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소리여행 후기.

jelsomina jelsomina
2000년 08월 29일 05시 01분 05초 2642
첫번째 남도로 떠난 소리여행의 후기 입니다.  
시나리오상에서 주인공들이 해야 할 일들을 눈으로 보고 듣기 위해서,
말씀드렸듯 , kbs 라디오 녹음팀의 한국의 소리 100선 작업을 견학한것입니다.

여기 나오는 상우와 은수는 주인공들의 이름이고, 그 밖의 다른 이름들은
우리 연출부들의 이름입니다. 준호.. 연경..영석이
시나리오 작업을 위해 개인적으로 써놓았던 글인데 수정없이 그대로 올립니다.

이 작업후 kbs팀분들과는 여수에서 헤어졌고, 여수 이후에 저희는 남도 길 헌팅을 다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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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군 백양사 입구 가양마을 한봉소리
- 20분정도 늦게 도착했다. 이미 마이크는 설치가 되어가고 있었다.
처음보는 토종벌집들이 신기해서 둘러보려는데 점심먹었냐고 묻는다. 미안해서 고개만 끄덕여 주었다. 조금있다가 중국집에서 배달이 왔다. 배달을 이런곳으로도 오나보다.
내내 어디서 배달이 왔을까 궁금했다. 일에 쫒기다 나중에 젖가락을 드는 녹음기사는 퉁퉁 불은 자장면을 결국 먹지 못했다.

한 시간 이상의 녹음이 계속되었다. 별로 의식못하고 있었는데 예상못한 잡음들이 많이 끼어들었단다. 생각보다 민감한 작업이다.  
마을길로 다니는 차들. 비행기 소리. 바로 옆의 닭들.. 때론 그런 소음들을 녹음해야 할 일도 생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두들 무언극처럼 표정으로 말한다. 미리 생각한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조심조심 걸어다녔는데 녹음이 끝나고 난 뒤 걸어다니는 발소리도 잡음이었다고 분명히 말한다. 싫은 표정을 짓지 않아 괜찮은줄 알고 있었다.

다음날 따게 될, 양동마을에서의 분봉과는 조금 다르게, 가두어 놓고 분봉을 했다.
도망가는걸 잡은건지...마음에 들지 않는집에서는 벌들이 도망가기도 했다.
첫날이라 모두들 긴장. 정확히 벌들이 무얼하는건지도 모른채 구경하다가 녹음이 끝나서야 무얼하는지 설명들었다. 분봉이란 아기 여왕벌이 자라면 한 집안에 여왕벌이 두 마리가 되니까 새로운 여왕벌이나 원래의 여왕벌이 다른 집을 짓는 것. 벌등의 평균 수명은 40~45일정도. 봄에 가장 많이 분봉을 하고 가을에도 억지로 분봉을 시킬수는 있지만 벌들에게 좋지 않음. 기온이 매우 중요하다.
한창 더울 때 벌집앞에 손을 대보면 찬 바람이 나온다. 벌들이 날개짓으로 집의 온도를 내리기 때문.. 약간 추울대는 자기들 끼리 뭉쳐서 열을낸다.  
솔잎에 굴을 섞어 넣은 찬 음료수가 너무 맛있었다. 소리녹음하는줄 모르는 안주인이 "차드세요" 하면서 퉁명스럽게 대청에 앉았다. 서로들 쳐다봤다. 할머니 품에 안겨놀고있는 아기가 작은소리조차 내지 않는다.  
날씨가 너무 좋다. 뭘해도 즐거운 그런 날이다. 다들 함께 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는가 보다.
아직 신록의 빛이 남아있는듯한 색이다. 온통 초록이다.  

남창계곡 맑은 물소리
- 계획에 없었는데 지나다가 생각나서 녹음하다. 숲위로 비행기가 지난다. 전투기인가 보다.큰 소음을 내며 머리위로 한참동안이나 지난다. 녹음에 가장 방해되는가 되는 소리는 기계음이다.  
마이크 위치를 두 번 다르게 설치했다. 잔잔하게 흐르는 여울과 조금 언덕이 높은 곳에서의 녹음. PD가 귀를 기울이고 손바닥으로 가리개를 만들어 물가에 대고 소리를 듣는다.

잘못 녹음한 것은 빗소리와 비슷하다고 한다.
졸졸졸 흐르는 빗소리를 들으며 모두들 앉아있었다. 중간중간 마이크를 벗어 잡음의 근원지를 찾아보는 엔지니어. 잡음이 들린 방향으로 귀가 종긋해진다. 자주 그런다. 헤드폰에서 들리는 소리가 그 소리인지 확인하는 듯 했다. 자연스럽게 듣는 소리와 헤드폰을 끼고 듣는게 얼마나 틀린지 들어보고 싶었다.

나중에 헤드폰 끼고 들을 기회가 오면 나도 재빨리 헤드폰을 벗고 귀를 종긋 세우며 저렇게 한번 해봐야지 생각했다. 붕붕대는 벌집앞이나 졸졸거리며 흐르는 계곡물로 얼굴을 들이밀고 앉아있는듯한 마이크가 너무 귀여웠다. 그렇게 가만있는 키 작은 마이크의 느낌만 잘 잡아낼수 있어도 참 좋을 것 같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 돌아다니며 일을 도와줄려면 그게 편해서 그런것처럼 연기를 아무리해도 다들 날 쳐다보며 웃는 것 같았다. 이런 계곡에 와서 발도 안 담그고 가면 산신님이 섭섭해 할 것 같아 그런거지.

녹음을 마치고 오솔길을 내려오는데 계곡쪽에서 늙은 연인 한쌍이 나온다. 부부는 아니고 조금 어색한 사이같다. 그들에게는 봄날이겠지. 젊으나 늙으나 ..오나가나 온갖 종류의 연인들이 있다.


담양 대숲에 이는 바람소리
- 소리를 따고자 하는 대밭의 주인을 찾아갔다. 온동네의 문패가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고 집은 비어 있었다. 동네를 한바퀴돌며 주인장을 찾아 다니니까 밭에 나가 있다고 누군가 알려줬다. 어디서 누가 뭐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는 사람들이 사는곳이다.

팔순은 되었음직한 할아버지 할머니 내외가 밭일을 하고 있었다.
대밭에 이는 바람소리 따러 왔다는 말에 밭에서 일하고 있던 대밭주인 할머니의 웃음.
뭘 그런걸 녹음하러 여기가지 왔냐는.....
참 푸근하다 그런 웃음이..예전에 우리 할머니도 자주 저런 웃음을 지으셨다.
도대체 이해가 안가는 일들을 보아도 그저 그런 웃음 한번으로 사이가 참 편해진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혼인 약속을 해놓고 꽤 설레였었나 보다. 어머니 나이 그때 18살이었다 아버지가 살던 마을에 가려면 큰 재를 넘어야 했는데 지금은 신작로가 나서 차를 타고 넘지만 그때는 조그만 산길밖에 없었다고 했다. 대낮에도 어둑어둑할 정도로 우거진 소나무 숲사이로 고갯마루를 넘다보면 무섭기도 하고 너무 힘들었을 것이다.    
연두저고리 분홍치마 입고 고갯마루를 넘던 어머니가 생각난다.
땀을 식히려 손수건을 꺼내들고 앉아있을 때 들리던, 솔밭에 이는 바람소리에 대한 얘기를 엄마한테 한 1000번은 넘게 들었을것이다.
그래서 난 대밭에 이는 바람소리보다 솔숲에 이는 바람소리가 더 듣고 싶었다.

사실은 다 같은 것일 것이다. 엄마가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넘던 큰 재에 대밭이 있었다면 나에게 1000번도 넘게 했던 그 바람 소리는 대밭에 이는 바람 소리일 것이다.
소리를 들을때마다 사람들은 다 다른 생각들을 한다.
옛날 분들은 사랑을 참 멋있게 한 것 같다. 내가 사랑한 사람들은 다 떠나버렸다.

마을 사람중 한명이 지금은 죽순이 나오는 시기라 밭에 못들어 간다고 했는데 정작 주인  할아버지는 올해는 죽순이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굵은대와 가는대의 차이가 바람소리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 대순이 한창올라올때는 조심조심해야 한다. 며칠전에도 충청도 사람들이 와서 촬영하고 갔다고 했다. 그런식으로 사람들이 분류되기도 한다.
쇳대를 안가져 와서 열지 못하지만 울타리를 제치면 들어갈수 있다고 가르쳐 주었다. 결국 다음날 아침에도 바람이 불지 않아 녹음할 수 없었다.
상우 은수는 기다릴거다.
해가 잘 들지 않는 어둠컴컴한 대밭에도 해질녁의 붉은 빛이 묻었다. 촘촘히 높게 서있는 수 많은 대들에 강한 하이라이트를 만드는 느낌이 좋다.
동네가 온통 대밭이다. 작은 개울을 건너는 다리가 마을 입구에 있는데, 마을쪽으로 적당한 나무가 두그루 서 있고 그늘에는 하얀 의자가 놓여있다. 못보던 사람들 10 여명이 몰려다니니 신기 했는지 동생을 데리고 나온 어린소녀가 그 의자에 앉아 우리를 구경했다.  어느 마을에 가나 참 평화로와 보였다.


보성군 양동마을 한봉소리
- 드디어 녹음기사 아저씨가 벌에 쏘였다. 가양마을과는 조금 다른 풍경이다. 벌집통들위에 짚단으로 지붕을 만들어 놓았던 가양마을과는 조금 다르게 까만색 비닐그물같은걸 덮어놓았다. 조금 약식으로 하는걸까. 벌통도 훨씬 많고 그러고 보니 설탕 푸대들 온집안에 가득하다....
밥상을 차려 주신다. 사람사는게 원래 이런 모양이구나 싶게 인심이 다들 너무 좋다.
밥값을 셈해 주니 귀찮아 한다. 로얄제리를 주길래 감독님 맛보라고 드렸더니 통째로 마셔버린다. 나도 두잔을 먹었다. 영석이 한잔.

벌집을 통째로 잘라 접시에 놓고 육각형 모양의 집 안에 그대로 꿀이 들어있는 밀랍벌집을 얇게 잘라 과자처럼 집어 먹었다. 밀랍채로 먹으면 더 좋다고 해서 그러려고 해봤는데 목으로 넘기기가 힘들다.

이사갔더니 벌이 안되었다고 한다. 어제 분붕한 집의 벌들이 도망갔다. 여름하늘에 가득한 하루살이 떼를 생각하면 된다. 꼭 그런 모양으로 벌들이 무리지어 집 마당에 빙글빙글 돌다가 멀어진다. 우리보고 촬영하라고 그냥 내버려둔 아주머니는 나중에 속상해 했다.

우린 촬영이 아니라 소리를 녹음하러온거라고 하니까 그럼 소리를 촬영하라고 한다.
가는곳마다 다들 그런다. 정말 소리를 그림에 담아야 하는건지도 모르겠다.
벌떼를 봐도 별로 하나도 무섭지도 않고 벌들도 순하다. 양봉은 많이 쏜다고 하는데 토종벌들은 순하다. 왜 우리나라 토종들은 다들 힘없고 순하기만 한건지 모르겠다.
양봉업자들은 꽃들이 피는 시기에 따라 벌통을 가지고 남쪽에서부터 북상을 한다. 그런 양봉업자들을 동네근처에 못들어오게 한단다. 그런 양봉들이 근처에 있으면 토종벌들을 다 물어죽인다고 했다.

아까 도망간 벌들이 다시 돌아와서 나무에 바글바글 붙어있었는데 여왕벌이 돌아오지 않았는지 그대로 앉아있기만 했다. 앞마당에 다른 벌들이 도망가길래 촘촘한 그물을 뒤집어 씌워 붙잡아 놓고 분봉하는 듯이 그 소리를 땄다. 뒤마당에 가보니 이 PD가 나무에 붙어있는 벌들에게 돌을 던지고 있었다. 30분이나 그짓을 하고 있었다. 흩어져 분봉하라고..그 벌들은 그대로 다시 도망갔다.  
벌집 6개를 샀다.  


보길도 예송리 해변의 작은 자갈소리
- 4~5분차이로 땅끝에서 배를 놓쳐버렸다. 상우와 은수에게 배를 태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윤선도가 살았다는 보길도 해안의 작은 자갈소리를 따러 간단다.

예전엔 해변가가 넓어서 자갈구르는 소리가 꽤 오래 들렸다고 했다. 정말 그러면 소리가 훨씬 좋을 것 같았다. 파도는 거의 일지 않았고 - 만약 파도가 일었다면 자갈소리가 묻혀버렸을지도 모른다- 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폭이 너무 좁아서 자갈이 잠시밖에 구르지 않는다.
삽으로 자갈들을 퍼내어서 평평하게 만들고 싶었다.

예송리 이장집에서 묶었다. 정말 남도는 가는곳마다 성찬이다.
연경이도 아주 만족해한다, 아마 은수도 꽤나 좋아하겠지.
이런 정갈한 민박에서 종이창살 너머 어른거리는 은수의 그림자를 상우는 바라볼 것이다.
술한잔 하자고 문이라도 두드릴까? 그런말도 하지 못해서 문밖에서 서성거릴까?
그러다가 마음을 다 잡으려 바닷가에 나가고, 소리가 더 좋다는걸 알고는 조용히 장비를 챙겨서 바닷가로 가는데 은수가 뒤따라 나온다. 더 자라고 일부러 얘기도 안했는데...

"이 일은 제 일이라구요. 아세요 ?"
일 욕심 많은 여자..그리 예뻐보이진 않는다.

소리를 따고 있는중에 자박자박 소리를 내며 한 여자가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뭐라고 말도 못하고 다들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그 여자 무슨 사연이 있어 보였다. 분위기를 많이 잡고 걸었다. 그 여자는 자갈 부딪는 소리를 들으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겠지만 참 짜증났다. 수석을 모은다는 엔지니어는 녹음이 끝나자 먼저 가란다. 해변의 자갈들을 주으러 갔다. 그러면 안된다.

마루에 앉아 술한잔을 하고 깊은 새벽에 바닷가에 나가보니 자갈구르는 소리가 훨씬 좋았다. 물이 많이 빠져 바닷물이 해변에 드나드는 폭이 넓어졌다.
- 어제 오늘 97.3 KBS 1 FM으로 나오는 방송을 들었는데 생각보단 좋지 않았다.

내가 PD라면 저건 전부다 NG일거라 생각했다.
은수도 만족해 하진 않을 것이다. 이런식의 작업에는..
하지만 그들도 사정이 있을 것이다. 시간이 너무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까 이해가 된다 .

두 사람 다 자신의 작업에 나름대로 열심이다. 그래도 둘 사이가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PD와 엔지니어. 차를 동승하고 남도를 휘젖고 다니는데 별 대화가 없단다. 우리를 보면 말을 하고 싶어 한다. 무뚝뚝해 보이던 PD도 이젠 많이 친해졌다. 어쩌면 저렇게 길들을 잘 알고 있을까. 상우는 이제 초짜니까 그렇게 길이 밝진 않겠지.
밤새 바닷가 숲에 많은 바람이 불었는데 바라보고 있으려니 참 좋다.

바람은 숲에 부딪혀 존재를 알린다. 소리도 그런 모습이 있을 것이다.
소리는 없이 그냥 흔들리는 숲만 본다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소리까지 들을 수 있을까


어떤 아름다운 음악보다도 더 좋은 소리가 많은 것 같다.

다음날 아침 감독님과 준호와 헤어졌다. 우린 떠나는 배위에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조금 슬프기까지 하다. 나중에 여수 돌섬에서 KBS 사람들하고 헤어질때는 좀 외로웠다.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우리에게 라면이 맛있다고 알려주는 감독님. 준호는 그 라면이 먹고 싶어서 그냥 옆에 멀쭘히 서서 라면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멀리서도 무슨말을 하는지 다 알수 있는게 참 신기하다. 우리는 왜 저 생각을 못했지 ? 컵 라면을 사오지 않은걸 다들 후회하면서 입맛만 다신다. 계속 손을 흔들어 주었다.


완도 구계등 큰 자갈소리
- 보길도에서 배를 타고 다시 나온다. 가는곳은 예송리 바닷가보다 조금 더 큰 돌들이 있는곳이라고 했다. 남도의 섬들은 다들 이렇게 큰가보다. 황구 한 마리가 따라다닌 기억밖에는 별로 쓸말이 없다. 소리도 썩 좋지 않고..풍광도 별로였다. 너무 좋은곳만 돌아다녔더니 눈이 높아졌다. 착한 황구 한마리만 계속 우리를 따라 다녔다.
바로 옆 해변에서 젊은 부부가 그물을 만지고 있었는데, 잡음 때문에 한 10분 동안만 쉬어달라고 부탁을 했다 .
별 소리 없이 그물위에 앉아 담배한대 피며 쉬어주었다. 다들 그렇게 착하다 여기는...


약산도 흑염소 우는 소리
- 완도에서 다시 배를 타고 약산도에 갔다.
여기서부터 연경이가 운전을 했다. 앞서가는 KBS차도 속도가 떨어진다. 이젠 아주 가다가 기다려 주기도 한다. 내가 운전할때는 앞으로만 내 빼더니.. 사람들이 왜 그럴까 ..
흑염소 농장에 갈려고 읍사무소에 차를 세우고는 PD가 내리더니 뒤에 따라온 연경이를 보고는 "잘~ 따라온다" 한마디 한다.
무작정 앞차만 따라가다가 보니 길이 갑자기 좁아져 산길이 되버렸다. 승용차로는 가기 힘든곳이다. 차 밑바닥을 몇 번 긁히고 결국 차를 세웠다.

염소는 배가 고프거나 해질녁 집에 돌아올 즈음에야 우는데 우리가 찾아간 시간은 너무 일렀다. 갖은 약초를 심어놓고 방목해서 키우는 놈들이니 배가 고플리도 없었다.
낯선 사람들이 다가가니 도망간다. 방목장에 염소들이 쉴곳도 결국 그늘진곳이라 그곳에 마이크를 설치하기로 한다. 염소들이 멀리서 우릴 지켜보고 있고 우린 마이크를 설치했다.
이제 거의 녹음기사 조수가 다 되었다. 그늘지고 쉴 만한 곳이 한군데 밖에 없어서 그곳에 마이크를 설치하니 우린 멀리 떨어져 땡볕에 서 있어야 했다.  그리고 기다렸다.
이 놈들이 울질 않는다. 게다가 털이 북실북실(마이크 윈드쉴드)한 이상한 것이 나무에 매달려 있으니 그 곳으로 오질 않는다.

그늘에 몰아넣으려고 포위망을 만들어 작대기를 하나씩 들고 염소몰이를 했다.
염소주인 아저씨 염소소리 내는것도 흉내내면서 정말 열심히 염소를 몰았다.
이것도 허탕이다.
소리만 촬영할거면 우리 안으로 몰아넣고 하면 안되겠냐고 읍사무소에서 따라온 양반이 아이디어를 냈다. 그도 지쳤을 것이다. 그렇게 하기로 하고 마이크를 옮겼다.
우리한테 쫒겨서 도망다니느라 지친 염소들은 덥고 어두운 우리속에 들어가자 숨이 많이 찬지 거친 숨소리만 낼 뿐 역시 울질 않는다.

역시 안되겠는지 다시 우리 밖으로 몰아냈다. 좀 작은 울타리가 쳐있는 큰 마당같은곳으로 염소들을 내오고 다시 마이크를 옮겼다. 그래도 안 울길래 무섭게 하면 울것같다고 누가 그래서 또 그놈들을 쫒아 다녔다.  도망치는 염소 발소리만 들린다.
녹음기사 아저씨가 자연스럽게 들녘에서 쉬다가 내는 울음소리를 따야지 이게 뭐냐고 해서,
다시 원래의 위치로 방목해놓고 마이크를 다시 옮겼다. 그러다 보니 배 고프고 지치고 목 마르고... 점심때가 되었다. 녹음기사 아저씨는 찬 막걸리나 사다 달라고 한다. 기다리면서 녹음할거라고 했다. 식사하고 와서 녹음했냐고 물어보니 저 멀리 우리안에서 한 세 번 울었단다. 농장 입구쪽에 있는 우리안에 염소가 몇 마리 있는데 거기가서 녹음하기로 했다.

별짓을 다해도 염소가 울지 않자 결국 애기염소를 떼놨다. 자식을 잃어버린 어미가 울기 시작하고 애기염소들도 어미를 찾아 울어댔다. 아무래도 좀 애절하고 좀 다른 소리가 난다. 그거라도 녹음하자는 식으로 마무리 되었다.  떠나려는데 주인아저씨가 한 두시간만 기다리면 염소가 울꺼라고 했다. 입안에서 "그냥 가자"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여수 돌섬 해뜰 때 바위에 부딪치는 파도소리
- 5시 20분이다. 20분 늦게 일어났다. 방에 가보니 PD와 녹음기사 아저씨가 없었다.
씻지도 않고 쫒아가보니 이제 막 도착해 자리를 찾고 있었다.
해안 절벽이 움푹파여서 소리가 모인다고 했다. 그런 소리는 좋지 않다고 한다.
바다와 잇닿아 있는 산 언덕에 하얀 등대랑 암자가 있는데 그 너머가 소리가 좋을 것 같다고 한다. 고생꽤나 하겠군 싶었는데 다행히 그리 넘어가는 길이 없단다.
좋은 위치가 다른곳에도 있었는데 해안경비대 안에 있었다. 그림은 잡지 않고 소리만 녹음한다고 하니 허락해 주었다.
적당한 크기의 돌들이 없어서 4명이 마이크를 각자 하나씩 들고 녹음했다.
다들 손으로 마이크를 들고 앉아있을때가 훨씬 더 집중하는 느낌이 난다.

해뜰녁이라 주위가 조용해 방해꾼이 없다 싶더니 먼바다에 정박해 있는 큰배의 엔진 소리가 잡힌단다. 그리 크게 방해가 되진 않지만 항상 기계음이 말썽이란다.
우리 역시 기계를 들고 다닌다.

녹음을 끝내고 언덕을 올라와 보니 초소에서 고참아이는 아예 판초의를 초소 바닥에 깔아놓고 자고 있다.


여수 돌섬의 큰 자갈 해변의 파도소리
- 이번 소리여행의 마지막 작업이다. 해변의 자갈들의 색깔이 형형색색이다. 카메라에 잡힐까 싶었지만 눈으로 보기에는 참 근사했다. 소리에 별 특별한 구석은 없어 보였다.
금방 작업을 마칠수 있을 것 같았다. 녹음 할려고 하는데 마을 젊은 친구들이 한 10명쯤 와서 놀기 시작했다. 가서 사정을 얘기했더니 그러시냐면서 친구들을 불러내는데 하는소리가 바닷물에 화학약품 들어갔으니 나오란다. 질겁을 하고 다들 뛰어 나온다.
한 2~3킬로 떨어진 해안 도로에서 작업을 하는 포크레인 소리도 크게 들어온다.
차를 타고 가서 한 10분동안만 쉬어주기를 부탁했는데  한참을 뜸을 들인다. 뭔가 바라는듯 해보였다.  그들을 조용히 시키고 돌아오다가 작은 포크레인 한 대도 쉬게 했다.
해안으로 돌아오니 아까 그 젊은 친구들이 또 떠들고 놀고 있다. 다시 물밖으로 나오게 했다. 덕분에 방송작가분이 PD에게 혼났다. 옆에 있는 나까지 무안해 졌다.

녹음을 하는데 바로위 나무 위에서 새들이 갑자기 지저귀기 시작했다. PD 얼굴을 보니까 별 내색이 없다. 젊은 친구들은 그대로 떠나고 순조롭게 녹음이 진행되는데 아기들 한부대가 해변으로 몰려왔다. 뭐라고 재잘거리는 소리가 조금씩 들리는데 그것도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새소리랑 아가들 소리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가 보다.
젤소미나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