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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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이면 좋겠고.. 그게 아니어도 커피 한잔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브루스나 나른한 보사노바 정도면 딱 좋겠고...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ty6646
2008년 08월 01일 13시 03분 51초 2128
이름은 야마자키, 나이는 60이 넘었을 것이다.
그러나 보기엔 80이 넘은 노인으로 보인다.


한달에 서너번 나에게 돈을 빌리러 온다. 담배값 정도.
부담없는 돈이라 부담없이 빌려준다.
월말쯤 구청에서 생활보조금을 받으면 그 돈으로 갚으로 온다.


방금전에도 다녀갔는데
위궤양이라고 한다. 얼굴에 땀이 가득한데, 보기에도 상태가 좋지않아 보인다.


그를 동정할 필요는 없다.
젊은 시절, 갬블과 노력없이 지내는 일상을 쌓아 지금에 이르른 사람이다.
그러나 삼사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라고 한다.
바싹 마른 팔은 청테잎으로 칭칭 감겨져 있다.
가족도 친구도 없이, 혼자서 아픈 몸을 안고 백발이 되어가는 노인이다.


비쩍 마른 몰골로, 다리를 살짝 끌면서
독사의 혓바닥같은 땡뼡속으로 빨려 서서히 사라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았다.
이어폰을 꽂은 청년하나가 무심히 그를 스쳐 지나쳐간다.


야마자키에게도 지금과는 다른 길로 갈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그 역시 젊었던 그 어느날 지금처럼 무심히 스쳐지나간 가엾은 노인하나쯤 있었을 것이다.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는 몰랐던 것일까, 아니면 알고서도 깨알처럼 많던 젊음을 믿었던 것일까...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건 10대시절뿐,
20대의 길목에 들어서는 순간, 시간은 가속해서 달리기 시작한다


내 나이 곧 40,
자고일어나면 다음날이 되어있다라고 하면 거짓말이나 우스개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내게 있어 시간은 지나가는게 아니라 그냥 사라져버리고 없다.
정신없이 바쁜 일상을 보내서도 아니고, 약속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 일없이 하루라는 시간속에 허우적대다 일어나보니 벌써
군입대하고나서 16년이 지났다.


똥방위 18개월이 언제 지나가나하고 절망하던 이등병 시절이 있었건만
돌아보니 16년이란 시간이 사라져버리고 없고
나만 옛날 그대로 남아있다. 조금쯤 추하게 늙어버린 아저씨가 되어서....


야마자키... 내가 그를 동정할 필요는 없다.
그가 다음날 땡뼡아래 쓰러져 시체가 되어 독사의 입안으로 말려들어가더라도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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