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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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박순경 이야기 (1)

vincent
2002년 03월 22일 05시 02분 16초 1389 2 4

밑에 어느 분이 올리신 '미친놈'관련 글에서 애환이 담긴 파출소 이야기에 필- 받아 갑자기 끄적거립니다. 사실, 애환이 담긴 파출소 이야기랑은 그다지 연관이 없습니다만 굳이 이유를 찾는다면 '직종' 때문이랄까요..... ㅡㅡ;;
여튼, 얼마 전 파란만장했던 제 어린시절 중 가장 드라마틱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어떤 인물과 우연히 맞닥뜨리게 된 일이 있어서 그의 이야기를 한 번 '시리즈'로 정리해볼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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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엄마는 우연히 길을 가다가, 낯 익은 듯 낯 선, 꽤 멋진 풍채의 중년 남자를 만났다. 그가 반갑게 인사를 건내오면서 통성명을 하고나서야 엄마는 그가 누군지 기억이 났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만났는데 그냥 갈 수 없다고 굳이 엄마를 끌고 가까운 커피숍으로 가서 맛없는 커피를 시켜주었는데, 엄마는 맛 없는 커피를 마시면서 그 멋진 풍채의 중년 남자가 그렇게 멋있어지기까지의 20여년의 과정을 한달음에 듣는 것으로 위안을 삼으신 모양이다.

엄마는 그 날 내가 집에 오자마자 "내가 오늘 누굴 만났는지 아니..."라며 엄마가 우연히 마주친 멋진 풍채의 중년 남자에 대해 얘기했고 내가 그에 대해 어렵지 않게 기억해내자 신기해하며 기어코 그에게 전화를 걸어 나와 대화를 나누도록 했다.
나는 10살 이후로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던 그 남자와 아주 반가운 척 인사를 건내는 나 자신에게 무척 놀랬다. 이게 바로 나이가 주는 뻔뻔함이구나, 자각할 새도 없이 그는 나에게 "나이가 몇이냐", "결혼은 했냐"등등의 해서는 안될 질문을 몇차례 줄기차게 퍼붓더니 뭐가 좋은지 연신 껄껄거리며 웃어댔다. 달리 할 말도 없어서 나도 키득거렸다.
솔직히 그 때 그의 아킬레스건인 '미스공('미스 사이공'이 아니라)'이라는 단어를 끄집어내서 그의 웃음을 한 방에 쏙 들어가게 만들까 생각안해본 것은 아니었지만, 혹시 나중에 '취재'를 통해 그의 도움을 받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다소 비겁하고 얄팍하면서도 합리적일지도 모르는 어떤 방편 같은 데에 생각이 미치자 그냥 키득거리는걸 계속하게 됐다. 서로 누가 먼저 웃음을 멈춰야하는건지 짐작할 수 없는 애매한 상황 때문에 우리는 그냥 말끝마다 마침표 대신 웃음소리를 집어넣기로 약속한 사람처럼 이상한 방법으로 힘겹게 대화를 이어 갔다. 예컨데 이런 식이었다.

"아저씨 결혼도 하셨겠네요.... 호호호...."
"그럼, 난 이제 오십을 바라보는걸....하하하... 그런데 넌 요즘 시나리오를 쓴다구...하하하..."
"(엄마를 한 번 째려본 후) 네... 그런데 뭐 썼냐고는 물어보지 마세요....호호호..."
"언제 한 번 놀러 와라. 아저씨가 밥 사줄께. 여기 얘긴 기막힌게 참 많단다...하하하..."
"예, 꼭 갈께요. 물론이죠. 호호호...."

"안녕히 계세요"와 그 아류의 인사를 5, 6번씩이나 하고서야 전화 끊는데 성공한 후, 이 전화를 주선한 엄마를 또 한 번 쏘아본 후... 나는 엄.마.의. 표.현.에. 의.하.면. 이제 '멋진 풍채의 중년 남자'가 된 그에 얽힌 몇 가지 추억에 빠져들었다.

이제 그를 잠깐 소개하자면, 그는 현재 방배경찰서 강력계 소속의 박모반장인데, 내가 그를 마지막 봤던 때-그러니까 내가 10살 때-까진 그는 그냥 '박순경'이라 불렸던 사람이었다.
솔직히 난 그 때 그가 경찰이 아니라 방범대원인줄 알았다.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우리 집-엄밀하게 말하면 엄마의 의상실(엄마는 내가 '양장점'이라고 부르는걸 싫어하셨다)-에 뻔질나게 드나들었고, 방배2동 파출소에 근무하면서 그 근처에 있던 '이덕화'네 집에 도둑이 드나 안드나 가장 신경을 썼던 걸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그 '방범대원' 같았던 박순경 아저씨의 순애보(라고 해야 좋을 것 같)다. 그 때, 혈기왕성한 청년 박순경이 짝사랑했던 '미스공('미스 사이공'이 아니라)'과 의도하지 않게 그 둘 사이에 오작교가 되어준 스스로 어른이 다 됐다고 믿은 10살 소녀인 나와 철 없기 때문에 눈치도 없었던 7살 아이인 내 동생, 그리고 박순경을 운명적으로 우리와 만나게 한 장본인 '영숙 언니' 등이 그의 순애보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물론, 우리 엄마와 아빠도 가끔 등장하셨다. 아주 이상한 타임에.... <다음에 계속>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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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dman
2002.03.22 13:26
빈센트 님... 주르륵 쓰시지 마시고 문장마다 칸을 띄워 주세여..
읽는 데 눈이 피곤해여.. 클클
아주 이상한 타임...
(몹시도 이빨이 아픈 시간에....(이.. 상한... 흐미 썰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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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220
2002.03.22 16:51
시작부터 너무 재밌어요. 꼭 연재하셔야 해요! ^_^ (문장마다 칸 띄우는 건 별론데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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