 촬영을 했고 전부다 그것과 비슷하게 동등하게 공개를 해야 외재 않나 되지 객관적인 수치가 나오지 않을까. 막연하게 나는 이 영화를 했는데 얼마 받았다 보다는 이러한 규모에서 프리단계에서 이렇게 해서 얼마를 받았다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거죠. 첫작품 Y2K 시네마에서 할 때 굉장히 조금 받았어요. 저 예산이고 말도 안되는 이야기 인데 조연출 했던 누나가 자기걸 많이 안 가져갔어요. 회사에서 말한 건 이익을 주겠다. 예를 들어 5만 넘기면 얼마 10만 넘기면 얼마. 이벤트가 있었어요. 10만 넘기면 다른 영화에서 받는 만큼 됐었어요. 20, 30만 넘기면 훨씬 많이 받는 거였는데. 그 경우에는 문제가 인센티브를 걸면서 기불 개런티를 내린 거잖아요. 거기에서 돈 문제를 차치하고 좋은 점이 몇 가지 있었어요. 잔금 지금도 잘 나왔고 촬영회차가 늘어났는데 계약 내용을 약간 수정해서 5만에 대한 인센티브를 미리 지급했어요. 촬영회차가 늘어난 만큼 약간의 보상을 해준 거죠. 그런 C측면들이 있어요. 그런 다양한 것들이 이야기가 되어서 객관적인 수치가 나와야지 자료의 가치가 있죠.

Q : 스탭들간의 처우개선의 문제 즉 각 파트별 간에 우위가 있다고 생각하는 스탭들이 많이 있는데
저는 기본적으로 기간이 중요한 거 같아요. 예를 들어 제작부 같은 경우 돈을 관리하기 때문에 적절한 보상은 필요해요. 은행원들이 돈을 많이 받거든요. 거기에는 이유가 있는 거 같아요. 연출부 경우에는 프리, 포스트 프러덕션 이라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런 QNM분에 대한 배려가 있어줘야 한다고 보고 제 생각을 하면 3단계로 나눠서 계약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을 해요. 지금은 선금과 잔금을 주잖아요. 그게 아니라 프리, 프로덕션, 포스트를 나눠서 계약을 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지 않나 기본적으로 영화에 참여하는 건 어느부서가 더 많이 받고 더 조금 받는 문제는 얼마만큼 붙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라고 보는데요.

Q : 그 문제가 임금 때문에 생기는 거라고 보시나요?
그건 아닌 거 같고. 그런 생각이 있기 때문에 임금 문제에 반영이 되지 않나 싶어요 그 부분은 마인드가 바뀌어야 되는 거 같아요 예를 들어, 스케줄을 짜서 진행하는 사람이 있고, 그 스케줄을 따라서 기자재를; 의상을 준비한다든지 하는 역할의 구분은 있을 수 있는데 어느 것이 영화에서 더 중요하냐는 문제는 필요가 없는 생각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고쳐지면은 오히려 임금에 반영이 되지 않을까요. 조금 시간이 걸리겠죠. 연출팀의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도 벅찬 부분이 있잖아요. 예를 들어 제작사에서 이 부서에 개런티를 더 많이 주겠다 했을 때 다른 부서의 퍼센테이지도 같이 높아져야한다는 생각은 있거든요 그분들은 결국 서열을 따지는 생각이 밑에 깔려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어느 부분이 저 평가 되었다면 구 부분은 올릴 수 있다고 봐요. 그럴 때 다른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이 불만이 있을 수 있겠죠.

Q : 개별 계약제가 이루어지면 도제 시스템이 무너질 거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지금 도제 시스템이 남아 있는데가 없잖아요 서열이 아닌 외국 스탭과 같이 업무 분담이 되는 시스템으로 변화할까요?
관계의 문제인데 그렇게 바뀔때는 전제조건이 있어요 역할이 겹치는 게 없어야 하고 역할이 겹칠 때는 그 일에 누가 책임을 지느냐 하는 문제가 생기잖아요. 외국이라함은 미국을 지칭하는 것일 테지만 그 시스템을 가져온다는 했을 때는. 하나하나 세밀하게 역할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되지 않나. 연출부도 마찬가지거든요. 예를 들어 A는 공간을 담당하고 B는 인물을 담당한다고 했을 때 둘이 분명 겹치는 부분은 있거든요. 처음 시작할 때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으면 역할 적인 부분에서 파트를 나눈다고 했을 때 문제가 생길 여지가 많은 거 같아요.
그런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Q : 파트 업무를 나누어 해보셨어요?
계속하려고 하는데 생각보다 안 되는 경우가 있어요. 예를 들어 임금은 경력에 따라서 준다는 기본 전제가 있어요. 일하는 측면에는 그런 거를 안 두고 싶었는데 외관상으로 안 두는 거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소소한 문제들이 많이 발생하고 오히려 연출부 개개인한테 상처를 주는 거 같고 그게 쉽지만 않는 거 같아요. 그렇지만. 내가 하는 동안에 실험이라면 실험이고 그렇게 하고 싶고 <미소>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고 쭉 생각을 하고 있어요. 전 촬영부는 잘 모르지만 촬영부도 롤링만 하는 사람 포커스 맞추는 사람 나누어져 있지만 겹치는 게 있을거 아니예요 그런 겹쳐가는 부분을 누가 가져가느냐. 역할로 완벽하게 나누어지진 않는 것 같아. 개별계약을 한다고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 같아요. 경력의 차이가 많다면 오히려 접고 들어오는게 있지 않을까요. 책임문제가 있을 때 경력이 많은 사람이 효율적으로 잘 알고 있으니까 그 사람을 따라줘야 하는 문제가 생길 것 같아요.

Q : 조감독의 역할, 권한은 어느 선까지일까요?
제작 쪽에서 내외적으로 일을 한다면 연출부는 내적으로 하는 거거든요. 슈팅과 관련된 부분만 진행을 하는 것 같고 조연출은 그부분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연출부들에게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관리하고 가장 효율적으로 편하게 찍을 수 있게 관리를 하고 비는 부분을 이야기하고 그런 부분이 아닐까 싶어요

Q : 제작부와 부딪히는 건 없으세요?
있겠죠. 그 부닥치는 게 잘 부닥치면 좋은데. 모든 일들이 부닥치면서 해결이 되어 나가는 건데. 근데 잘못 부닥치면은 굉장히 골이 깊어지는 경우도 생기는 것 같아요. 그런 일이 생겼을 땐 난감하죠. 사실은. 어떻게 해서든 같이 가야하는데 해결하기가 쉽지 않은 부분들이 있는 게 애초에 역할 분담이 어디서 어디까지 하는 예를 들어 제자 제작부의 일은 이런것이라는 마인드가 있는데 제작부는 규정된 이 일에 다른 마인드를 가지고 있으면 비는 차이는 어떻게 극복을 하느냐 이런 건 힘들죠.
점괘에는 30대가 넘어가면 잘 풀린다고 했는데 잘 풀린 케이스지 그렇게 따지고 보면 쉬지 않고 일했으니까 이번 계약까지 2년에 3편을 계약한거니

Q : 전문 조감독제에 대해서 어떤 생각이신가요
장단점이 있는 거 같아요. 선행되는 조건이 있는데 전문 조감독이 될려면 회사에서 경력에 맞게 회사에서 연봉이 있어야 되요. 그게 전제조건 인거 같고 장점이라면 노하우들이 현장진행을 하는데 굉장히 부드럽게 돌아갈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렇지만 연출자 입장에서는. 조금 안 좋은 측면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어요. 예를 들어서 미묘한 문제들이 발생했을 때 회사에서 고용된 상황에서 그 회사에서 계속 일을 한다고 했을 때 과연 자기의 위치를 포기하고 연출자의 입장에 서 줄 수가 있을까 라든지

Q : 한 회사에 소속된 게 아니라 옮겨 다닐 수 있는 그런 전문 조감독제도를 이야기한 건데요
그 경우엔 전문조감독이라고 말하기가 힘들지 않을까요. 평생 조연출만 하겠다고 했을때에는 "난 전문 조감독만 하겠다" 라고 했다 하더라도 변화의 여지가 많잖아요. 작품이 안들어 올 수도 있고 그러면 백수나 마찬가지 잖아요. 그런 부분에 대한 보상이 없이 전문 조연출이라고 할 수 없을 것 같거든요. 작품이 없더라도 계속 돈을 받아야 하고 경력이 쌓이면 거기에 맞게 연봉도 되어야 하고 그런 것이 보장이 되어야 전문 조연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Q : 경력이 많고 능력을 인정받은 조감독이 전문조감독을 해야 될 것 같고. 그정도라면 일이 없어 놀고 잇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그건 머리속으로 하는 생각이구요. 예를 들어 그런 사람이 많을 경우 선택하는 한 명이 생길 거구 일을 안 하게 되는 사람이 생길거라구요 정 안될 경우 몇몇 회사가 공동으로 직업조연출을 둔다 할 수도 있겠죠. 한 회사가 아니라! 연봉은 있어야하고 1-2년 지나면 회사에서 연봉도 올라가야만 그 자리가 보장이 될거예요. 거기서 받는 게 일반 기업체 수준으로 올라가야만 되죠. 그래야지 전문 조연출을 하죠. 최소한 여기서 10년 일해서 딴 회사 10년 일해서 받는 돈만큼 받아야지 직업으로서의 가치가 있죠. 결국 경험 많은 사람이 조연출을 하는 거죠. 내가 혹시나 만에 하나 연출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어서 만약에 뜻이 맞는 사람이 조연출을 하고 그 사람이 나같은 사람을 조연출로 필요하다고 한다면은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싶거든요. 연출 한다음에 조연출을 할 수 있지 않나 그건 어떤 사람이 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직업이란 말은 상당히 무게가 있는 말 같아요. 연출을 계속 직업으로 한다면 영화 한편이 아니라 최소한 1년이나 2년에 한편씩 찍어내는 정도가 되야지 직업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전 항상 직업이 뭐냐고 하면 백수라고 얘기해요

Q : 10년후면 제작환경이 많이 바뀔거라고 생각하는데 지금의 거품도 많이 빠지리라 보는데
어떠한 영화가 만들어지느냐에 따라 다르겠죠. 거품이라면 거품이겠지만 지금은 투자하는 사람입장에서 그만한 파이가 된다라고 보기 때문에 투자를 하는 거니까 단순히 거품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측면이 있는 거 같아요. 물론 여기에서 계속해서 지금 같은 흥행이 보장 안 된다면 빠져나가겠죠. 지금 같은 흥행이 보장이 안될 거 같긴 해요. 저는. 빠져나가기는 빠져나갈 것 같은데 그전에 데뷔해야 하는데 (웃음) 기본적으로 빠져나갈 것 같아요. 그전에 됐으면 하는 게 굉장히 투명한 흐름이 됐으면 해요. 수익구조가 투명한! 지금 우리 나라 같은 경우 따질 때 관객이 얼마 들었다만 따지잖아요 사실 얼마 들었다 보다는 몇 원이 들어왔다가 더 중요한 거 같거든요. 아직까지 지방은 정확히 그런 게 파악이 안되잖아요. 가서 체크를 하면 극장 문을 닫아버리고 체크를 하지 마라 이런 식으로 체크를 하지 않아야 문열고 그런 문제가 아직도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충무로에 돈이 빠져나가기 전에 됐으면 하는 그런 바람은 있죠. 함량 미달의 작품이 만들어진다고 했는데 그건 만드는 사람이 책임지는 거 보다는 투자하는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하는 거죠. 왜냐면 선택을 했으니까. 그 작품을 선택을. 투자하는 사람 입장에서 좋은 작품을 하는, 그렇게 할 수 있는 그렇게 할 사람은 계속 남아있지 않을까요.

Q : 영화를 안 하는 친구들을 만났을 때 영화 얘기 안 하세요?
전 영화얘기는 영화를 하는 사람들하고만 해요. 다른 사람이 예를 들어 <엑소시스트> 어땠냐 했을 때 그 사람이 영화를 하는 사람이냐 아니야 따라서 굉장히 다르게 대답을 하죠. 하는 사람이면 어떤 측면들을 이야기 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은 일반적으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느낌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예를 들어 소개팅을 해요. 여자가 있고 남자 있어요. 여기에서 <피아노> 라는 영화에 대해서 라깡의 정신분석적.... 하고 이야기를 해봐요. 그런 얘길 좋아할 여자가 어디 있겠어요. (모든 이야기의 끝은 여자로 끝난다고 해서 별명이 "깔대기" 이시래요-hal 9000 님이 알려주심) 나는 영화는 많이 아는데 넌 모른다. 이런 식으로 비쳐질 수도 있거든요. 수위를 맞추어야 되는 거 같아요. 그래서 영화안하는 사람한테는 영화 얘기를 안하죠.

Q : 친구들이 보는 조감독은 어떤 것 같아요?
친구들은 그나마 영화 쪽을 다른 사람들보다는 알고 있는 편이고 내가 영화 내적인 얘기는 안 하더라도 외적인 얘기를 많이 할꺼 아니에요. 그 친구도 직장 얘기를 할꺼구 그런 측면에 있어서는 그래도 다른 사람들보다는 조연출이라는 직업에 대해서 좀 이해가 높지 않을까 싶구 그러기 때문에 제가 얻어먹을 수가 있는 거죠. 친구를 만나면 주로 얻어먹죠. 사실은 통장에 돈은 좀 있지만 그렇지만 난 미래가 없다며. 거의 얻어먹죠. 그 친구들이 그만큼 이해하기 때문에 사줄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저는 얻어먹는 데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내가 비슷한 위치에 올라서면 비슷하게 그 친구도 돈을 벌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서면 같이 쓰면 되는 거구. 그런 게 아닐까. 또 그 친구가 나를 찾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얘가 당구를 치면 얘가 승부에 집착을 하기 때문에 재미있게 밤샐 수 있다 이런 것도 있을 수 있고 술마실 때 얘는 열심히 들어주는데 고민거리를 얘한테 맘놓고 얘기할 수 있다. 그런 것도 있고. 내가 영화를 하고 싶었는데. 얘는 하고 있구나 내가 얘한테 술한번 사주자 이럴 수도 있고 그런 거에 별반 죄책감이나 미안함은 전혀 없죠. 제가 그런 느낌을 안 가질 친구들을 만나게 되는 거 같긴 해요.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친구를 만나는 거긴 하죠. 그래도 소개팅도 하고 싶구요. (웃음) hal9000이 해준다고 했는데....소개팅을 위해 돈을 이만큼 쌓아놨기 때문에. 계약도 했잖아.

Q : 결혼하려는 상대방의 부모님이 영화를 하기 때문에 반대를 하신다면?
그 여자를 얼마나 좋아하느냐에 따라 다르죠. 결혼 할 정도로 좋아하면 결혼을 해야죠.

Q : 영화를 포기하고요?
그렇게 할 여자도 있다고 봐요. 영화보다 인생이 중요한 거니까. 인생보다 사랑이 중요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어떤 경우에나 내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이것밖에 없는데 라고 할 경우 막노동을 하는 걸 그 집 부모가 좋아할 리는 없을 거예요. 일정 정도의 나이가 들면 정상적인 직장생활은 힘들다고 봐요. 자유업이나 장사 기타 등등. 그런 쪽을 할 수 있는 위치가 안되면 어떻게 하겠어요. 예를 들어 '나 영화 포기하겠다. 대신에 내가 돈을 벌어먹고 살 수 있는 기회를 달라' 라고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기본적으로 포기할 수 있다고 봐요. 난 근데 이건 내 생각이고 전에 사귀었던 내 여자친구는 뭐라고 했냐면 영화는 포기할 수 없다고 하더라구요. 영화를 포기할 경우에는 그에 따른 후회 때문에 엄청난 프래셔가 자기한테 올 것이다라고 얘기하던데 그렇지는 않을 것 같아요. 그런 상황이 닥쳐보지 않았으니까 글쎄.... 여자가 원하고 유일한 방법이라면 포기하는 게 뭐 어렵겠어요.

Q : 부모님은 영화 하는 걸 반대하고 여자는 영화하는 걸 좋아하면 어떡해요? (movie1975 님의 질문)

그러면 둘이 도망가야죠. 도망가서 살면 되지.

Q : 영화한 걸 후회한 적은 없으세요?
후회하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예요. 지나간 일을 후회해봤자 뭐할까 하는 생각이 있고 내가 목표한 거에 80%정도 됐다고 하면 만족을 해요. 그 80% 에 미달됐을 때는 만족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후회를 하면은 도움되는 게 없지 않겠어요. 영화를 함에 있어서 후회를 한적은 별로 없었어요. 제 아이디가 simpleman 이잖아요. 할하틀리 영화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것보다 단순함을 좋아하기도 하죠. 후회를 하면 고민을 하면서 이 일을 할 것 같아요.
그냥 이렇게 사는 거죠. 아직까지는 최소한 다른 거 하는 것보다 잘 살 것 같아요. 시작은 미미하지만 더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른 걸 한다고 했을 때 앞으로 내가 이걸 하면서 살게 될 거보다 더 잘 살 거 같지는 않거든요. 물론 외적인 부분일수도 있고 내적인 부분일수도 있고 내적인 부분이 강하고 외적인 부분이 작다고 해도 후회를 할거예요. 그 판단은 죽을 때 인거 같고 그전 까지는. 10년 20년 정도 되겠죠. 그때는 후회할지 모르겠지만 지금 후회하는 건 없어요.

Q : 평생 영화를 하실 거라고 했는데, 사람들이 어떤 연출자였다고 평을 했으면 좋겠어요?
기억이나 하겠어요. 수많은 감독들 중에 기억이 되는 감독이 몇%나 될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연출부에서 연출을 하는 사람이 5%정도 될까요? 내가 그 5%중에 들어갈 자신이 있고 없고 는 둘째치고 냉정하게 판단 했을 때 그담에 그 5%중에 후세까지 기억에 될 예는 얼마나 될 거 같아요. 사실은 내가 기억 받기를 원하기는 하겠지만. 기억이 안될 것 같은데. 확실히 그런 건 있겠죠. 만에 하나 5%안에 들어 연출을 했는데 나중에 비디오가게-나중엔 DVD 가게가 되겠다. DVD 가게에 가서 빌려 봤는데 옛날 영화인데 이 정도면 재미있네. 그러면 되지 않을까요. 감독이 누구고 배우가 누구고 이런걸 기억해 줄 사람은 몇 명이 안될 거 같거든요. 내가 미국의 54대 대통령이 누군지 알아. 그 거대한 나라에 54대 대통령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일개 조그만 나라에 일개 연출을 기억해줄 사람이 있기를 바란다면 진짜 굉장한 욕심이 아닐까?


한시간 반이 넘는 인터뷰를 끝내고서 뭔가 아쉬움이 남으신 지 계속 알맹이가 없는 것 같다는 말을 되내이셔서 필름 메이커서 시사회날 다시 만나기로 했으나 그 이후로 보충 인터뷰는 하지 못하였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이슬을 먹고 있는 저희들에게 핑크 메일 님이 잠깐 다녀가셨고, (미모를 직접 확인했음) 소나기가 지나가셔 촉촉이 젖은 충무로 골목길을 새벽이 되어서야 떠났습니다.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ff3322211
2005.10.10 02:44
휴~다 읽었어요
kim3032
2006.07.24 12:09
ㅡㅡ와 길다...다 읽었다... 뿌듯 !
wey0wh
2006.09.03 20:13
음 ..... 멋지게 사시네요!
skystar7004
2006.11.21 17:45
도움이 되는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서종해 제작부장 : 2004년 07월 07일 22

황순용 조감독 : 2002년 08월 03일 4

이지행 감독 : 2002년 08월 03일 2

김영철 촬영감독 : 2002년 07월 28일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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