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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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돌아보면

ty6646
2009년 09월 03일 08시 39분 34초 1768 1
되돌아보면 어떤 인연들이 있다
아릿한 인연도 있었고, 꿈처럼 몽롱했던 인연도 있었고,
상처가 된 인연도 있었다.


사랑했던 여인이 있었다
보고싶다라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나왔고
마시지도 못하는 소주땜시롱 입원도 하였다. 그런,
그런 나를 아는 친구가 나와 그녀가 잘되길 응원해주겠다라고 했다.

그런데, 여인이 그를 사랑했다.
수많은 시간을 숨죽이며 자갈을 씹어 삼키는 듯한 순간들을 겪었지만
내가 사랑했듯 여인은 그를 사랑한다라고 그렇게 기원해주어야 했다.
그러나, 그것또한 상처가 되었다.
그가 나를 속이고 여인과 사랑한 것은 용서가 되었지만
그 여인마저 속이고 결국 돌아선 것은 지금도 용서하기 힘들다


멀고 먼 낯선 곳에서 어떤 인연이 있었던가
친구의 연을 갖게된 사람이 있었다
술을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한 그였고,
팔걷어 붙이고 나서서 사람들을 독려하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술한잔에 걸출하게 부르던 그의 노래가 지금도 들려온다

그런데 사람이 가까이서 보게되니 달랐다
한마디의 축하에 인색한 그의 모습에,
한줌의 배려가 부족한 그의 모습에,
한순간의 냉소를 뿌리던 그의 모습에서,
사람에 대한 믿음을 의심하게 되었다
그가 자리를 떠난지 십수년이 지났건만
사람이 떠나간 마음의 빈 공간은 지금도 전부는 채워지지 않고 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전화가 울린다
밤늦은 시간 술취한 목소리가 저 너머에서 들려온다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생각나면 전화걸어오는 친구가 있다.
귀찮다고 생각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지만
전화가 없는 날은 기다려지고 전화기를 쳐다보기도 했다
나를 찾는 전화가 울리면 귀찮아하고 번거로워하면서도
친구가 기다리는 곳으로 눈썹이 휘날려라 달려간다

그의 10% 부족한 진실에도 눈을 감아주었고,
그의 10% 넘치는 거짓말에도 속아주었다.
그에게 절교를 선언하고서 그가 먼저 차갑게 돌아서는 것이 마음이 아팠다
우연히 길에서 스쳐지나가기라도 했을땐 먼저 말걸어주길 바랬다
그랬다면 쑥쓰러워하면서도 그의 어깨를 한번 툭치고 웃어보여줄 수 있었을텐데...


그대들도 그런가...? 나와의 인연이 끝난 이후에도
마음 깊은 곳에선 아직도 다하지 않은 인연이 있고,
이렇게 되돌아보는 적지 않은 시간이 그대들에게도 있는가...


지금도 늦지 않았다. 죽는 그날까지
내 어깨 한번 툭치며 반갑다라고 한마디만 해주면 좋겠다
내가 먼저 그러지 못한다라는 거 알아주면 그래서 그대가 먼저 다가와주면 좋겠다
내가 버린 그대들, 버려짐과 동시에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멀리 아주 멀리 떠나가버린 그대들,
그대들이 그립다


인연은 늘 부족함이란 것을 이제는 안다
내가 만족할만한 인연이라면 아마 상대쪽에서 나를 부족하게 볼지도 모를 일이다
언제나 부족한거, 그러기에 인연이란 것을 이제는 아는데,
이제 더는 새로운 인연이 들어올 방이 없어보인다
먹고살기 빠듯한 40줄에 막 들어선 내게 있어
일하고 돌아오면 쓰러지듯 몸을 뉘이는 내게 있어
한평남짓한 보금자리를 지키기위해 피터지는 삶은 현장에 선 내게 있어
이제 더는 친구가 기다리는 곳으로 달려갈 열정이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이 있다면
이젠 그것을 인연이라고 생각할란다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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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010534
2009.09.14 08:09
사랑은 섹스를 향한 찬라적 유희일 뿐이다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나네요.
그 말이 어느 순간부터 소화하기가 편한 말이 된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말 한 번 잡숴보심이 어떠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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