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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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토요일 오후 2시, 어디에서 누군가와 만나기로 약속해야 할 것만 같은 시간

ty6646
2008년 02월 09일 02시 27분 21초 1700 1
시시한 입담으로 우적우적 시간을 먹어대는 소들처럼
친구들과 그렇게 떠들어 댈게 뻔하지만 나는 이번 주에도 외출 준비를 한다.
귀찮기도 하고, 새로운 뭔가를 바래보기도 하지만
외출 그 자체는 언제나 설레이는 바람처럼 내 걸음걸이를 가볍게 한다.

고향에 있을땐 이런 토요일 오후가 늘 산더미처럼 쌓여갔었는데
여기서는 그 흔하던 일이 하나도 없이 모두 사라져버렸다.
친구도 없고, 마음 편안히 맞이해주던 익숙한 시내거리도 없다.

고개를 들어 달력을 보면
어느새 다시금 외로워해야 할 시간, 토요일이다.
거리에는 분주히 오고가는 사람들,
그들은 어떤 누군가의 구두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같은 방향으로 걸어갈 것이다.

그런 그들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함께할 다른 발자국을 남기지 못하는 내가
아무것도 아닌 그들을 부러운 듯이 바라보며 서있다.
그러고보면 낯선 이곳에서
난 길을 몰라서 방황하거나 익숙치 못해서 불안한 것만은 아니었다.

약속 없는 삶이
새 달력에 빼곡히 찬 날짜들처럼 그렇게 내 앞뒤로 줄 서있다.
약속시간이 되기까지의 기다림의 즐거움도 없고,
약속장소로 가기까지의 봄날 같은 발걸음도 없다.
그리고 그 누군가를 발견했을 때 내 얼굴에서 미소가 향수처럼 번지는 일도 없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그 시간들이 특별하게 보이는 건
이곳이 마법의 땅이라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외로움에 지쳐가는 내 마음이
불안해하고 방황하고 있다는 걸 알아가는 이것,... 제법 쓸쓸한 일이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냥 어디에서 누군가와 만났으면 하는
그런 분주하면서도 한가로운 토요일 오후.

난 이번 주 그 시간이 되면 어디를 바라보고 있을까.....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moosya
2008.02.13 13:33
감정을 담아내는 욕망이란 그릇, 그 그릇에 응하지도 응하지 않을 수도 없는 난처함.
삶에 있어 그것을 명확히 인식하고 적절히 이용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렇게 되면 구름을 타고 신선노름을 해야하는 것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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