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1,369 개

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일기

73lang
2006년 03월 15일 22시 29분 17초 1946 3
3월 X일

핸드폰의 신호음은 이른 아침의 정적을 무참히도 일그러 뜨리고 있었다.

나는 잠결에 손을 뻗어 조용히 전원을 끄려고 했다.

전화벨은 계속해서 울려댔다.

오늘도 약속이 있었나?

난 해명도 할겸 곧 갈거라 말하려고 전화를 받게 되었다.

"이 XX에 오바로끄를 칠 넘들!!"

전화를 받자마자 대뜸 자신감 있게 상스런 말을 내 뱉을 수 있는 놈은 내가 아는 한 한놈밖에 없다.

"이 시벨넘이 지금 몇시여?...뭔일인데 상콤한 수면을 방해하고 지랄이여!"

"야, 너 난이(친구의 애칭) 소식들었냐?"

"웬 자다가 처제 엉덩이 긁는 소리여?"

"홍콩 판링법원에서...어쩌구 ....불법시위...저쩌구...한국농민 2명 재판...이러쿵....재판이 진행중...저러쿵...그 두명 중에 난이가 있다..."

나는 한순간에 너무 많은 격앙된 말을 들어 어리둥절해져서 무슨 말을 해야 될지도 몰랐다.

정신을 차린 후에 그넘의 말을 정리해보니깐

홍콩 WTO 반대집회에서 폭력시위를 벌인 혐의로 기소된 한국 농민 2명의 재판이 시작됐단다.

근데 그 두 명 중에 한 명이 하필이면 우리 친구란다;;;;

그넘은 시위대 앞에서 캠코더로 비디오 촬영을 했을 뿐이란다.

경찰을 구타한 불법 폭력시위 혐의를 놓고 유주얼 써스펙트처럼 농민들을 죽 세워놓고

홍콩 경찰들이 동시에 그 친구를 가리켰단다;;;;;;;

그놈과 전화통화를 한 후 곧바로 나한테 연락을 하는 거란다.

'흠...그놈 본네트가 한 인상하긴 하지...'

인상이 조금 지저분하긴 하지만 눈빛 만큼은 비하할 수 없을 만큼 맑은 놈인데...


무슨말을 던져야 할지 고민하다가 겨우 꺼낸 말이

"변호사는?"이었다.

"영어 잘하는 변호사가 붙긴 했다는데...홍콩측에선 아예 덤탱이 씌울 작정하고 구속시킬 분위기라던데..."


한참동안 떠들고 난 후 친구놈이 뜬금없이 묻는다.


"그 새퀴 귀농 안하고 계속 영화 했으면 이런일은 없었겠지?"



그럼 지금쯤 스크린 쿼터 반대 집회장에서 철야농성을 하고 있었겄지...


그놈은 타의에 의해서 무언가를 결정하는 친구가 아니다.

그에게 있어선 누가봐도 괜찮다고 얘기할 수 있는 여자친구를 갖는 것이 소원이었고,

그 소원이 이루어졌을 때쯤 영화를 때려치고 귀농을 했었다.

그 당시 그놈과 나의 현실적인 조건은 그다지 자유롭지 못했었다.

돈이 없는데 자유 따위가 있을리 없었다.



우리가 잘 알고 지내던 영화인조합의 그 감독은

자기가 출연한 영화를 찍고 있을때

우린 술에 쩔어서 늦은 아침에 자기 시작하여 늦은 오후에 깨어나기를 반복하는

폐인같은 생활의 연속이었다.



전화통화를 끝내고 난 후

그 친구의 생일이 이번달이라는 것을 생각해냈다.

몇일인지는 모르겠다.

과연 누군가 기억하고 선물따위를 생각해 내는 친구들이 아직도 남아 있을까?

한때 영화에 대한 열정과 로맨스를 같이 불태우던 음지의 선후배나 친구들이 이제는 서로 전화 연락도 안하면서 살고 있다.

의리가 어떻고 ...영화 동지가 어떻고...

다 호랑이가 수정란이었던 시절의 얘기다.


내겐 주로 술이 곁에 있거나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땐 정말 난 혼자였던 것 같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일부러 혼자가 되려한 시기가 있다면, 자연스레 혼자가 되어 있곤 하는 시기도 있는 법이다.


내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시간은 몇 년이 되었건 벌써 돌이킬 수 없이 물러나 있었고

내 곁에는 빈 술병과 파지가 된 시나리오들만 있었다.


바닥에 널려있는 파지 몇장을 집어들고 읽어보았다.



'백딸이 불여일콩'

'여자 두명을 두 글자로 뭐라고 하나?'
(질이 두갠께) '질투(膣two)'

다방레지 : "(남자의 온몸을 쪽쪽 뽈아먹으며 애무한다) 아이 짜~! 오빠 안 씻었어?"
농촌총각 : "짭쪼름하니 간이 잘 되어있지 않냐? 우헤헤"

대사는 죄다 이런식..점점 안구에 습기가 차오르기 시작하고

시놉들을 펼쳐 읽으면서 더욱 더 좌절감에 휩싸인다;;;

'하드 디스크에 오르가즘을 저장하는 뇨자의 이야기..'

'흑설공주와 일곱 장애인이 아기 사슴 밤비를 고아먹고, 손가락에서 광선이 나가고 손에선 장풍 나고 답설무흔에 능공행도의 경공을 펼친다...'

아~이건 또 무슨 아슷트랄한 시나리오냐 ㅜㅜ;;;




꿈과 현실 사이에서 괴리감의 극치를 느낄 때

현실에 부딪쳐 꿈에서 깨어날 때

꿈과 현실은 부조리와 초현실이 된다.

아니면 스스로 또라이나 찌질이 또는 싸이코가 되거나 괴물이 된다.


아마도 술을 먹다가 요절을 했다던가?

서른 한살에 요절한 초현실주의 모더니즘 시인과 이름이 똑같은 그 친구...

영화인이 아닌 농민이 된 그놈은

여전히 꿈을 꾸고 있을까?




3월 X일

나의 쬐깐한 작업실이자 원룸옥탑방엔 커다란 나폴리 항구의 사진이 붙어있다.

시원한 얼굴을 한 뇨자가 앉아있는데 시선이 정말 오묘한 곳에 가 있었다.

수평선도 아니고 그렇다고 선박도 아니고 도시도 아니었다.

다만 그 앞에 고래 비슷한 것의 등이 약간 드러나 보였다.

"지중해에 고래가 살아?"

"잘 모르겄넌디..."

"태평양이면 몰라두 지중해에 고래가 산다는 소린 못들어 봤어야..저게 고래맞을끄나?"

"고래 맞구만"

"고래는 항구까지 오지 않잖여~"

"잡아오는 걸지도 모르잖에"

"포경은 불법인디..."

"뭐? 까는게 불법이라구???"

"조 사진 워디서 났냐이?"

"잘 기억이 안나넌디...영화사에서 얻어온거 같기도 허구..."

"혹시 조고 괴물 티져 포스터 아녀?"

"괴물에 고래가 나온다넌 야그넌 못들어 봤고만"


그는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사진을 한 번 보고 빈 술병만 남겨둔 채 집을 나갔다.

한때 영화인이었다가 시방은 닭백정(?) 노릇을 하고 있는 놈...

하루에도 수백마리씩 닭모가지를 커터기로 짤라내며 철야작업을 하다가 일 끝나면 가끔씩 들리는 친구다.

철야 작업을 끝낸 그의 몸에선 닭똥냄샌지 피비린내인지 진동한다.


철야작업...철야...철야...

한동안 철야라는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되뇌며 뭔가를 떠올리려 애썼다.

아, 내일이 영화인 노조 스크린쿼터 철야농성 7일째구나...






3월 X일

지금껏 이렇게 쪽팔린적이 없었따.

내가 그리 곱게 자란놈은 아니지만 샌드위치맨(?)을 할 팔자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앞뒤로 구호조끼를 입은 채 머리띠 두르고

인사동과 종로 3가 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는 일을 할 줄 알았으면 아예 오지도 않았을꺼다.

졸지에 이게 무슨 꼴인가.

딴 곳에서 농성중인 KTX 여승무원들은 미모라도 있지...

나를 쳐다보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초리가 찬바람 만큼이나 싸늘허다.

날춥다고 뛰댕기넌 사람들을 쫓아가서 전단지를 내밀어도

손이 시려운지 주머니에서 손을 빼지도 않는다.

남은 전단지를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면스롱 주차장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 한대 피우고 있었다.

주차 관리 아저씨가 다가오며 묻는다.

"니 뭐여?"

"눼??...저...거시기....알반디요 ;;;;"

"웨이터여? 보도방이여?"

"저..거시기...기게 아니라여...ㅡㅡㆀ"

"새로왔나 보고만..(전단지를 홱-낚아채면스롱) 이리줘봐"


참 착한 아저씨다..보도방 명함스티커가 있는 자동차 와이퍼마다 전단지를 대신 꽂아준다.;;;

벌거벗은 여자 스티커옆에서 '한미FTA를 중단하라!'카피와 '영화인노조에서 단체 교섭 진행을 준비중'이라는 전단지가 휘날리고 있었다.






3월 X일

곧 있을 촬영장 장소협조 문제로

공감인지 지평인지에 있는 인권 변호사를 하고 있넌 선배를 만났다.


"성님...성님집맨키루 촬영하기 존디가 읍당께요! 딴디넌 장소가 협소하고...대여료가 어떻고..

비교적 평수가 넓고 1층 이라는 조건에 맞는 집은 암만 뒤져봐도 성님댁 밖에 읍넌거 같은디요...;;;

모델 하우스 쪽은 어쩌구 저쩌구...이러쿵 저러쿵 ...삐약삐약...쫌만 도와주소.."



폭탄주를 마시면스롱 장소협조와 촬영협찬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가장 궁금한 것을 질문했다.


"성님...작가나 배우도 로동자임까요? 법적으루다가...아니, 이런건 노무사헌티 물어봐야 되넌거싱가???"

"법? ...왜들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쉽게 설명해 줄팅께 잘 들어봐바...'노동자란!...임금을 받고 생활하는 자를 말한다!'...어때? 아조 쉽지??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어...니가 돈받고 시나리오를 쓰거나 연기를 하면 노동자여..."

"그럼 성님...돈받고 뽀각뽀각을 해주넌 대딸방 애덜이나 북창동 아가씨덜두 로동자임까요?"

"--;;;; 술이나 먹자;;;"





3월 X일

마지막 꽃샘 추위의 찬 바람을 맞으며

언제나 그렇듯

누가 나를 이곳으로 몰아 넣었는가 하는 심정으로 주위를 바라 보았다.

광장 안 먼발치서 보이는 천막 두개...

새만금을 살리자는 천막 옆으로 영화인 천막 농성장이 보였다.

추위에 떨고 있던 전경 두 명이 날 보고 아는척을 한다.

전경 한놈이 날보고 뭐라고 했는지 잘 들리지가 않았다.

난 술에 취해 비틀거리다가 대로로 나와 택시에 올라탔다.


한참을 가다가 내렸다. 도저히 집에 갈 수 없었다.

근처에 그나마 괜찮은 여관이 하나 보였다. 그리곤 여관으로 들어갔다.

나는 침대위에 엎드려 뒷짐지고 똘똘이의 힘만으로 푸쉬업(?)을 몇번한 후

돌아누워 쌍방울 형제를 긁적거리문서 형광등을 바라보았다.

그때쯤 핸드폰의 불이 들어왔다.

또 날 찾는 피디나 모영화사 대표님의 호출이겄지...

어차피 들리지 않으니 좋았다.

여관방 창문을 때리는 바람이 더 세차게 부는 듯 했다.

봄날의 유쾌함 같은 건 없었다.

나의 눈길은 비스듬히 스탠드를 향해 있었고

좌측 어느쪽인가에 고정되어 있던 어떤 이뿐이의 옆모습과

홍콩에서 재판중이라는 그 친구놈과

닭똥냄샌지 피비린내인지 냄새가 진동하는 닭백정과

인권 변호사와

아스팔트 어딘가를 훑고 있었던 농성장의 영화인 노조 사람들의 비스듬한 시선들이 떠올랐다.

작은 스탠드의 등만이 그 주위를 밝히며 아무런 소리도 들려 오지 않았다.

내 심정은 그런것들과는 완전히 반대편에 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시선은 저마다 어딘가 입체적으로 어긋나 있었다.

술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현기증이 일어났다.

나는 침대 위에서 빙글빙글 돌려 지는 듯 했다.

아...똘똘이와 불알이 줄넘기를 하는거 같다.

THIS를 꺼내려 했지만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눈을 뜨지 않았다.

차라리 봄날의 유쾌함 같은게 없다면 이런 현기증에 시달릴 수 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끈을 당겨 스탠드의 불빛을 껐다.

그러고 보니 나와 똘똘이는 완전한 정적속에 있게 되었다.






3월 X일

배우 미팅이 끝난 후 곧바로 충무로로 향했다.

영화노조 임단협 간담회가 끝날즈음

부위원장께서 공지를 한다.

'스크린쿼터 축소 결정에 항의해

13일째 단식 농성을 벌이시던 시나리오 협회 유동훈 이사장께서

오늘 혼수상태에 빠져 국립의료원에 호송되어 위원장과 함께 그곳을 방문'할 거란다.


집에 돌아와 뉴스를 검색해 보니

'유동훈 이사장께서 단식을 계속진행하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에

16일부터 영화인협회 산하 각 분과 협회장님들의 릴레이 단식 투쟁이 이어질 예정'이라고 한다.


한때 후배입장에서 원망(?)도 많이 했었던 선배들이지만

노인네들이 저러고 있는거 봉께 안구에 습기가 찼다.



그렇지...그런 것이겄지...

내가 원망했던 선배들이 됐건

나와 무관하다꼬 생각되었던 로동자들이 됐건

그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비록 개차반처럼 생활하면서도

영화를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

그렇게 가는거지...














우겔겔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mojolidada
2006.03.17 00:37
완전 힘내세요.

무수히 썼다가 쑥스러 지웠네요. 푸하하...
lobery
2006.03.17 18:02
잘 사냐? 연락 함 해라... 요즘 양재역쪽에 있다...
Profile
xeva
2006.03.30 02:05
잘살고 계신가하고..안부..글 남겨봅니다..^^*
이전
21 / 69
다음
게시판 설정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