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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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중에서

jelsomina jelsomina
2003년 12월 29일 21시 33분 37초 1491 4
sky.jpg

Starry night over the Rhone.jpg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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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야, 터널이 끝나는 곳에 희미한 빛이라도 보인다면 얼마나 기쁘겠니.
요즘은 그 빛이 조금씩 보이는것 같다, 인간을, 살아있는 존재를 그린다는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물론 그 일이 힘들긴 하지만, 아주 대단한 일임에는 분명하다.

네가 이리로 온다는 생각을 하면 아주 기쁘다. 시엔이 너에게 어떤 인상을 줄지 궁금하다. 그녀에게 특별한 점은 없다. 그저 평범한 여자이거든...그렇게 평범한 사람이 숭고하게 보인다. 평범한 여자를 사랑하고, 또 그녀에게 사랑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인생이 아무리 어둡다해도,

- 빈센트 반 고흐는 사촌 케이에게 연정을 품고 구혼을 했지만 거절당한 후 깊은 상처를 받고 친척들과도 갈등을 겪게 됩니다. 그 후 고향을 떠나 그림에 매진하는 와중에 시엔이라는 여자를 알게 되어 집으로 데려옵니다.
불쌍한 매춘녀인 그녀는 알콜중독인 임신부였는데 매독환자였다고 합니다. 주변의 모든 지인 친척들이 이 일을 계기로 고호에게 등을 돌렸지만 동생 테오만은 변함없는 도움을 형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테오야, 햇빛이 환히 비치는 창가에 누워있는 그녀를 보자 아주 행복한 기분이 들더라. 그녀는 너무 지쳐서 반쯤 졸고 있었는데 고개를 들더니 우리 모두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행운이 지켜준 출산으로부터 정확히 12시간만에 우리를 보았다. 그런데 면회는 일주일에 1시간 밖에 안된다.

테오에게
화가의 의무는 자연에 몰두하고 온 힘을 다해서 자신의 감정을 작품속에 쏟아붓는 것이다 그래야 다른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이 된다. 만일 팔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면 그런 목적에 도달할 수 없다 그건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행위일 뿐이다. 진정한 에술가는 결코 그런짓을 하지 않는다.


미리 설정된 구성에 따라 인물을 그려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각각 따로 그려진 인물을 모아놓으면 하나의 구성을 이루게 되는것일까? 이 문제는 계속해서 작업하다 보면 결국 같은 것임이 밝혀진다.


늙고 가난한 사람들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들을 묘사하기에 적합한 말을 찾을 수가 없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그것이 문제는 아니니까. 그러나 될 수 있으면 정기적으로 집중하면서 핵심에 접근해서 완벽한 평온과 안정속에서 작업을 계속해나가야 한다, 나는 이 세상에 빚과 의무를 지고 있다. 나는 30년간이나 이 땅위를 걸어오지 않았니. 여기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그림의 형식을 빌어 어떤 기억을 남기고 싶다. 이런저런 유파에 속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감정을 진정으로 표현하는 그림을 남기고 싶다. 그것이 나의 목표다. 이런 생각에 집중하면 해야 할 일이 분명해져서 더이상 혼란스러울 게 없다


내 그림이 아직 더 많이 좋아져야 한다고 말할 권리가 너에게 있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너도 그림을 팔아보려는 노력을 더 확실히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넌 내 그림을 아직 단 한점도 팔지 못했잖아,. 많고 적은게 문제가 아니다.
사실 너는 팔려는 노력을 하지도 않은 게 아니냐 ?


나는 램프 불빛 아래에서 감자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접시로 내밀고 있는 손. 자신을 닮은 바로 그 손으로 땅을 팠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려고 했다. 그 손은, 손으로 하는 노동과 정직하게 노력해서 얻은 식사를 암시하고 있다.


언제쯤이면 늘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별이 빛나는 하늘을 그릴 수 있을까?
젤소미나 입니다.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vincent
2003.12.30 01:28
제가 vincent라는 아이디를 쓰고 있긴 하지만...
가끔 고흐보다 테오에게 더 마음이 기웁니다.
고흐의 편지엔 어떤 충돌이 있어요.
상업성에 구애받지 않고 예술가로서의 진정성을 추구하고 싶은 마음과
정말로 자기 그림이 다른 화가들의 그림처럼 팔렸으면 하는 마음.
테오에게 떼 쓰다시피 요구할 때가 많았죠.
테오는 정말 애 많이 썼어요.
저 같으면 그런 형...정말 포기하고 말았을 겁니다.

이런 생각도 해요.
고흐는 자기가 태어나기 정확히 일년 전에 사산된 자기 형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아
빈센트 윌렘..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죠.
만약 그 때 태어나지 않았더라면...그 이름을 갖지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전혀 다른 삶을 살지 않았을까, 하는.
그랬다면 고흐의 그림은 사라졌을지 몰라도
한 인간으로서 행복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cinema
2004.01.04 21:23
고흐가 행복하지 않았다는 편견을 버리세요. 죄송함다. ㅡㅡ;
vincent
2004.01.04 21:39
그래요. 제가 고흐를 두 번 죽였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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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y326
2004.01.19 08:14
소박하면서도 유정이 깃들어 있고, 평범하면서도 그 어떤 특별함이 있는 작품이죠.
고흐의 그림을 보면 가난하고 지친 삶을 즐긴것은 아니지만 그의 가슴에 진심으로 사랑하고 싶다는 감정이 드는 것은 틀림이 없더라구요. 전 개인적으로 현대미술에서 모네의 인상,일출을 볼때마다 그 어떤 감동적인 바람이 휘몰아치지는 않더군요.
특히 인상주의의 화가를 바라보는 제 시각자체가 고정되어 있어서 그런지 더욱 그런 생각만 하게 됩니다.
기자가 조소하는 말투로 "완전히 인상주의군"이라고 발단이 된 인상주의는 저 개인적으로 흥미를 이끌만한 주제와 작품성을 가지고 있지를 못하더군요. 그렇다고 르네상스의 그림을 원초적으로 지지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안타깝게 여기는 것 중에 하나가 소크라테스인데요. 그림, 조각 등을 바라보는 예술의 미학을 너무 편협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던 그의 시선에 솔직히 인상주의의 화가들은 주눅이 들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몇 십년이 흘렀을 때에야 비로소 인상주의의 그림들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에 대해서 그리고 어떤 그림을 어떤 작품을 지향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수많은 난관을 극복한 뒤에야 비로소 알아냈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저도 인상주의의 화가들을 높이 평가하고는 있습니다만, 너무 엄격한 틀만 아니였다면 르네상스의 그림들을 적극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가 있었을거란 아쉬움이 많이 남네요.
우리의 작가들도 이런 노력으로 좋은 결실을 맺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참고로 고흐의 여성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은 정말 기네스에 올라도 될만큼 대단하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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