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로이드는 춤추고 싶은 기분을 느끼는가?
안드로이드는 사전적으로 인조의 인간이지만, 겉으로 보았을 때 원래의 인간과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비슷한 존재를
의미한다. "우리는 무엇이며, 어떻게 지금 이곳에 있는가?"라는 자의식적이며 또한 존재론적인 질문들의 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우리와 닮은 존재들을 오랫동안 만들어왔고, 이를 사유의 도구로서 활용하며, 고민해왔다. 산업혁명 이후
과학이 급격한 발전을 이룩하면서, 이러한 질문들은 사변적인 수준을 넘어 실질적인 필요성을 갖는 나름대로의
절박성을 띠게 된다. 외형적으로 인간과 닮았는지의 여부를 떠나, 실질적으로 인간과 유사하게 ‘기능’하는 존재들을
상상하고 구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앨런 튜링의 이미테이션 게임 (이하 튜링 테스트)는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고안된 사고실험이다. 이 실험에서는 ‘언어’가 매개가 되어 상대방이 인간으로 간주될 만큼 ‘언어’기능을 잘
구사하는지가 그가 인간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 언어를 구사하며 실험에 참가하는 자의 행위 동기에
관한 문제가 남기는 하나, 이 실험은 우리의 실제 대화가 얼마나 패턴화되어있는지 알게 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실제로 우리가 어떤 의식적 동기를 가지고 이를 행동에 옮기는 경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적고, 대부분의
행동과 판단은 상당 부분 패턴화되어있다는 것이다.
튜링 테스트는 인간의 정체성을 이루는 대표적인 기능으로서 ‘사고’활동에 주목했고, 이는 언어활동으로 드러난다.
당시에만 해도 기계라는 것은 ‘사고’판단이 배제된 단순한 물리적인 행위를 대신하는 일종의 ‘노동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사고 판단’이 기계화될 수 있다는 발견, 아니 이 기계화된 사고 판단이 인간의 그것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기능적으로 월등할 수 있다는 발견은 아주 최근의 수십 년 동안 일어났다. 산업혁명을 통해 기계’동력’이
발명되며, 인간이란 존재의 ‘물리적 노동의 가치’가 상당 부분 기계의 그것으로 대체되고, 정보화 혁명과 인공지능의
개발로 인해 인간이란 존재의 ‘사고 기계로서의 가치’가 상당 부분 기계의 그것으로 대체될 때, 결국 남은 자리에는
무엇이 있는가?
막스 테크마크를 비롯한 몇몇 학자들은 ‘감정’에 주목한다. 왜냐하면 ‘기능’을 목적으로 개발된 그것들에게는
‘감정’이란 것이 없지 않나? 그런데 ‘감정’이란 무엇이며, 우리는 왜 ‘감정’을 느끼며 존재하는가? 감정이란 일종의
‘기능’인 것으로 보인다. 감정이란 본능이란 하위 구조가 복잡화된 일종의 시스템이다. 감정이란 직관적이다.
감정이란 것은 먼저 존재하고 후에 분석되고 설명된다. 생존을 위해 사고보다 빠른 판단이 요구되는 환경에서는
감정이 고도로 발달된 자들이 살아남기 유리할 것이다. 그런데 살아남기 위해 수행해야 되는 과업이 매우 복잡하고
연역적인 사고를 필요로 하게 된다면, 감정을 절제하고 상황 자체를 타자화하고 객관적으로 직시하는 능력을 가진
자들이 살아남게 될 것이다. 인공지능과 공존한다는 것은 ‘사고의 도구’로서 인간의 뇌가 담당하던 역할을 상당 부분
인공지능에게 일임하고, 남은 부분을 생물학적인 인간이 여전히 맡게 된다는 것인데, 그 경계선이 어디에 그어질
것인가에 대해서는 좀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춤추고 싶은 기분
나는 춤을 추고 싶은 마음이 드는 순간에 주목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사고 판단’에 의해서 일어나는 마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치 조건반사처럼, 우리는 어떠한 리듬이나 선율에 대해 감정으로 반응한다. 이 현상은 무엇인가? 그리고
인공의 존재는 이러한 감정을 가질 수 있을까? 그런데 우리는 감정이 무엇인지 아직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앨런
튜링은 우리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어떤 기능을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 판단하는 방법으로서, 그 ‘기능’의
발현 증거로서 간주되는 어떠한 것을 상대방이 드러내는지 아닌지 확인하는 게임을 제시했다. 이 게임을 지금 이
경우에 빗대어 생각해본다면, 상대방이 ‘감정’을 느끼고 있는것으로 판단되는 어떠한 행동을 보인다면, 우리는 그들이
인간인지 아닌지와 관계없이 감정을 느끼고 있다고 간주해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행동을 드러내는 방법으로서 그것이 조작될 가능성이 가능한 적은 보편적
상황을 설계하고자 한다. 어떠한 상황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물리적으로 표출되는가? 그것은 선험적이고
보편적인 반응이어야 한다. 우리는 음악에 춤으로 반응할 때 위의 조건들을 충족한다. 나는 '음악에 춤으로 반응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자들과, 역할을 부여받지는 않았으나 '유사한 반응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는 자’들이 섞인 공간을
구성한다. 그리고 이 둘이 뒤섞인 상황 자체를 관조하며,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자들의 몫도 남겨놓는다.
관객으로 위장한 자들과 관객들이 뒤섞인 공간에서, 우리는 인간으로서, 인간으로 위장된 자(안드로이드)와 뒤섞인
상황을 간접적으로 체험한다. 우리는 춤추고 싶은 기분을 느끼는가? 그들은 춤추고 싶은 기분을 느끼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더 나아가 우리는 왜 춤추고 싶은 기분을 느끼는가? 만약에 우리가 왜 춤추고
싶은 것인지 모른다면, 이유도 모른 채 춤추고 있는 우리들과, 이러한 상황에서 춤추도록 설계되어 춤추는 그들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작가소개 - 박관우
현대미술가 박관우의 작업세계는 인간 자의식에 대한 그의 근원적 질문들로부터 비롯된다. 조각과 사진,
영상에서부터 인터렉티브 설치와 인공지능 챗봇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작업하는 그는,
인식주체의 자기-타자화를 통해 드러나는, 자아의식의 현상과 과정, 그 조건들을 집요하게 탐구하며, 더 나아가,
인간과 비인간의 물리적 위계가 무너지는 포스트-휴먼시대에 그것들이 어떻게 새롭게 이해될 것인지 묻는다.
홍익대학교에서 디지털미디어 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대학시절, 인터렉티브 기술을 활용한 미디어 설치작업을
선보이며 작업을 시작했다. 학부 졸업 후에 미술관과 대안공간 등에서 전시 디자이너로 일하며 다양한 매체의
작업들을 본격적으로 접하기 시작했으며, 미국 스탠포드 대학에서 열린 TEI 2015,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CHI
2015 등의 국제 HCI(Human Computer Interaction) 학회에 작가로 초대되어 발표하였다. 후에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의
왕립 예술대학교(Roayl College of Art)에서 순수미술 조각을 석사를 마쳤으며, 2018 년 영국 Ashurst Emerging Artists
Prize 에 노미네이트, 같은 해 한국 포스코 미술관의 제 5 회 신진작가전에 참여했다. 2019 년부터는 현대차에서
후원하는 크리에이티브 플랫폼 제로원(ZER01NE)의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웹사이트 : www.kwanwoopark.net
인스타그램 : https://instagram.com/studio.kwanwoopark/
퍼포머의 연령 및 배경은 다양할 수록 좋습니다.
1차 오디션은 9월 5일(드림플러스강남)에서 있습니다.
오디션 당일 세부일정시간과 관련하여서는, 1:1 오디션이므로 추후 공지됩니다.
많은 지원 부탁드립니다.
충분한 정보를 얻고 신뢰할만 하다는 판단이 될때만 지원하시기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