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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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술깨고 에세이, 술깨고 에세이.

sadsong sadsong
2001년 09월 14일 14시 58분 20초 1066 1 19
미국 사건을 전후로.
이러저러한 일로, 개인적으로도 황폐해져서
넋을 잃고 있다가.

무언가로 힘들다는 친구전화를 받고,
위로차 출동하였는데,
버스에서 듣던 미국발 뉴스와
버스에서 진동하는 기름 냄새가 양공,
교묘하게 신경중추를 자극하여,
금방 토할것만 같은것을.... 억지로 참고,

분당. 친구를 만나서,
얘기를 나누다 보니,
솔직히 그놈보단 내 상황이 더 슬프고 힘든 것이라....

때마침 술집에선 김현식님의 헌정앨범(으로 추정되는)이 계속 흐르고,
사랑했어요, 언제나 그대 내곁에....
"한국사람"을 기타로 연주한 곡이 나올쯤. 환장하다가,
맞어,
sadsong "지금 내 워크맨에는 유재하 들어있다"
sadsong "너 김현식이 언제 죽었는지 아냐?"
   친구   "...."
sadsong "11월1일 이야, 근데 유재하도 11월1일이거든,
         두 천재가 몇년을 차이로 한날 죽었단 말이지....  기가 막히지....."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김현식님의 노래들이 끝나고 이어지는 것이
유재하님의 헌정앨범(으로 추정되는)이 아닌가.....
아니면 김현식, 유재하 추모곡들이 한데 묶여있는 앨범이 있는건지도.

아무튼, 누군가가 부른 "가리워진 길"이 나오는 것을 무심코 따라불렀는데,
안개속에 쌓인길.... 가리워진길....
순식간에 눈물이 줄줄 흐르더라.
아.... 난 다른 것들엔 무서울만큼 강한데, 유독 음악엔 왜그리 약한지....


삶이 힘든 sadsong, "현식이 형은 좋겠다, 이렇게 더러운꼴 안보고 일찍 가서...."
삶이 힘든 친구, 웃는다.

분위기가 이끄는대로, 가슴속 상처를 씻어내기라도 할 듯이 술을 부어넣고
그렇게. 그렇게....

정신이 혼미한 상태로
강남역행 버스 올라타기.
잠깐(?) 잠들었다가 눈을 뜨고 창밖 낯선 풍경에 놀라 버스에서 내려보니.
저 앞 이정표에는 '오산, 용인....'   --;;
택시붙잡아 물어보니 죽전이라네.
분당출발 - 강남역찍고 - 다시분당지나 - 죽전.
아... 아....

얻은건, 술이 많이 약해졌다는, 정도껏 마시자는 다짐. 한동안 잊었던 "한국사람".
잃은건, 휴대폰.
그대로인건, 여전히 감당키 어려운....


어제 하루를 멍하게 보내고,
무엇도 변하지 않은, 모든 것을 잃은 나를 보고,
좋은쪽으로든, 나쁜쪽으로든....
어제의 내가 아닌 오늘. 그리고 내일.....
변해야만 하는.

어떻게?


안개속에 쌓인길.


sadsong / 4444 / ㅈㄷ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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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식님이 "한국사람"을 녹음할 때,
녹음실에 네모난 작은 상자를 들고 나타났다.
그 안을 소주로 채워넣고,
하모니카를 담구었다 꺼내고서 녹음을 했다.
-라디오에서 들었던 동아기획 대표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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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fly2000
2001.09.14 17:45
힘내세요...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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