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믿어왔던 그 사람....

weirdo
2004년 07월 08일 19시 42분 00초 3590 4 2
리허설 포함 3일간 진행되었던 전주에서의 촬영은
충분히 뜨거웠습니다.

현지에서 동원된 사람들,
도계에서 내려온 사람들,
'꽃봄'의 '어떤' 스탶들..

그들이 토해낸 갈등과 반목과 짜증과 격앙된 고성들은
잔잔하던 전주를 불타오르는 격정의 도시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어쨌든,
전주를 다녀온 뒤의 일정표는
단 한장의 A4용지, 그것도 겨우 반정도만을 채우고 있을 뿐입니다.

정말 오랜만에, 술에 가득 취해 짧은 기억을 날려버리기도 했던 전주전투 끝내고
다시 도계로 이동.


불안한 일기예보를 무시(?)한 채 짜놓은 마지막 일주일쯤의 도계 일정이었지만,
예보를 살짝살짝 비껴가는 현지날씨 덕에,
다행스럽게도 일정변경 없이 촬영을 진행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바다로, 관악부실로, 탄광으로....

전 출연자, 전 스탶 모두 쏟아지는 빗줄기에 흠뻑 젖어가며 진행된
'갱도씬'까지도 힘겹게 끝을 내고.


이제, 도계 읍내의 한 캬바레.
반복적으로 흘러나오는 색소폰 멜로디.

그토록 믿어왔던 그 사람
돌아설 줄이야
예전에는 몰랐었네
진정 난 몰랐네

조명받은 무대위, 배우대역으로 잠시 서서 멜로디 따라 무심코 흥얼거리던 제 눈가엔
어느새 눈물이 맺히고 맙니다.

그토록 믿어왔던 그 사람....
그토록 믿어왔던 그 사람....

그토록 믿어왔던 그 사람이 돌아선 것입니다. 떠나간 것입니다....

몇 해 전쯤의 대학로 어느 째즈클럽에서
그 노래 부르며 스스로 눈물 보이던 임희숙씨를 보며
콧등 시큰했던 기억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어제 새벽까지 이어진 도계에서의 마지막 촬영.

이로써 도계중학교 아이들,
도계중학교 이재건 선생님,
도계의 밥집 아주머니들, 아르바이트생 미리와도 마지막입니다.


지난 몇달간 얼굴 맞대던 영화팀을 서울로 떠나보내는
그 느낌은 서로들 다르겠지만, 그들 모두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제 도계엔 다시 안오시나요?"

몇몇 아이들은 제게 보채기까지 합니다.
"영화 끝났는데 우리는 뭐 안해요? 어디 안가요?" , "우리, 서울엔 안가요?"

어차피 한번은 치러야 했던 마지막인걸 어쩌겠습니까.

다만, 그 모든 이들과의 이별이 '너무 신속하게', '아무일 없이' 이루어져 버렸습니다.


지금까지 61회차 촬영을 마치고
마지막 서울에서의 촬영을 2회쯤 남겨놓은 우리들의 상처는 아물어가고 있고,
도계의 상처는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 상처가 오래가지 않기를 바라겠습니다.

다른 스탶들보다 1년쯤 먼저 도계를 만났습니다.
다른 스탶들보다 4시간쯤 늦게 도계를 떠났습니다.

서울로 돌아온 지금,
몹시 지쳐있습니다.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hose0403
2004.07.08 21:34
형의 그 맘 이해합니다..
cryingsky
2004.07.09 12:19
촬영 정리 되면 다시 갈거다.. 인사 드리러..
더 머물러 있으면 미련만 남을 것 같아 횅하니 먼저 출발하면서도 뒤통수가 자꾸 땡기더구나..
vincent
2004.07.09 13:14
좋은 영화로 그분들께 보답해주세요.
먼 훗날 귀여운 그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꽃봄'을 보며 빙긋 웃을 수 있게.
한 번쯤, 그 때 그 자리에서 영화 만들던 그 아저씨 아줌마 누나 형들 궁금해할 수 있게.
지금은 아프겠지만...
어쩌면,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 되겠지요.
어떤 이에게는 추억이 될테구요.
weirdo
글쓴이
2004.07.09 23:23
그리고 정말 신기하게도, 관악부 촬영 마지막 날, 제 오른쪽 눈은 '눈병 같은것'에 걸려,
빨갛게 충혈된 채 끈적이는 분비물을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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