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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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레이스

73lang
2004년 12월 09일 06시 22분 31초 1611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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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 레이스 : 술을 먹으며 펼치는 도박판. 주로 상가집에서 행해짐


친구들 사이에서 자기가 프로인딕끼 행동하지만 뭔가 2프로 부족한 듯한 '이 프로'도 그렇고

도박판의 지존으로 불리넌 김선수도 그렇고

레이스를 펼칠 때마다 표정하나 안 변한다고 '포커페이스'로 불리던 선배도 그렇고

그 갑작스런 일은 누구도 전혀 예상치 못한 사건이었다.

출판사에서 일하던 선배가 부도를 맞은지 2달도 채 안돼

형수님이 애를 낳다가 돌아가셨다.

이제껏 가본 상가집 중에 최악의 악상(惡喪)이었다.

사내 커플로 만나 누가봐도 금실좋기로 소문난 커플이었다.

애처가였던 그 선배와 돌아가신 형수님의 친오빠는 서로가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양쪽 집안 어른들이 다 살아계신 상태에서

친정집에선 졸지에 먼저간 불효자식이 되어버린 형수님도 그렇고

엄마없이 자랄 아이의 일도 그렇고

그들의 처지가 가엾고 애처롭다는 듯이

모두가 선배님을 붙잡고 통곡만 할 뿐이었다.

자식을 먼저보낸 고통때문이신지

마치 자기 딸이 죄인이라도 된다는 듯 3일장내내 안 보이시다가

시댁 눈치를 보느라 발인때 모습을 드러내신 장모님도 그렇고

모두가 통곡만 할 뿐이었다.

아이는 선배의 동생 부부가 키우기로 했지만

선배형님의 친구분들께서는 이번일이 의료사고인지 아닌지를 놓고

심각하게 논의가 오고가는 눈치였었다.

변호사와 한의사인 친구들은 서로가 머리를 맞대고 고심하는 분위기일때

화장실에서 숨죽여 구토를 해대던 선배의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건 마치 어깨를 들썩이며 속울음을 삼키려는 듯

배우들이 연기같은 걸 통해서 표현할 수 있는 종류의 몸짓이 아니었다.

선배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처형인 형수님의 친오빠께선

술을 먹으며 갑자기 울다 웃다 넋나간 사람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영정 사진을 가리키고 미소지으며 했던 말이 주위사람들의 가슴을 더 아프게 했다.

"바보같이 웃고 있잖아..."

패는 계속해서 돌고 있었다.







-뻥카 : 자신의 패가 낮은 수 임에도 불구하고 판돈을 올리는 일종의 연막전술. 반대말로는 실카가 있다.


"어이 동상~!"

"예 성님!"

"자네 영화일 한담서?"

"예..."

"영화일도 여러가지가 있을꺼 아녀..."

(이때 자신의 패를 힐끔 거리던 김선수가 끼어듬) " 이 새끼 글쓴단다"

"이-그랴? 씨나리오 작가여?"

"아닌디요!....저 감독인디요!"

(판돈을 올림스롱 끼어드넌 이프로)

"그러구 봉께.....니 이름을 본것도 같어!...제목이 뭐였더라?...'할부인생'인가??"

(포커 페이스 드뎌 입을뗀다)

"할부인생은 임권택 감독인디..."














-올인 : 현재가진 판돈을 모두 배팅할 것인지 고민하는 일촉즉발의 시간. 주로 그 결과는 '오링'이다


" '범죄의 재구성'을 감독헌 양반도 5~6백 받고 각색일을 했다고 허도만요..."

"아, 이제 생각났따... 이 씨박새끼...니 접때 꿔간 돈 은제 갚을꺼여?"

"아따 성님...아무러면 나가 그돈 띠어 먹겄쏘? 잔금만 나오면 이자쳐서 갚아줄꺼씨요"

" 삼만 받고 한장!"

(잠시 정적이 흐르고....모두가 죽는다. 표정하나 안 변하고 판돈을 싹쓸이 하는 포커 페이스.)

"이새끼 포카드 아닌거 같은디...(패) 섞지 말구 까봐 새꺄" (상대편의 패를 뒤집는다)

"아띠...뻥카였네...;;;;;;;;"







-개평 : 가진자가 베푸넌 정과 의리에 기반한 동정심.


벽제에서 화장을 치루고 나서 파주에 있넌 납골당에서 제사를 지낸 후 갈비탕을 먹고 헤어졌다.

선배가 집으로 돌아간 후

어쩌면 아직도 방바닥에 남아있을지도 모를 형수님의 머리카락을 보거나

어쩌면 푹 파여진 하이타이를 보거나

어쩌면 한번도 입지 않았던 속옷따위를...쓸쓸히 남아있을 화장대 등을 바라보고 눈물을 지을지도 모를일이다.

술에 취해 씰씰하게 걷고 있었다.

멘솔 한갑 사고 남는 돈 200백원......

쌩뚱맞게 딸랑거리넌 종소리가 어디선가 들린다.

아...구세군의 자선냄비...

자선냄비라...그뇨 별명이랑 똑같고마 --;;;;;;;

키힝~! ㅠㅠ;; 왜 이대목에서 그 이뿐이가 생각나넌 거실끄나


"구세군 아저씨...개평임다"

빨간색 자선냄비 안에 이백원을 넣어주고 계속해서 걸었따.




우겔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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