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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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이모부 그러지 마세요..

wanie
2002년 04월 19일 02시 23분 12초 1013
얼마 전 외할머니를 모시고 이모댁에 간 적이 있었더랬습니다.

오랜만에 찾아와 준 조카를 위해 직접 담근 더덕주 한동이를 꺼내

주시더군요. 술을 무척이나 즐기시는 이모부께선 안주 좀 좋은 거

뭐 없어? 하시며 조카를 죽이시고프다는 흐믓한 미소를 띄우시더

군요. 다행이 며칠 술과는 거리를 두고 살았었는지라 오늘은 내

살아남으리라 다짐하며 기꺼이 술 잔을 받아들었지요. 시간이

흐르고 이모부와 조카의 위 아래가 거의 무너질 때쯤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일장연설을 외치시는 이모부..... 근무하시는 회사

의 바로 옆 공장의 파업에 대한 것들이었습니다. 그 새끼들 때문

에 매일 시끄러워 죽겠다느니, 안그래도 막히는 지랄 같은 교통인

데 더하다느니 따위의 말씀들이더군요.

술 때문이었을까요. 약간 울컥했던 거 같습니다. 허나 짧은

이빨과 나이 덕분에 그네들의 편에서 항변을 열심히 해봤자

소용없었음은 물론이었지요.


우리는 압니다. 이 *같은 대한민국에서 농성이니 파업이니 하는

것들이 얼마나 소득없는 일들인지. 그러나 그것은 이대로

길바닥에 내앉을 수 없단 마지막 절박한 표효같은 것이 아닐까요.

지하철이 파업하고 택시가 파업하고 항공사가 파업하고 발전소가

파업하고 버스가 파업하고..... 물론 불편하고 짜증나지요.

하지만 국민의 권리를 볼모로 잡는 매국노 같은 짓은 그만해!라고

외치는 좆선일보의 열혈독자가 되진 말아주세요. 대신에

그네들의 목소리에 아주 조금만 귀 기울여 주세요. 그것이야말로

우리 자신을 위한 일임을 아셔야합니다.

당신이 정말로 부당하고 억울한 회사나 고용주에 대항했을

때 '니 네 일들은 니 네가 알아서 하지, 왜 남들한테 피해를 주고

지랄이야!'라고 손가락질 받지 말란 법은 없으니깐요.



아직은 더불어 사는 사회라는 공자님 같은 말씀을 믿고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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